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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자 Mar 07. 2021

정진석 추기경 병실 취재기


추기경 병실 앞에 도착한 건 3월 1일 새벽 1시 40분이었다. 추기경은 수면 중이라고 했다. 전날 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보이고 들리는 걸 전부 기록하며 후배들과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기자들 용어로 뻗치기의 시작이었다.


오전 6시가 되자 의료진이 병실을 분주하게 오갔다. '혈압이 떨어지고 있다, 2시간 정도 남았다'는 말이 들렸다. 병실 상황을 시시각각 회사에 보고했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TV와 라디오 리포팅은 병실 근처에서 전화연결로 처리했다.


오전 9시 30분,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서울대교구 주교단이 도착했다. 잠시 후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가 병실에서 나와 간단 브리핑을 했다. 어제 저녁 심폐소생술을 해야 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추기경의 뜻에 따라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수치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고, 현재는 수액만 맞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계속 수면 중이었다. 주교단은 오전 내내 병실을 지키며 기도했다. 병동에 긴장이 감돌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완만하게 떨어지던 혈압이 조금 올랐다는 말이 들렸다. 주교단은 오후가 되어서야 병실을 떠났다. 고비는 넘겼지만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뻗치기가 12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허기가 밀려왔다. 돌아가며 병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복귀했다.


SNS에선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했다는 가짜뉴스가 나돌았다. 그래서 우리는 더 신중하게 보도했다. 기사 한줄, 단어 하나도 여러 번 고민했다.


오후 6, 추기경이 병실에서 봉헌된 미사 중에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짓으로 의사 한다고 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의료진은 추기경이 밤을 무난하게 넘길  같다며, 취재진의 철수를 권고했다. 급박한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회사에 상황을 보고했다. 다들 놀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추기경은 며칠 전에도 고비를 넘긴 뒤 "천국 문 앞에 갔다왔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날 밤 뻗치기를 종료하고 24시간 만에 퇴근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건 2월 21일이었다. 통증이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하자, 주변의 권고로 입원했다. 추기경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병자성사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회사는 추기경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병원 출입이 제한돼 추기경의 병실을 직접 취재할 순 없었다. 그래서 병실을 오간 성직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입원 일주일 만인 2월 28일, 추기경이 위독하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우리는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추기경의 상태는 악화됐다. 선종하실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급히 서울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밤 10시 별관에 있는 기자실에 자리를 잡았다. 추기경의 병실이 있는 본관에 들어가려면 병원측의 허락이 필요했다.


부지런히 전화를 돌려 겨우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바로 취재진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검사 받으러 대기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고, 본관 들어갈 때 대기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코를 찌르고 모두 음성이 나온 뒤에야, 추기경의 병실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체온도 몇 번이나 쟀는지 모른다. 그날 밤은 참 길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취재진




나는 정진석 추기경과 추억이 많은 편이다. 추기경의 집무실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갔다. 물론 취재 때문이었다. 평화방송 기자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2005년 12월 성탄 특집 대담 녹화 (대주교 시절)
2008년 11월 크루즈 성지순례 중에 (추기경 시절)


2012년 추기경이 은퇴한 후에도 종종 추기경을 만났다. 가장 최근에 추기경을 만난 건 2019년 12월, 58번째 책 출간 기자간담회 때였다. 추기경은 사인 요청을 흔쾌히 수용했다. 새 책에 내 이름과 세례명, 인사말을 천천히 꾹꾹 눌러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추기경의 병실 앞에 있는 동안 추기경을 만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3월 1일 이후 추기경의 병실을 다시 찾을 일은 없었다. 추기경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의료진도 놀라고 있다고 했다. 추기경은 며칠 전 긴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걱정을 끼쳐) 송구합니다." 


이번에 추기경을 보면서 새삼 깨달은 사실이 있다. 아무리 의술과 과학이 발달해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 인간의 생명은 그분께 달렸다는 것 말이다. 추기경의 쾌유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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