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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Aug 11. 2021

10년 전 일기, 긍정의 신화

어떤 컬러의 렌즈를 끼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 부정 렌즈로 보면 피곤과 실망으로 점철된 하루지만, 긍정 렌즈로 갈아 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가 될 수 있다. 10년 전에 이런 하루를 글로 남겨뒀더랬다.  브런치에도 남겨두고픈 마음에 흔적을 옮겨본다.


2011.7.21 부정 렌즈를 끼고 지낸 하루 #1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떴다. 또다시 힘겨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연신 하품이 나온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노라고 이렇게 깜깜한 꼭두새벽에 일어나 청승을 떠는 건지.


블로그에 들어가 숙제를 하듯이 성경 한 구절 찾아 적고, 단군의 후예 일지를 쓰고, 모닝 페이지로 자서전 쓰기 글을 마무리짓는다. 토즈 홀릭을 눈팅하고 빵타 스킨십을 한다. 빵타 게시글을 읽을 때마다 한숨이 먼저 앞선다. 과연 내가 저 힘든 고난의 길을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작가와 저자'의 차이도 최근에서야 깨달은 주제에 과연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온갖 정성을 기울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한 시간 남짓 웹으로 글쓰기 연습을 마친 후 어젯밤 읽다가 잠든 책을 주섬주섬 다시 꺼내 든다. 영어공부를 해야 하지만 하기 싫다. 6시가 되어 슬그머니 아들내미를 깨워본다. 전날 퇴근이 늦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 못했기에 새벽 6시에 깨워 함께 놀아주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자녀와의 약속은 꼭 지키라는 선현의 가르침이 뇌리에 꼭 박혀있어 아들을 깨우기는 하지만 소중한 내 시간이 공중분해되는 게 안타까워 내심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깨우는 척하다 이내 그만둔다.


6시가 넘어서야 영어문장 몇 개를 쉐도잉 했다. 더 이른 시간에도 맑은 정신으로 글 쓰고, 책을 읽었으면서 영어만 펴면 입으로는 따라 읽으면서 눈이 수시로 감긴다. 중간중간 스타카토처럼 정신줄도 놓는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이래서 과연 8월 초에 치르는 시험에서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 참 한심하다.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도 욕심은 있어 무턱대고 목표는 높게 잡곤 하는 내 어리석음과 반복되는 헛된 공약에 슬슬 지쳐간다.




회의가 있어 오랜만에 바지 정장을 찾아 입었다. 너무 긴 바지단 수선을 계속 미뤘더니 볼썽사나운 바지를 그대로 입고 출근을 할 수밖에 없다. 사무실에 제일 먼저 출근해서 국과장님 보고용 자료를 챙겨드린다. 오늘은 내가 담당하는 회의가 있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회의 준비로 신경이 다소 날카로워져 있는데 한 동료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발언을 한다. 함께 화를 내려다 최근에 읽은 소크라테스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억지 쓴웃음을 지었다. 저런 성마른 이들 없는 곳에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어제 발표난 인사 공지를 뒤늦게 읽는다. 누구는 유학 가고, 외국 유수 기관에 파견을 가는데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있다니. 인사가 만사라는데 오늘자 전보가 난 동료들 중 내가 기쁘게 축하해줄 만한 동료 하나 자신 있게 짚기가 쉽지 않다. 내 잃어버린 10년, 회사를 다니면서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구내식당에 가서 점심을 대충 때운다. 오늘따라 사람은 많고 먹을 만한 반찬이 없다. 점심 후에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 빵타 스킨십 피드백 결과가 있는지 살펴본다. 역시나 송 교수님 댓글이 몇 개 보인다. 하나같이 다 의욕을 꺾기에 충분한 매서운 글들이다. 거기에 댓글을 달 용기도 힘도 다 빠진다. 내 힘에 너무 버거운 일을 시작한 것일까.




회의 장소로 이동해서 회의 준비를 한다. 회의 시작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제일 먼저 발표를 해야 하는 팀이 도착하지 않아 애가 탄다. 담당자가 도착하자마자 짜증이 인다. 마음이 급하니 PT 시연 준비가 매끄럽게 되지 않는다. 일찍 와서 준비하지 않고 턱걸이로 도착한 팀에 대한 불만으로 얼굴이 찡그러진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니 피곤이 몰려온다. 회의 결과를 정리해야 하는데 볼펜을 쥔 손에 힘이 자꾸 빠지고, 악필의 대명사 글씨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맹렬한 기세를 떨친다. 내가 작성한 안건은 깊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일까? 왜 내가 맡는 업무들은 항상 이렇게 용두사미로 초라해지는 걸까?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에 돌아왔지만 쌓여있는 일더미 앞에서 쉴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아슬아슬했던 바짓단이 드디어 문제를 일으켜 동료에게 반짇고리를 빌려 부랴부랴 화장실로 가서 바느질을 시작한다. 중간중간에 화장실 불이 꺼져 바느질하다 말고 나와서 과장스런 손짓을 해대며 불을 켠다.  


계속 미적대며 마무리를 짓지 못하던 업무를 시작한다. 조용한 곳에서라면 좀 더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시끄러운 사무실 안에서 정신을 집중해 일을 하려니 쉽지 않다.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원망도 슬슬 일어난다. 저녁을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우고 계속 일을 해댄다.  


일의 피치를 한참 높이고 있을 때 입트영 학습 동료가 잠깐 방문한다. 며칠 째 서로 외우는 진도를 점검하지 못하고 있다. 의욕이 앞서 하루에 두 개를 외우겠노라고 선언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외우는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앞으로 계획을 잠시 논의해보지만 뾰족한 답이 나올 리 없다. 그냥 벌금을 올리는 유치한 방법을 동원하기로 한다. 나는 맥그리거가 말하는 Y형 인재는 되지 못하는 위인인가 보다.

 



아들내미의 전화를 받는다. 이틀 연속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잔뜩 화가 나 있는 목소리다. 아들이 잠들기 전까지 들어가겠노라고 임기응변식 답변을 하고 부랴부랴 전화를 끊는다. 10시 남짓 되니 급한 일을 간신히 마무리지을 수 있게 된다.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간다. 결혼 안 한 싱글들, 아니 결혼은 했어도 아이들을 이미 키워버린 선배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양육의 부담이 없이 일에만 몰두하고 싶다.


피곤하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아들과 놀아준다. 11시가 다 된 그 시간까지 이도 안 닦고 있는 아들. 어머니는 애들 양치하는 거 하나 제대로 지도를 못해주시나. 오늘의 놀이 주제는 벤 10이다. 나는 10가지로 변신해야 한다. 내가 외우고 있는 변신 아이템은 모두 다 구태의연한 것들이고, 아들은 그 뒤에 나온 업데이트 버전으로 응수한다. 게임이 될 리가 없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노는 시간이 30분을 넘어가자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다. 불을 끄고 누워서 놀자고 아들을 달랜다.  


다행히 간신히 졸음을 참고 있었던 아들이 화답을 한다. 불을 끄고 누워 아들을 영웅신화의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잠이 든다. 정신없이 보낸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구나.  


2011.7.21 긍정 렌즈를 끼고 지낸 하루 #2


마음의 자명종 소리와 함께 알람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또 다른 멋진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새벽 잠의 허리를 동강 끊고 과감히 이부자리를 걷어내는 게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좀 더 수월해지고 있다. 천복을 향한 이런 성실한 하루하루가 모여 내 삶의 이정표를 세우고 내 삶의 대변혁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잠 좀 덜 잔 게 아깝지 않다.


작년 10월 중순부터 정성을 다해 가꾸고 있는 블로그부터 찾아가 본다. 언젠가는 내 책을 낼 거고, 이 블로그에 쌓아둔 내 글과 정신의 정수가 그때 단단히 효자 몫을 하리라. 새벽 내 가슴에 울림을 주는 하느님 말씀을 옮기고, 오늘의 각오를 간단하게 다진다. 나와 함께 천복의 길을 향해 걷고 있는 동료들이 모여있는 토즈 홀릭과 빵타를 찾는다. 역시나 오늘도 많은 것을 배운다. 아직 가야 할 지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런 열정과 성실함을 무기로 나는 꼭 성공하고 말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어젯밤에 읽은 책에서 받은 영감을 글감 삼아 모닝 페이지로 자서전 쓰기를 해본다. 글을 쓰면서도 참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보니, 내 안에 작가의 마음과 숨결이 자리 잡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시간인데 최근에 그 즐거움이 더 커지고 있는 독서를 하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진정한 자아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르기로 한다. 어이쿠,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6시가 되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을 깨워본다. 딸들과 달리 아들은 나에 대한 사랑이 유난히 깊다.  


그런데 너무 깊게 잠들어서인지 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손동작에 얼른 일어날 것 같은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아들이 푹 더 잤으면 해서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이제 영어를 할 시간이다. 영어로 새로운 문장을 익히고, 영어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익힐 때마다 전율에 휩싸인다. 그런데 듣기 실력이 과히 좋은 편이 아니라서 테이프를 듣다 보면 어느새 꾸벅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나는 우리말도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외국어인데,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날마다 이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영어가 우리말처럼 들리는 그런 날이 오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오늘은 내가 사회를 봐야 하는 회의가 있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언젠가는 연단에 서서 강의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기에 이런 날이 내게는 더욱더 소중하다. 전문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바지 정장을 골라봤다. 단이 좀 길기는 하지만 여름용 신발 굽이 높으니 괜찮을 것 같다. 새로 산 바지를 입고 상쾌한 마음으로 제일 먼저 사무실 아침을 연다.


어제까지 미처 챙기지 못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급한 일들을 처리하다 오해로 비롯된 조그만 사건이 생긴다.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이야기를 듣고 잔뜩 화가 나서 찾아온 동료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동료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그 동료가 그런 오해를 하지 않도록 미리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번거롭더라도 소통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일을 하다 인사 통지서를 발견했다. 어제부터 떠있었는데 미처 내가 챙기지를 못했다. 반가운 이름이 많이 보인다. 기쁜 마음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함께 축하한다. 그동안 깊은 교감과 친분을 나눈 동료들이 많지는 않지만, 오늘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평소에 교류가 많지 않은 동료에게 문자를 보내는 게 잠시 계면쩍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오늘 새벽에 읽은 책의 문장을 떠올려본다. 두렵더라도 일단 안전지대를 넓혀보라는.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일을 통해 내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문장이었다. 답문자가 속속 들어온다. 거봐, 괜히 지레짐작으로 거리감을 둘 필요가 없었잖아. 용기를 낸 내 자신이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본다.


회의가 다른 장소에서 개최되기에 점심을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구내식당으로 갔다. 구내 음식은 조미료를 치지 않아 담백함을 느낄 수 있다. 양을 조절할 수 있어 과식하지 않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점심이 일찍 끝나 소중한 시간을 20분이나 확보할 수 있었다. 오전에 마무리짓지 못한 필사를 끝내고 빵타 스킨십 결과를 살핀다. 금과옥조 같은 소중한 답변들이 달려있다. 무료로 이렇게 귀한 조언들을 얻을 수 있다니, 내 자신이 참 복 받은 이라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해진다.  




회의 장소가 가본다. 이 기관은 처음 방문한 곳인데 회의장이 무척 쾌적하다. 대부분 참석자가 도착했고 회의도 매끄럽게 진행이 된다. 몇몇 분이 조금 늦고 아슬아슬한 상황도 빚어지긴 했지만, 그게 다 생방송의 묘미 아니겠는가. 이런 임기응변에 잘 대처해야 사회자로서의 내 역량도 함께 쌓여가리라. 늦게 도착한 동료 팀이 안쓰럽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네들 마음은 얼마나 시커멓게 타들어갔을까.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 마음속 긴장이 풀어지니 눈꺼풀이 무거워짐이 느껴진다. 커피로 잠을 떨치려 노력하지만 내 신체리듬이 오후 2시부터 3시 사이는 좀 너그럽게 양해해달라고 살짝 윙크를 한다. 내가 준비한 안건은 별 이의가 없이 통과가 되었다. 이제 이 방안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사업의 현황을 보다 숙지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내 손과 발이 더 바빠져야 한다는 각오를 해본다.


회의가 잘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회의 중간에 더 길어져버린 바지를 수선해야 한다. 다행히 동료로부터 반짇고리를 빌릴 수 있어 화장실로 급히 향했다. 바느질 중간에 불이 꺼져 밖으로 나와 손사래를 쳐가며 다시 불을 켠다. 인체감응용 센서처럼 지인들의 반응에 민감한 센스로 무장한 여인, 독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촉수를 훈련시키는 예비 저자가 되어보자는 단상을 펼쳐본다.




이제 사무실로 돌아와 급한 업무를 처리한다. 이번 업무는 글쓰기다. 글쓰기라면 요즘 나의 주된 관심 영역 아닌가. 이게 웬 천우신조 상황인가. 어차피 별도 시간을 내서 연습해야 하는 글쓰기를 이렇게 업무를 통해 연습할 수 있다니. 단어 하나도 세심하게 고르고 문장 한 줄도 허투루 쓰지 않겠노라고 각오를 다지며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와중에 동료들의 정겨운 덕담들이 간간히 들린다. 서로에 대한 정이 물씬 풍기는 따뜻한 대화를 느끼며 내 글도 함께 따뜻해져 감을 느낀다. 글에 몰입하다 보니 맥이 끊길까 싶어 저녁은 간단하게 사무실에 있는 컵라면으로 해결한다. 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한참 일하고 있을 때 반가운 동료가 방문한다. 입트영을 함께 암기하는 동료다. 나보다 훨씬 젊지만 친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삶에 대해 진지한 자세가 예쁜 동료다. 요즘에 둘 다 맡은 업무가 적지 않아 입트영을 외우는데 충분한 시간을 내지 못했다.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해보자고 각오를 다져본다. 어차피 다음날 입트영을 구입할 자금도 필요하니 겸사겸사 벌금을 좀 높여보기로 한다. 환한 웃음과 함께 동료를 보낸다.




이번에는 반가운 전화 한 통이 온다. 아들내미다. 주말에 함께 있다 출근을 하면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에 그치니 이 시간쯤 되면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 애잔해진다. 좀 더 집중을 해서 업무를 신속하게 마무리지어야겠다. 이렇게 나를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진다. 몇 년 지나면 엄마의 손길을 부담스러워하는 나이가 되어버릴 텐데 그전에 실컷 사랑을 전하고 실컷 안아주리라.


일을 마무리 짓고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집으로 향한다. 아들과 무엇을 하고 놀까 궁리하다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인 벤 10을 선택했다. 놀이를 하기 전에 혹시나 하고 이를 살펴보니 아직 양치 전이다. 달달이와 콤콤이 잡으러 가자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노래를 부르며 이를 닦는다. 아들은 긍정적인 문장에 매우 적극적으로 반응을 한다. 아들도 나처럼 질책보다는 칭찬을 더 좋아한다. 칭찬은 아들을 무럭무럭 크게 하는 성장촉진제다.  


아들과 재미있게 놀다 마무리를 지을 때쯤 귓속말을 한다. 방 안에는 쌔근쌔근 먼저 잠자리에 든 누나 말고는 없는데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고 손으로 입을 막는 모양새가 귀엽기 그지없다. '엄마, 내가 오늘 엄마 봐준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나를 이길 수 있었던 거예요' 사실, 나는 게임의 룰을 잘 모른다. 각 변신 아이템이 갖고 있는 파워의 디테일한 속성이라든지 변신 모드를 잘 모르기에 그냥 달달 암기하고 있는 이름들만 이야기하면 나머지는 아들이 다 알아서 스토리를 구성한다. 그래서 내가 이겼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런 내게 중차대한 비밀을 털어놓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 아들의 폼이 재미있기도 하고, 엄마 기 살리려고 봐주면서 게임을 한 아들의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다.  


즐거운 마음에 가득 차 잠자리에 든다. 아들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들과 함께 꿈나라로 간다. 오늘, 하루 정말 후회 없이 보냈다. 열심히 산 힐데, 박수를 보낸다. 잘 자~. 더불어 이렇게 완벽한 하루를 주신 하느님께 짧은 감사를 드려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세상은 그대로다
내 주변 이들도 그대로다
나만 바뀌면 된다
아니, 세상과 주변 이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의 명도와 채도를 높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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