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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Aug 23. 2022

생존의 의미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 손으로 식물을 몇 달 이상 제대로 키워본 기억이 없다. 식물 키우기 똥손임에도 무려 10개월 남짓 내 곁을 지킨 화초가 있다. 사진 속 동양란이 그 주인공이다. 작년 승진 때 지인께서 선물로 주신 건데, 이것마저 고사시켜버리면 남은 내 커리어도 함께 암흑 속으로 흘러갈 것만 같았다. 매주 흠뻑 물 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매일 잠깐씩 눈 맞춤도 잊지 않는 이유다.


지난 5월에 처음으로 꽃대가 올라와 며칠간 여러 송이 꽃을 보여줬는데 불과 석 달 만에 또 새로운 꽃망울을 선보였다. 물을 갈아주며 살펴보니 꽃 아래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게 보인다. 찾아보니 꽃꿀, 화밀이란다. 꿀벌이 이런 화밀을 모아서 숙성시키면 벌꿀이 되는 거라고 한다. 엄청 달콤하다고 해서 살짝 찍어 맛보니 양이 적어서 꿀만큼 진하지는 않지만 나름 진짜 맛이 느껴진다.




친한 동료가 소아조로증을 앓는 홍원기 군이 부르는 가면라이더 오프닝 주제가를 들려줬다. 조기 노화현상을 일컫는 소아조로증을 앓는 이는 전 세계에 불과 150여 명에 불과하다. 평균 수명은 길어야 17세. 치료약도 없다.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생겼는지 의문을 품다 보면 끝이 없다.


미라클 가이 원기 군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가면라이더 가사를 통해 들려준다.


왜 태어났는가 하는 건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거야
그러니 사는 거야
영혼을 불태워 살면서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생은 누구나 한 번밖에 없는 거야
바라는 대로 살 수 있기를


홍원기 군은 올해 17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소아조로증을 앓고 있다. 스무 살까지 살아남아서 축하파티를 하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대학 친구 중 한 명이 암투병 중이다. 그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미래를 꿈꾸는 게 미안해진다. "그때 내가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릴 때가 종종 있다.




리영희 님의 <대화>를 읽던 동료는 그 책 안에 등장하는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를 최근에 봤다고 한다. 일본의 포로로 잡혀 콰이강의 다리 건설에 참여한 독일 장교는 이 다리를 폭발하라는 조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폭발을 막기 위해 일본군과 힘 합쳐 지뢰 찾기에 나서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동료는 이 독일 병사의 마지막 결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소회 했다.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주인공의 마지막 결심 덕분에 더욱 이 책이 빛났다고 생각한다. 삶이 언제 어떻게 마침표를 찍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왜 내가 태어났는지, 어떤 존재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스스로 나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바로 삶이라 생각한다.




어제 가슴 아픈 기사 두 건을 접했다. 생활고에 극심하게 시달렸던 세 모녀의 자살. 그리고 보육원에서 나와  한참 대학생활을 즐겨야 할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한 한 청년. 이 대학생은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다'는 아쉬움을 쪽지에 남겼다. 책을 좋아하는 1인이기에 이런 호모 부커스를 보듬지 못했던 우리 사회가 안타깝고, 이 정도 사회밖에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우리 인간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생명이 주어졌기에, 나름의 흔적을 남기며 일상을 꾸린다. 생존이라는 기본적인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무실 식물이 내게 위안이 되듯이, 나의 평범한 삶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문득 지금까지 살아오며 맺은 소중한 인연들이 떠오른다. 오늘 지나기 전에 딱 열 명한테만 오랜만에 소식이라도 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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