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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Aug 07. 2021

54회 한능검 심화 시험 후기

46문항


50개 문항 중에서 가채점 결과 4개를 제외한 46개를 맞았다. 학창 시절 한국사 포기자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울만한 성적이다. 3점짜리를 많이 틀려 점수가 높지는 않지만 목표했던 1급 점수인 80점은 넉넉하게 상회했다.


지난 한 달간 참 부지런히 공부했다. 시간은 없고 공부해야 할 분량은 많고 기초는 약하고. 3대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했더랬다. 업무가 많은 날은 전혀 공부하지 못한 날도 있었고 주말이지만 다른 일정이 생겨서 거의 통으로 공부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시간만 허락한다면 평일에는 출근하기 전 두어 시간은 꼭 공부하고자 했다. 출근 전 여력이 안되면 퇴근 후 조금이라도 공부에 할애하려고 했다.




실제 성적은 2주 후에 나오지만 가채점 결과 1급 성공의 결실을 세 분에게 돌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최태성 선생님. 유튜브 무료 강의로만 만나 뵌 분이지만, 여러 차례 영상으로 만나 뵈어서 잘 아는 분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직접 뵙고 싶기도 하다. 강의마다 깃들여 있는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존경스러웠고, 이 분 덕분에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깊어졌다.


째 공신은 전한길 선생님 네이버 카페에 본인이 직접 정리한 암기비법 노트 서른 장을 공유해주신 분이다. 전한길 선생님은 회사 동료분이 추천해주신 선생님이시다. 내가 암기법을 만들어 외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자, 두음 암기법으로 꽤나 유명한 분이라고 하셨다. 강의를 한 번 들어봤는데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온라인 카페에만 가입해서 인기 있는 두음 암기 비법을 공유받았다.


전 선생님 카페에는 암기법이라는 메뉴가 별도로 있다. 카페 멤버들은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활용한 암기법들을 나눈다. 공부 초기에는 암기법만 전수받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착각에 빠져 2~3일 정도 부지런히 암기법만 모았더랬다. 나중에 알게 됐다. 암기법을 외우는 것도 일이라는 걸. 기초 내용에 대한 스터디 없이 암기법으로만 쌓아둔 건 활용도가 낮다는 걸. 논리 흐름에 따라 머릿속에 각인해두는 게 더 나은 듯싶어 사실 이 암기법으로 실제 활용한 건 10개를 넘지 않는다.


마지막 공신은 사람이 아닌 에듀윌에서 출간된 기출문제집이다. 기출문제를 풀고 다음 회차로 넘어갈 때 가끔 명언이 등장하는데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계획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과 같다
인생은 끊임없는 반복,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물론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 이틀은 휴가까지 내서 공부에 전념한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공부에도 요령이 필요한 듯싶다. 특히나 시험용 공부는 더욱더. 2주 정도 공부해보고 도저히 내가 모든 분야를 정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도 부족하고, 내가 가진 에너지는 더욱더 부족했다.


내가 선택한 전략은 전한길 선생님 카페에서 공수받은 서른 장 암기노트에 단권화하는 것이었다. 12회 기출문제 600개를 세 차례에 걸쳐 풀면서 자주 틀리는 걸 따로 표시했다. 사진과 함께 출제되는 문화재 파트는 아예 그림까지 그려서 눈에 익혔다. 가끔은 최태성 선생님 강의 중 일부를 필기해두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암기노트만 다섯 번 정도를 복습했다.




지인 중 한능검 성적이 가장 좋은 분이 둘 있다. 한 분은 역사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하셨다. 다른 한 분은 역사 전공자다. 이 두 분 모두 한능검에서 2문제를 틀렸다고 했다. 살짝 욕심이 났다. 나도 딱 두 개만 틀리면 좋겠다는. 목표했던 1급이라는 결실은 거뒀지만 워낙 꿈이 컸던지라 아주 아주 쪼금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왜 좀 더 점수를 높이지 못했는지 패인을 분석해보니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첫 번째는 최태성 선생님 강의를 필기하면서 좀 더 집중해서 들었어야 했다는 거다. 최태성 선생님 강의는 힘들 때 누워서 듣곤 했었다. 퇴근 후 지쳐서 공부할 힘은 없지만 아예 공부를 스킵하기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때 유튜브를 틀곤 했다.


물론 한 강도 제대로 못 듣고 듣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듣다 잠든 강의를 이어 듣지는 않았다. 독서실에서 집중해서 필기하면서 들었다면 훨씬 더 내 것으로 남지 않았을까? 오늘 시험장에 가는 차 안에서 2배속으로 몇 개를 들어보니 여전히 모르는 게 꽤 있었다. 내용 공부가 허술한 대목이 꽤 있었다는 거다.


휴가 낸 이틀 동안 기출문제를 푸는 데만 주력했다. 그 덕에 첫 번째로 풀 때는 평균 56점대에 불과했는데 2 회독 차에는 84점대로 껑충 뛰었고 마지막 3 회독 차에는 93점대까지 나왔다. 그런데 기출문제는 이렇게 꼼꼼하게 여러 차례 풀 필요까지는 없었던 듯싶다. 차라리 공부가 어느 정도 된 뒤에는 기본서를 다시 제대로 정독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작년 코로나 초반기 급히 한능검 시험장 방역 감독관으로 투입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무슨 시험인지도 모르고, 왜 이렇게 위중한 시기에 이리 많은 이들이 시험을 보는 걸까 의아하게만 생각했었다. 불과 1년 남짓 후에 내가 이렇게 급 관심을 보이게될 거라는 것도 모른 채. 역시 미래는 예측불허다. 그래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내가 내 맘대로 만들어갈 수 있으니.


한능검 시험을 보자고 제안한 딸은 정작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거의 포기 상태로 시험장에 갔다. 더 놀라운 건 아예 시험을 치르지도 못했다는 거다. 신분증을 깜빡한 탓이다. 공부는 나이가 아닌 간절함이 뒷받침되어야 성과를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


시험을 치르면서 해프닝이 두 번 있었다. 문제집과 답안지를 나눠줄 테니 수험표와 신분증까지도 모두 다 가방에 넣으라는 감독관의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답안지를 받아보니 수험번호를 적어야 했다. 문의를 하니 '아, 수험번호를 모르시나요? 그러면 수험표를 보고 적은 후 다시 수험표를 가방에 넣으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학번도 아닌데 수험번호를 외우는 이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수험표를 못 꺼내 두게 하지? 시간이 남으면 수험표에 답안을 적어서 가채점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런 불만은 시험이 종료된 후 바로 사라졌다. 시험이 종료되고 답안지와 함께 시험지를 제출하니 시험지를 가져가라고 했다. 아, 이런 올 컬러 시험지를 그냥 나눠주다니. 아, 이래서 수험표를 꺼내 둘 필요가 없었던 걸까? 덕분에 가채점이 훨씬 수월했다.


이렇게 즐겁게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많이 힘들었나 보다. 오후에는 그동안 공부하느라 못 읽은 책을 원 없이 보겠노라고 '보복 독서' 타임을 가졌다. 인근 서점에서 내리 네 시간 가까이 책을 봤는데, 이상하게 역사책 코너 근처에는 눈길도 주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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