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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자 Dec 11. 2020

나를 만든 8할은 일기

저녁 일기에서 아침 일기로

일기가 숙제였던 초등학교 시절, 나는 일기를 하루에 2번씩 썼다. 연습장에 일기를 쓰면, 엄마가 문장을 다듬어서 불러줬다. 그럼 나는 일기장에 정성스럽게 받아 적었다. 지금 생각하면 귀찮고 번거로웠을 법도 한데, 그땐 그런 걸 몰랐다. 엄마와 함께 일기를 쓰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내가 쓴 문장이 더 좋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간호사 출신인 엄마는 글재주가 있었다. 엄마의 글은 병원 소식지에 실리기도 했다. 글쓰기를 좋아한 엄마는 어린 딸이 쓴 일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퇴고를 도와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쓴 일기를 다듬어주기만 했지, 크게 바꾸진 않았다. 아마도 동심을 지켜주려는 배려였으리라.


초등학교 1학년 때 쓴 일기


몇 년 후, 나는 혼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연습장도 엄마도 거치지 않았다. 일기를 쓰면서 글을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 생각도 깊어졌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는데, 일기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일기 쓰기는 중고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주로 힘들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일기장을 펼쳤다. 일기를 쓰고 나면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초중고 12년 동안 쓴 일기장들


대학생이 되어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일기를 썼다. 일기가 쓰고 싶은 날엔 주저하지 않고 마음을 주르륵 써 내려갔다.


나의 일기는 최근 큰 변화를 맞이했다.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을 읽었는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 중엔 아침 일기를 쓴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저녁 일기만 써온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도 아침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에 손글씨로 일기를 쓰는  어려웠다. 그래서 Evernote 앱을 깔고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침 일기를 쓰면서 일기 내용이 달라졌다. 저녁 일기를 쓸 땐 하루를 돌아보며 자책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아침 일기를 쓰니 활기차고 긍정적인 내용이 많아졌다.


아침 일기를 쓴 지 석 달이 됐다. 아침 일기를 못 쓴 날엔 점심 일기나 저녁 일기라도 쓰려고 노력한다. 여력이 있는 날엔 아침 일기도 쓰고 저녁 일기도 쓴다. 앱에 쓴 일기는 정기적으로 타공지에 출력해서 바인더 노트에 끼우고 다시 읽어본다. 과거에 쓴 일기를 읽다 보면 새롭기도 하고 느끼는 점이 참 많다.


돌이켜 보니, 지금의 나를 만든 건 8할이 일기였다. 소소한 일상을 기억하게 해 주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해 주고, 글쓰기 실력도 키워준 일기. 평생 이어갈 고마운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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