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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l 22. 2021

DDD

막내딸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1학기 학기말 성적표를 보낸다는 것이다. 챙겨야지 마음먹었지만, 그새 잊어버렸다. 금요일 늦은 밤, 방학이라고 즐거워하는 막내딸 얼굴을 보니 그제야 잊었던 성적표가 떠오른다. 성적표 타령을 하니 어떻게 알았냐는 듯 흠칫 놀라는 듯하다가 이내 가방 속 깊이 숨겨둔 종이를 꺼내 든다.


성적표를 건네라는 성화도 무시한 채, 본인이 먼저 살펴봐야 한다면서 꼼꼼하게 보기 시작한다. A를 받은 과목이 무려 4과목이나 있다면서 기고만장이다. 미술, 음악, 체육, 그리고 일본어. 잘한 건 맞지만, 주지주의 학습과목에 비해서 상대적인 노력이 더 들어가는 과목이 아닌지라 칭찬의 강도가 그리 세지 않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홀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화내지 않겠다는 언약을 받은 뒤에야 마지못해 성적표를 넘긴다. 내 눈에는 D 3개가 매직아이처럼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D 3인방 주인공 과목은 국어, 수학, 사회다.




갑자기 30여 년 전 유행했던 김혜림 가수가 불렀던 노래 DDD가 떠오른다. DDD는 매력적인 외모에 파워 넘치는 목소리, 흥겨운 멜로디가 다 갖춰진 곡이었다. 당시 중 2였던데 내 마음뿐 아니라 대한민국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훔친 곡으로 기억한다.


막내에게 딱 맞는 주제가를 찾았다며 유튜브에서 찾은 노래를 들려줬다. 성적이 나쁜 건 과히 기분 좋을 수 없는 일인데 노래가 신나서일까 영상을 함께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니 중1 성적이 인생에서 뭐 그리 중요할까 싶어 진다. 30년도 전에 중학생이었던 내 마음을 흔들었던 이 곡은, 이제 중학생이 된 막내딸의 마음도 사로잡을 기세다.




DDD 노래를 듣다 보니 이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공중전화를 떠올리게 된다. 시외전화 통화가 가능한 획기적인 전화기가 나왔다고 놀라워했었지. 동전뿐 아니라 전화카드도 사용이 가능하던 공중전화를 애용했었는데, 이제는 전화부스를 찾기조차 어렵다.


대학 때는 삐삐 전성시대였다. 삐삐가 올 때마다 음성을 확인하고 싶어서 공중전화에 길게 줄 서서 기다리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삐삐가 올 때마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 반, 음성을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 반으로 가득 차서 설레곤 했더랬다.


흉기 수준의 카폰에 이어서 등장한 시티폰. 받을 수는 없고 걸 수만 있었지만, 통화품질이 좋지 않아 공중전화기 근처에서 통화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티폰은 혁신적인 기술진보 산물이었다. 핸드폰과 함께 한 나의 25년. 이제는 스마트폰 없는 세상이 상상조차 안된다. 앞으로 25년 후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아이의 성적표에서 시작한 DDD라는 단어가 이끈 생각의 실타래가 노래를 부른 장본인에게까지 닿는다. 김혜림 님의 근황을 찾다 보니 어머니 병간호로 한참 동안 활동을 중단했고, 본인도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신세를 지게 되셨다고 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병실 문 이름 옆에 DDD라고 낙서를 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 본인의 병명, 퇴행성 디스크 질환(Degenerative Disc Diseases)의 약자였다고 한다.


가수 운명은 자신이 부른 노래를 따라간다는 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저자는 자신이 쓴 글과 책의 내용을 따라가지 않을까? 남은 인생, 우중충하게 살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 쓰는 글들은 좀 더 희망적인 내용으로 채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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