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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Mar 25. 2022

아빠와의 찐한 한 칸

투명인간 로션

“아빠! 오늘은 몇 칸 놀아줄 거야?”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흠. 오늘은 잘 지냈다고 하니까 세! 칸이다!”

“와! 세! 칸이다!”


한 칸은 시계의 긴 바늘 한 칸, 5분이다. 남편이 5살 아이와 놀아줄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시간 협상이다. 한 칸을 놀지, 두 칸을 놀지에 따라 아이의 흥분도는 달라진다. 협상이 끝나면 놀이가 시작된다.  


“시작!” 아빠가 외친다 

“잠깐! 아빠! 나 변신해야 돼!” 아이는 다급하다.

“철컥! 철컥! 피융~ 츄크 척! 철컥! 철컥!” 입으로 소리 내며 팔과 다리에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장착한다. 


오늘은 인심 써서 15분이지, 평소에는 5분, 10분이다. ‘고작 15분? 난 24시간 애랑 붙어있는데?’ 허나 그 시간 동안 아이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오롯이 아빠와 단 둘이 찐하게 보내는 시간. 아빠의 사랑이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채워지는 시간이다.


변신하는 동안 벌써 2분 경과. 진지하게 두 손으로 투구까지 쓰는 아이의 손동작이 세상 정교하다. 남편은 그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고 있다. 입으로는 다됐냐고 재촉하지만, 갑옷을 제대로 입은 것이 맞나, 투구는 똑바로 쓴 거냐며 본 게임까지의 시간을 끈다. 아빠 노릇 참 쉽다. 


“이제 신발만 신으면 돼! 됐어! 공격!”

“으윽!” 아빠는 변신한 아들의 대포 한 방에 바로 쓰러진다. 

“안 돼! 아빠! 시간 없단 말이야! 빨리 일어나야 해!” 조급한 아이는 다시 대포를 쏠 준비를 한다. 


어느새 시간 종료.

도대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거냐며 툴툴거리다 못해 눈물이 글썽이는 아이에게 남편은 회심의 미소를 던진다. 


“그렇다면 오늘은 아빠가 특별한 로션을 발라주지. 이 로션을 바르는 사람은 바로 투명인간이 되는 거야! 어때 발라볼래?”

“투명인간? 응! 나 발라줘 봐!”

사뭇 진지한 남편은 로션을 짜는 척하면서 아이 머리부터 슬쩍 훑어내려간다. 그리곤 잠시 후 소리친다. 

“어! 얘가 어디 갔지? 여보! 아들 보여?” 

이미 눈빛 교환을 끝낸 나는 허공만 바라본다.

“좀 전까지 같이 놀았잖아요! 어디 갔지? 갑자기 없어졌네? 찾아봐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가린다. 아이는 신이 났다.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자기가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진짜 믿는지 소리도 내지 않고 상글벙글하다. 살금살금 아빠 앞으로 와서 손을 휙휙 내젓고 엄마 옆을 왔다 갔다 하고 물건도 집어 올린다. 

“어라! 장난감이 혼자 날아다니네! 누가 그런 거지?” 시치미를 뚝 떼고 표정관리에 들어간 남편은 아이 앞을 쓱 지나가고, 봐도 못 본 척 연기가 일품이다. 

아이는 거울 앞으로 뛰어가 본다.

“어! 나 보이네! 나는 내가 보이는데? 엄마 아빠는 왜 내가 안 보여? 응? 나 여기 있어!”

“아이고! 여기 있네! 우리 아들! 시간이 지나니까 보이네! 없어진 줄 알고 얼마나 찾았는데!”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가 계속되는 엄마 아빠의 장난에 슬슬 얼굴이 굳어진 아들을 안고 달래준다. 

“아빠! 나 또 발라줘 봐!” 안심이 된 아들은 다시 화색이 돈다. 

“안 돼. 이거 또 바르면 아예 사라져! 큰일 나. 아빠가 꼭 간직하고 있을게!”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큰 아이 어린 시절의 꿈같은 추억이다. 한 칸을 놀아도 최선을 다해 놀아주는 아빠와 감질나는 그 한 칸을 하루 종일 기다리는 아들. 남편은 그 순간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촬영까지 해놓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우리만의 드라마다. 아빠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진짜 투명인간이 된 줄 알았던 순진한 아이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아들은 벌써 24살의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파란만장한 사춘기와 혹독한 입시를 거쳐 늠름한 군생활을 마치고 혹독하게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 졸업반이다.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냐며 울먹이던 어린아이의 말처럼 24년의 시간이 한 칸 같다. 어쩌다 보니 엄마 아빠는 아부다비에, 아들은 한국에 떨어져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만 내 속으로 낳은 아들은 더 그리워진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장착하지도, 투명인간 로션에 속지도 않을 다 큰 어른이지만 그 짧고 진한 추억이 아들의 내면을 풍성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여전히 내 기억 속 작고 귀여운 개구쟁이 녀석.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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