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가 만난 그리움
우리가 만난 그리움
우리 넷이 만나면 하는 일은 매번 같다.
간장게장 식당을 운영하는 정연이를 제외한 우리는 만나서 당구를 한게임 친다.
썩 잘 치는 건 아니다.
밤9시 30분이 되면 정연이 놈은 오고 있다는 전화를 한다. 그러면서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힘들었다는 둥, 게를 담그느라 좀 늦는다는 둥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하나는 그 녀석은 늘 밤 열시에 도착한다는 변함없는 진실이다. 빨리 온다고 해도, 조금 늦어 진다해도 결국 열시다.
그리고 우리는 술 없이 밥만 먹고 헤어진다. 우리는 참 건전하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해왔던 일이다.
그런 우리가 세부로 향했다. 내가 잠시나마 있던 곳이다. 동생들을 잘 안내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를 했다.
나를 제외한 친구 셋은 모두 비행기가 처음 이었다.
귀여운 슈렉을 닮은 창식 이는 덩치는 산만한데 마음은 갓난아이처럼 약하고 착하다.
위압감을 주는 외모와 달리 순진하며 여성스럽다.
비비를 꼼꼼하게 바르고 고데기를 가지고 다닐 만큼 섬세하다. 단 한 번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내면은 여린 놈이다.
그런 창식기를 골려 먹기 위해 비행기에 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밥은 사먹는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믿는 눈치였다.
여행 당일 앞서 가는 사람들을 가로막은 뒤 내가 신발 벗는 척을 하자 창식이도 재빨리 신발을 벗었다. 덩치는 큰데 무언가를 할 때면 빠릿빠릿하다. 순발력이 엄청 좋아 보인다.
나는 신발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툭툭 털고 다시 신었다. 그 사이 다른 친구들은 창식이를 비행기에 밀어 넣었다. 한쪽 신발을 손에 쥐고 있는모습을 본 승무원들은 애써 웃음을 참는 눈치였지만 흔들리지 않고 ‘손님 신발 신으셔도 됩니다.’ 라고 친절히 말했다.
부끄러움이 하도 많아 낯선 이와는 말도 안하고 여자와 눈도 못 마주치는 창식 이는 얼굴이 터질듯 시뻘게진 채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 좌석도 지나친 채 비행기 끝을 향해 계속 들어가는 창식 이를 데리고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녀석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남자들과의 여행은 원초적인 재미가 있다. 모든 것은 단순하며 공격적이다. 이것저것 따질 게 없다. 스포츠로 보면 이거저거 재지 않고 닥공이다, 수비는 없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순전히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는 첫 해외여행이기에 더 즐거워 보였다.
세부바다와 만나고 이국적인 음식들을 먹고 나의 친구들도 만났다. 그들 눈에서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고 신기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부바다는 언제나 깊고 푸르다.
호핑투어를 마치고 아쉬움이 남아 제트스키를 타고 바다를 누볐다. 직접 운전해 먼 바다까지 나가니 약간은 무서웠다. 제트스키를 운전하는 필리핀 친구들 미키와 잭슨이 우리를 뒤에 두 명씩 태우고 바다위에서 현란한 기술들을 선보였다.
얼마나 많이 해보았을까.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과 몸짓이 느껴졌다.
우리도 스릴이 넘쳤다.
하지만 나와 창식 이를 태운 미키라는 친구가 약간의 실수를 했는지 오토바이는 중심을 못 이기고 옆으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창식이 무게가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바다위에서 타는 것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갑자기 안 좋아진 날씨에 파도가 조금 세져서 약간 당황했다. 파도가 얼굴을 덮쳤다.
나는 바다에 빠지자마자 창식 이를 찾았다. 조금 멀리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창식이 신발이 둥둥 떠 있었다.
신발을 잡고 창식 이에게 향했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른 한 가지 사실.
창식 이는 어릴 적에 물에 빠진 적이 있어 물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생각해보니 호핑투어 할때도 잔잔하고 낮은 물에서도 굉장히 무서워하며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젠장!
나는 창식이 앞에서 급정지했다. 그리고 창식이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하고 당황한 듯 눈에 초점이 굉장히 산만했다.
“창식아 괜찮아?”
창식이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 심호흡 할까? 형이 저번에 얘기한 거 기억나? 임신부처럼 라마즈 호흡법.”
호텔 수영장에서 내가 웃자고 했던 말이다. 물에 들어가서 라마즈 호흡을 하라고…….
라마즈 호흡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하라고 했다.
갑자기 창식이가 음 파 음 파 를 하기 시작했다.
파도가 살짝 창식 이를 덮쳤지만 여전히 음파를 하고 있었다.
“헤이 쁘렌드, 돈워리, 내가 왔어.”
점점 강해지는 파도에 위기가 오기도 했지만 다행이도 미키가 아무 일도 아니란 듯 웃으며 우리를 구하러 왔다.
잠시였지만 위험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그 후로도 창식이의 라마즈 호흡은 우리의 웃음거리 중 하나였다. 남자들이야 서로 놀리는 게 일상이니 말이다. 여자들은 서로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남발 하지만 남자는 마음에도 없는 비난과 짓궂은 짓을 한다.
3박 4일 동안 우리가 가진 수면 시간은 불과 8시간 남짓이었다. 낮에는 쉴 새 없이 여행하고 밤에는 클럽으로 간다. 한국에서는 한 번 가본 후 맞지 않아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는데 외국이라서 그런지 자유롭고 마음이 편했다.
소심하고 부끄럼 많은 우리는 무대 위에서 알 수 없는 춤을 추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말이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여행을 하루 남겨둔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십만 원 정도의 돈이 남아있었다.
이거 먹고 저거 먹고 클럽 마지막으로 가고 등등을 계산해보자 돈이 약간 모자랄 것 같았다.
우리는 고민했다. 이 돈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견디느냐, 아니면 카지노에 몰빵 해서 거지가 되던지 하루만 /갑부가 되던지.
“형, 그냥 조금 싼 거 먹고 그럼 될 것 같은데…….”
창식이가 말했다.
“아우씨, 이거 다 잃으면 어떡해! 떨려! 떨린 다구!”
정연이가 호들갑 떨었다.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근데 난 모르겠다. 형이 결정해.”
형주가 말하자 너도 나도 모르겠다고 발을 뺏다.
이 불쌍한 녀석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결정은 나에게 달려있다.
“염병, 인생은 한 방이야!”
나는 /카지노로 향했다.
“에라, 모르겠다! /빨간 거!”
카지노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빨간 탁구공에/ 전 재산을 걸었다.
이른 시간이라/ 카지노에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 딜러들이/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 시켰다.
딜러가/ 내게/ 탁구공을 넘겼고/ 나는 /탁구공을 /위에다 놓았다./ 탁구공이 떨어지고 /이리저리/ 튕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슬로비디오처럼/ 늘어졌다.
공은/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세 번 /아래로 다섯 번 /위로 일곱 번을 돈 뒤, /퉁 퉁 퉁
빨간색으로/ 공이 들어갔다가 /다시 /흰색으로/ 공이 들어갔다.
우리는/ 절망했지만/놀랍게도 /공이/ 다시 튀더니/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빨 간 색!
우리는 환호했고/ 딜러들도/ 좋아해 줬다.
그때는 /기쁜 마음에/ 아무생각도 안하고/ 칩을 받아 /바로 /돈으로 교환했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진짜 도박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짜릿한 경험이었다.
반대였다면 /영화의 한 장면은 개뿔, /우리는 /거지가 되어 /하루 동안 굶고/ 불쌍하게/ 한국으로 돌아갔을 텐데 /세부는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행운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친구들이/ 항상/ 세부를 얘기하고/ 또 가고 싶다며 /그리워한다.
마지막 날 밤/ 우리는 클럽을 가기에 앞서/ 저녁을 먹고 /호텔 로비에 앉았다.
호텔 2층에서는/ 피아노연주에 맞춰/ 라이브 공연이 /펼쳐졌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웃겼던 것은/ 스스로/ 아픈 이야기를 꺼내거나/ 힘든 일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나는/ 친구들에게/ 억지 슬픔을/ 강요했다. 그때/ 나는 아마도 /슬픔 중독에 /걸렸던 것 같다.
어디서든 슬프고/ 아픈 이야기만 하려 했다.
나는/ 동영상을 키고/ 녹화를 시작했다.
“우리 /한 마디씩 할까. /창식아/ 슬픈 이야기 좀 해봐./ 아까/ 오늘 되니까 /슬프다며.”
“이, 이거 찍지 마.”
창식이가/ 얼굴을 가렸다. /늘 /부끄러워한다.
“아냐, 아냐./ 깜깜해서 안보여, /안 보인다고. /안 보인다니까!”
계속 /얼굴을 가리는 창식을 /내가 다그쳤다.
“이제 끝나는데/ 마지막 느낌을/ 말로 표현을 해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창식답게 /끝까지 /말을/ 다 들을 수 없었다.
“자, 그러면 /정연이 얘기해봐.”
“나는 /태어나서 한국 하늘만 보다가 /다른 나라 하늘/ 처음 봤는데, /바닷가에 있는 하늘/ 너무 감동적이었고 /그 속에 있는/ 동물들…….”
밝고/ 학생처럼 자신 있게 /이야기 하지만 /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 이제 형주.”
“음, 내가 생각했던/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되지 않았던 거 같아. /근데/ 얻은 게 많은 거 같아. /얻은 거는/ 추억도 얻고, /아쉬움도 얻고 가고/ 그런 기분…….”
“근데/ 왜 울려고 그래? 하하.”
내가 물었다. 슬픔을 강요한 /효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하하.”
해외 첫 여행이/ 자신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고/ 여행 시작부터 /내내 말하고 믿었던 형주는/ 5년이 지난 뒤에도/ 그 터닝 포인트를 /찾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찾았을까? 다시 /물어봐야겠다.
진짜로 /눈물을 보인 /형주 때문에/ 창식이가/ 소리 내지 않고 웃었고/ 정연이가 /놀려댔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전혀/ 슬퍼 할 거 같지 않았던/ 친구 녀석들이/ 밝게 말하고 /웃으면서도/ 모두/ 눈가가/ 촉촉해 졌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을 하고 /우리는/ 바로 클럽으로 향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어. 이 시간은/ 곧 사라질 거고 /우리는/ 그리워 할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잊겠지. 우리가/ 어디를 간 다해도/ 우리 삶의 무게는 /변하지 않을 거야. 어디를 가나/ 똑같다는 거야. 그러니까 /어디에서나/ 최선을 다하자!"
나는/ 찍어놓은/ 이 동영상을 가지고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이것은 / 싸이월드 /감성이었다.
오래 전 /동영상을 보며 /몹시도/ 부끄러워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또 웃을 수 있었다.
“근데/ 너희들/ 왜 울었던 거야?”
다들 /그때의 이야기로 /그 날의 주제는 /정해졌다.
어떻게 /서로 울었던 것 가지고/ 그렇게나 /즐겁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면 /남자 넷의 눈물도/ 나쁘지 많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밤새다 시피 /여행을 하고 아니, /정확히 /클럽을 갔다.
낮에는/ 청춘여행, 밤에는/ 일탈여행? 그리고 /감성에 지배당해 /눈물짓는 /남자들, 아무튼 /그때가 아니면/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제는/ 이 친구들과 /여행도 많이 했지만/ 그 당시/ 세부호텔 /로비에 앉아/ 눈물을 훔치던/ 남자 넷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에게/ 더 이상 /그때의 감정은/ 남아있지 않다.
여행에/ 익숙해져서 일까? /아니면 /감성이/ 다/ 메말라 버린 걸까?
그건 아마도 /어른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한다./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아쉬움에/ 눈물/ 흘릴 줄 알았던/ 순수했던/ 시절은 가고 /이제 늙어가는/ 아저씨들만 /남았다. 그러니 /감성이/ 남아 있을 수 가/ 없겠지.
감성의/ 바다에 살던 나조차도/ 이제/ 감성의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철없고/ 즉흥적이며/ 열정적이었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나이가 먹어가는 게/ 슬픈 건 아니다./ 단지 /그 시절 /그 감성과 /느낌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슬픈 거다.
나이에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그때의 우리는 /이제 없다.
친구들은 이제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간다.
나이가 먹은 지금도 /그때의 마음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 몰라도/ 그 시절이 /더 그리워진다.
그때 /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어디로 간 다해도/ 각자 /삶의 무게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변하고 /또 계속 변해간다.
나는 /내가 느꼈던 /모든 감정을 /기억하고 싶다./ 늘 /그것들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