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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l 19. 2022

윤찬 군, 이모도 열심히 살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군은 아들과 동갑이다. 내게는 소중하지만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여러 가지로 유별난 아들과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독보적인 윤찬 군을 대등한 선에서 비교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고3임에도 여전히 공부보다는 게임과 웹툰을 즐기는 게 못마땅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아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토록 귀중한 내 아들보다 지난 열흘간은 윤찬 군이 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최근 회사가 여러모로 부침이 심했다. 열심히 준비했던 일이 허사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유관기관에 양치기 아줌마처럼 낙인찍혀 버렸다. 아침 출근길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았지만, 윤찬 군의 연주를 들으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지난 한 달여간 부서 분들과 새로운 의제를 야심 차게 준비했다. 냉방도 안 되는 주말 사무실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부지런히 만든 자료를 보면서 내심 흐뭇해하기를 여러 번.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관기관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뭉텅이로 내용이 삭제되었다. 상사분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또다시 요리조리 사정없이 내용이 잘려나갔다. 심혈을 기울여서 고른 단어들과 문장들이 도려내질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부서에서 준비 중인 중요한 행사 일정이 수시로 오락가락하면서 유관기관의 원망도 덤으로 안게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열패감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퇴근할 때면 심신이 너무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내게 그나마 위로와 위안이 되는 건 윤찬 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주였다.


그 어려운 곡을 악보도 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연주하는 완벽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은 그다지 큰 문제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윤찬 군처럼 새벽 4시까지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내 마음을 다 바쳐 몰두할 만큼 열정을 지니고 있는지, 이런 자세로 내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다 보면 21년 차가 넘어가는 직장인이면서 여전히 2년 차 새내기처럼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 했다.




새로운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부임하신 뒤 조직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내가 최측근에서 모셔야 하는 또 다른 상사 분도 곧 바뀔 예정이라 내 삶에서 혁신과 변화는 이제 너무 당연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윤찬 군을 보면서 힘내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어제도 쏟아지는 업무 포탄 속에서 불평과 투덜이 모드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긍정 시선을 장착하고 즐겁게 해내겠노라는 평소의 다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나니, 뒤통수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다음 달 말에 내가 사는 동네에서 조성진 님의 연주가 있을 예정이다. 조성진 님은 대한민국에 피아노 클래식 열풍을 선사한 영리더 선두주자가 아닐까 싶다. 티켓팅에 꼭 성공해서 직접 같은 공간에서 열정 가득한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하고 싶다. 그분을 만날 때까지 불평안하기(Complaint Free Project) 성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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