빛의 기억

by 주홍빛옥상


빛의 기억은
따뜻한 것의 기억이다.
눈부시게 따사로운 빛을 닮은 기억이다.


겨울을 난다.

뜨거운 것이 좋아지는 계절을 지나는 길목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풍경들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가면
신발을 벗어던지고 안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방바닥에 깔린 이불을 들어 올려
손바닥으로 그 뜨끈한 바닥을 쓰다듬듯 만지며 앉았다.
그럴 때면 으스스한 시골의 추위도
아랫목의 들끓는 뜨거움에 눈 녹듯 사라졌다.

겨울이면 몸을 녹일 뜨거운 것들을 찾는다.
뜨거운 찻잔을 감싸 쥐고,
호호 불어 먹는 음식이 좋아진다.
장갑과 목도리를 챙기고, 핫팩을 준비한다.
그늘을 피해 볕이 드는 자리를 찾고,
겨울날의 짧은 한낮의 빛을 반긴다.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목적지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차가운 계절에 뜨거운 것이 간절한 것은
어쩌면 인간의 생존본능이자, 삶에 대한 의지일 것이다.

우리는 뜨거움으로 추위를 밀어내며
그렇게 겨울을 난다.


살다 보면, 이 계절처럼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날이 있다.
바깥의 온도와는 무관하게,
마음이 겨울처럼 움츠러든다.

그럴 때면 겨울날 뜨거운 것을 찾듯이,
마음을 데워줄 빛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아이의 까르르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카메라를 들면 함박웃음 짓던 그 날들.
음악만 흐르면 리듬을 타던 아이의 모습.
그 시간은 나의 딸이 내게 준 선물과도 같다.
그 선물은 닳지 않아, 꺼낼 때마다 나를 기쁘게 한다.

또한 고마운 마음이 그러하다.

나는 잊으면 좋은 일들은 저만치 밀어 두고 살아가지만
고마운 일들은 마음 한가운데 오래 간직한다.

위로가 필요하던 날 건네받은 진심 어린 말,
나보다 먼저 나를 걱정해 주던 한마디,
그럼에도 함께 웃어주던 온기,
마음만큼 따뜻한 작은 선물을 내밀던 순간,

각자의 하루로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해 마음을 내어주던 시간들.

서로가 지닌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를 위해 마음을 건네던 그 시간들.


그럴 때면 걱정은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과 기억은 온기를 잃지 않는다.
꺼내어 볼 때마다 여전히 따듯하다.

그 따뜻한 빛의 기억은
눈앞의 작은 서운함을 잊게 하고
겨울처럼 돌아오는 마음의 한기도 덥혀준다.

내게 빛의 기억은
닳지 않는 선물 같은 아이의 어린 시절과
식지 않는 따뜻한 마음들이다.

그 마음으로 나는 나의 겨울을 지나고,
그 기억으로 마음의 한기를 온기로 바꾼다.

겨울이 있기에,
뜨거운 것과 온기를 지닌 것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남은 이 겨울,
빛처럼 따스한 기억으로
마음의 온도를 올려본다.




2주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기다리던 여행도 꿈처럼 지나고,

연재일이었던 어제는 가슴속 양성종양 수술도 받았습니다.


그 모든 게 지나고 나니, 마치 꿈결처럼 느껴집니다.

가끔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일도 결국은 지난다는 진리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걱정은 미리 사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차피 겪게 될 일이라면,

그 순간이 왔을 때 최선을 다하면

그 또한 곧 지나게 되니까요.

떼어낸 종양은 다시 조직검사 결과를 앞두고 있지만,

모든 것을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그 마음으로 대하면 삶은 원망이 아닌 감사로 바뀌게 될 테니까요.

모두 오늘도

"이만하길 다행이에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에는 어떤 빛의 기억이 있나요?

따듯한 그 기억이

당신의 겨울도 잘 지나게 도와줄 거예요.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