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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r 04. 2024

거리와 거리의 파토스 2부

거리(street)와 거리(distance)의 파토스

거리(street)와 거리(distance)의 파토스 2부


1.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삽화 출처: 문학동네>


생각지 않게 파토스를 설명하는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제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나타난 파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차례다.  도스토옙스키의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매우 유명하다. 그가 외투에 대해 했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당연히 <외투> 읽는 것은 좋다. 짧은 단편이므로 단숨에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고골의 <외투>라는 작품을 읽지 않아도   있는 방법이 있다.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 고골의 <외투>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통해 <외투> 내용을 유추해   있다.


<외투>와 <가난한 사람들>의 유사한 부분은 하급 관리의 비루한 삶을 다뤘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마까르 제부쉬낀은 페테르부르크의 초라한 뒷골목에 사는 50세 가까운 가난한 하급관리이다.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심약하지만 바르바라의 일이라면 뭐든 나서서 도와준다. 빚을 내서까지 그녀의 형편을 살핀다.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막막한 현실 때문인지 매사에 정말 무기력하다.


마까르는 자기 비하와 자기 연민에 쉽게 빠지고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마까르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바보스럽지만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름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을 모두 팔아 바르바라를 도와준다. 관대한 마음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하게 되고, 마침내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게 된다. 19세기 러시아의 신분 사회가 만들어 낸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이 인물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의 전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인생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남의 인생을 떠안고 살고 있으니, 돈과 명예는 점차 수렁으로 빠지게 되고, 결국엔 사랑하는 여자조차 잃게 된다. 바르바라가 자신의 가난에 찌든 삶에 굴복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상황에서조차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못한다.  그녀의 결혼 준비를 도와주는 희한한 상황에서 그는 어떤 절망과 굴욕을 감내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삶이 너무 무기력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에서 드러나는 파토스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2. 페테르부르크_변화와 격동의 시대적 상징


<1716 Alexey Zubov, 좌: View of Winter Palce of Peter, 우: View of st Petersburg: 출처: 위키피디아)


<죄와 벌>에서 주인공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항상 연민, 온정적 태도를 유지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첫 작품이 <가난한 사람들>이고, 이후 <상처받은 사람들> 등의 작품을 통해 동일한 시선을 유지했던 것을 보면 작가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이루 짐작하고도 남는다. 도스트예프스키가 그 도시에 가난한 사람들로 살았던 경험에 의해 더 생생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적 배경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후덥지근하고 더럽고 복잡스러운, 굴욕적이고 불쌍한 인간군상이 다양하게 출현하게 된 도시는 파란만장했던 러시아 역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년 전 러시아는 사회 경제 개혁에 실패했다. 국민들의 높은 문맹률, 지도층의 무관심, 국민적 타성, 광대한 국토로 인한 관리의 어려움이 있었다. 1812년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의 실패하자 러시아는 갑자기 전승국으로 급부상하며 열강의 주목을 받게 된다. 추후 나폴레옹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큰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가 주목했던 초인사상의 롤모델은 나폴레옹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엉겁결에 승전국이 되었지만 크림반도를 사이에 둔 전쟁을 치러야 했다. 크림전쟁은 1853년 10월 4일부터 1856년 3월 30일까지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제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 이름은 전쟁 중 후반기 이후의 주전장인 크림 반도에서 따온 것인데 실제로는 크림 반도에서만 싸웠던 것은 아니다. 1877~1878년의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또 있기 때문에 제1차 동방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연합국에게 곧 패배하게 된다. 프랑스의 원정 실패는 러시아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험난한 알프스와 러시아의 혹한을 경험하지 못한 나폴레옹의 패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크림전쟁에서 패전국으로 전락한 러시아는 패전국으로서 굴욕적인 외교를 경험해야 했다.


1861년 패전 이후 사회 개혁의 필요성 대두된다. 영국, 프랑스 등은 러시아의 개혁 개방을 촉진하기 위해 농노제를 폐지를 종용한다. 러시아는 토지개혁 및 농노해방령을 선포하지만 농도 해방 이후에도 정부의 무능으로 농업의 후진성은 그대로였고 빈곤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국민들의 생활을 위협했다. <죄와 벌>의 배경이 된 페테르부르크는 계획도시로 북유럽 진출을 위한 교두보였다. 19세기 후반 이 도시는 영국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와 프랑스, 독일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자들 간의 투쟁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외세의 침탈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여러 이데올로기의 대결 속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이런 배경 속에서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처참한 삶의 모습을 묘사했다.


3. 페테르부르크 거리(street)의 파토스


<런던의 슬럼가, G. 도레, 1872, 출처: 위키피디아>


작가는 한평생 도박중독자로 살았다. 지독한 도박 중독으로 평생 돈에 대해 걱정해야 했다. 그는 경제관념이 다소 떨어져 두 번째 아내 안나가 돈 관리나 사업을 주도적으로 맡았다. 그는 글만 읽고 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선비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전생애를 걸쳐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항상 연민을 갖고 있었으며 온정적 태도를 유지했다.


페테르부르크는 도스토옙스키의 도시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스토옙스키는 언제나 페테르부르크를 좋게 묘사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 도시는 유럽의 대도시를 베껴 만든 짝퉁이었고, 겉모양은 화려하지만 러시아의 훌륭한 전통은 어디에도 남지 않은 유령같이 희멀건 얼굴을 하고 있는 도시였다. 뻔지르한 외향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도시의 뒷골목의 남루하고 비루한 모습을 보며 그는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을 보면 그는 유럽 다른 도시들을 여행할 때도 항상 뒷골목을 방목했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연민했다고 한다. 작가가 묘사한 작품 속 내용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거리는 지독하게 무더웠다. 게다가 후텁지근한 공기, 혼잡, 여기저기에 놓인 석회석, 목재와 벽돌, 먼지, 근교에 별장을 가지지 못한 뻬쩨르부르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독특한 여름의 악취, 이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청년의 신경을 한꺼번에 뒤흔들어 놓았다. 이 지역에 특히 많은 선술집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와 대낮인데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술 취한 사람들이 거리의 모습을 더욱 불쾌하고 음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 순간 이목구비가 뚜렷한 청년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혐오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그는 멋진 검은 눈동자에 짙은 아맛빛 머리털을 가진 미남으로, 약간 큰 키에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곧 깊은 상념에 잠겼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일종의 무아경 상태에 빠져,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또 의식하기를 원하지도 않으면서 걷고 있었다. 스스로 인정했듯이 그는 가끔 혼잣말을 하는 버릇대로 무언가를 입 속에서 웅얼대고 있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생각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으며, 몸도 쇠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틀째 그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농노제 폐지가 되고 수도로 과밀화된 사람들로 인해 실업 문제가 대량으로 생겨났다. 가난해졌지만 희망을 품고 계속해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그들을 착취하려는 사람들과 이용당하면서 굴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페테르부르크의 뒷곡목 이야기를 통해 혁명의 빛과 어두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숨 막힐 듯한 도시, 욕심과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의 모습은 오늘날 내가 살고 있는 메트로폴리탄과 다르지 않다. 지금 한국 사회도 그때의 문제를 반복하며 시름하고 있다. 인구소멸을 걱정하지만 수도권의 항상 만원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스트레스받고 고통스러워한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서 서로 밀치고 눌리며 죽음을 경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위협받는다. 쾌적한 환경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기본권에 속하지 못한다. 오늘도 이 도시 어디에서는 가난하고 비루한 삶을 비관한 누군가가 외로운 삶의 투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스토옙스키가 전하는 도시의 거리와 뒷골목의 음울한 파토스이다.


4. 페테르부르크 뒷골목: 지옥의 파토스


주인공은 친구에게서 받은 독일어 논문 번역을 가져다주러 갔다 오는 길에 아주 불쾌한 경험을 한다. 거리에서 마부에게 채찍에 맞았던 것이다. 마부가 비키라고 서너 번 외쳤지만 그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채찍에 맞은 순간 그는 옆으로 비켰고 마차는 지나갔다. 그는 증오에 찬 눈으로 지나가는 마차를 노려 보았다.


그 순간 어린 여자 아이가 그의 손에 20꼬뻬이까 짜리 은화 한 잎을 꼭 쥐어줬다. ‘받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과 함께. 그의 남루한 옷차림과 모습이 그를 걸인으로 착각하게 한 것이다. 그 아이는 채찍에 맞은 라스꼴리니코프가 불쌍해서 적선했을 것이다. 그는 한 동안 네바 강가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짙푸른 강을 응시했다. 주변의 성당은 햇빛에 비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채찍에 맞았다는 아픔을 잊어버린 채 불안한 상념에 시달렸다. 그리고 페테르부르크를 여섯 시간이나 배회한 후 그런 복잡한 심정으로 돌아간 그의 조그만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피곤했는지 그는 소파에 누워, 외투를 끌어당기며 잠에 빠져 든다. 잠 속에서 그는 무서운 소리를 듣는다.



완전히 땅거미가 졌을 때, 그는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 때문에 잠을 깼다. 맙소사, 대체 이게 무슨 비명 소리란 말인가!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소리, 그런 고함 소리, 통곡 소리, 이를 가는 소리, 눈물과 구타와 욕설을 그는 단 한 번도 듣고 목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런 짐승 같은 행위와 광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두려움에 떨며 일어나, 그는 침대 위에 앉아서, 매 순간 가슴을 조이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맞붙어 싸우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와 욕설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여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소스라치게 놀라고야 말았다.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빠른 말씨로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애원하듯 내뱉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그녀가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있던 계단에서 제발 때리기를 멈춰 달라고 애걸하는 소리였다. 때리던 사람의 목소리는 악의와 광기로 인해 쉬어서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그 사람도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으나, 역시 숨을 헐떡거리며 다급히 말을 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갑자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일리야 뻬뜨로비치가 여기서 여주인을 때리고 있다니! 그는 그녀를 발로 차며, 그녀의 말소리를 들어 봐도 분명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한 것일까?


<죄와 벌, 도스토옙프스키>




도스토옙스키는 위 장면에서 지옥의 파토스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그가 단테의 작품을 읽었을까? 읽지 않았더라도 상관은 없다. 단테가 본 지옥과 도스토옙스키가 목격한 지옥은 서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리고 단테가 묘사한 지옥의 파토스는 이생의 너머에 있는 지옥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소리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다. 가난과 추위와 외로움에 지친 영혼들은 현생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찬란한 도시의 이면에 자리 잡은 뒷골목, 가난하고 남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운명의 여신은 더 냉혹하고 가차 없다. 오늘도 누군가는 짐승 같은 행위와 광분, 고함 소리, 통곡 소리, 눈물과 구타와 욕설이 난무하는 폭력 속에 신음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니체가 도스토옙스키를 극찬한 이유가 바로 이런 구체적인 삶과 인간의 비극적 상황의 묘사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니체가 도스토옙스키를 시대의 유일한 심리학자로 추켜세운 것은 바로 이런 심리 묘사 장면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니체가 주장한 원한감정(르상티망:ressentiment)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원한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분석한 악한 계급이 가진 감정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일어 Gut의 용례: gut은 하나의 단어로 선과 악을 모두 지칭한다. 좋음=선의 구조를 갖고 있다. 출처: 네이버 독일어 사전 >


니체는 자신의 저서 <도덕의 계보학>에서 좋음(gut)과 나쁨(schlecht) 그리고 선(gut)과 악(böse)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들의 용법을 분석을 통해 유럽 문화의 기저에 있는 계급적 차별을 규명해 냈다. 독일어에서 좋음과 선은 모두 gut(영어도 마찬가지이다. Good은 좋음과 선이라는 단어로 사용된다)이라는 단어로 사용된다. 따라서 좋음과 선은 용법이 통일되어 있다. Gut은 좋은, 선량한 품위가 있는, 우수한, 상등의, 훌륭한, 정중한, 신용 있는, 빈틈없이 착실한, 유쾌한, 건강한, 유용한, 충분한, 만족하는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니체는 이런 형용사가 수식하는 단어들은 귀족 계급에 준하는 명사 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좌: 나쁨(schlecht)의 용례, 우: 악(böse)의 용례

:나쁨은 열등한 계급적 특성을 반영하고, 악은 열등한 계급의 사람들이 가진 감정을 반영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 출처: 네이버 독일어 사전 >


차이는 나쁨(schlecht)과 악(böse)의 용법에서 발생한다. 나쁨이라는 단어는 주로 열등하고, 저급하고,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아프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의미를 지닌 명사와 연결된다. 즉 열등한 계급을 전제로 한 단어이다. 문제는 악(böse)이라는 단어의 용법이다. 악은 나쁜, 불쾌한, 악의 있는, 심술궂은, 성난, 감정이 상한, 버릇없는, 못된, 악한, 병든, 탐욕스러운 등의 부정적 감정을 수반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니체에 따르면, 좌절감은 좌절감의 원인, 즉 자신의 좌절에 대한 책임 부여로 확인되는 것에 대한 적대감이다. "원인"에 직면한 약점이나 열등감, 그리고 질투심은 불만의 원인을 공격하거나 부정하는 거부, 정당화 가치 체계 또는 도덕성을 만든다. 이 가치 체계는 선망하는 것의 원천을 열등한 것으로 식별함으로써 자신의 약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한 원한에 의해 분개한 사람이 자신의 불안정과 결함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 기제로 작용한다. 자아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 적을 만든다.


5. 니체의 거리(distance)의 파토스


앞서 우리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단어의 용법이 각각 귀족계급과 노예계급을 구분하는 용법으로 사용된 것임을 확인했다. 이런 이해 속에서 니체는 거리(distance)의 파토스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리(distance)의 파토스는 니체가 칸트 이전의 모든 도덕철학을 전복시킨 유명한 개념이다. 근대까지 인간은 선과 악은 미리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늘 지켜야 할 윤리적 명령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니체는 주인이 노예를 향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눈 일체의 명령들이 선악의 구분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선과 악이 결정되는 출발점을 지배자가 피지배 계급을 향해 규정하고, 자신들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선한 것으로 강요했다는 것이다.


좋음과 나쁨의 구분은 언제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나누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니체는 이런 선악의 구분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거리(distance)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보았다. 피지배계급을 경멸하고 거리를 두면서 좋음과 나쁨이 나오게 되었고 이 거리 사이에서 어떤 파토스(정념)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배계급이 피배계급을 향해 갖는 경멸의 정서들이다. 선과 악 사이의 거리는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향하여 명령을 내리고 언어와 규율로 규정하면서 더욱 명확해진다. 노예와 거리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명확할수록 지배자의 권위와 권력은 강화된다.


나는 이 글에서 귀족들의 술수를 까발리려 할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니체는 귀족은 착취하고 노예는 착취받는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며 원한감정에 기대는 것을 누구보다 경계했다. 오히려 니체는 귀족도덕과 노예도덕을 구분한 다음 우리가 노예도덕의 희생양이 되어 원한감정을 가져서는 아무런 것도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귀족도덕을 발판 삼아 힘에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좋음과 나쁨이라는 구분의 기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에 있다. 이렇듯 좋음과 나쁨은 이렇게 고대 그리스 사회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고귀하게 태어난 형통과 그렇지 않은 형통은 철저히 구분되었다. 귀족이 향유했던 음식, 의복, 심지어 투구와 갑옷, 사상과 의식까지 귀족의 에토스는 철저히 하층민들과 구분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그들이 가진 명예를 모범적인 삶(노블레스오블리주)으로 증명해야 했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다. 이런 신분의식이 그들의 삶의 원리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들은 좋은 것을 향유하는 것만큼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계급투쟁이 최전선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하고 있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귀족의 삶 일생일대의 과업이었다. 귀족은 모름지기 폭풍 한가운데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변덕에 사로 잡히거나, 불안해하거나 적을 공격함에 앞서 허둥지둥 대는 것은 귀족이 할 행동이 아니다. 그들은 폭풍 한가운데서도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신뢰와 용기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외로운 자리에 서야 한다.


최악의 경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그 순간이다. 귀족은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우리 인생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문제의 연속이다. 늘 정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답은 그들이 지시하는 방향의 끝을 가리킨다. 그들은 자신의 결정을 증명하기 위해 운명을 걸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아래의 내용을 보면 트로이의 영웅 사르페돈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

클라우코스여,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뤼키아에서

윗자리와 고기와 가득 찬 술잔으로

남달리 존경받으며,

모든 이들이 우리를 신처럼 우러러보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우리는 크산토스 강의 제방 옆에 과수원과

밀밭이 딸린 아름답고 큰 영지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러니 우리는 지금 마땅히 뤼키아인들의 선두 대열에 서서

치열한 전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오.


그래야만 단단히 무장한 뤼키아인들 중에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오.


‘과연 뤼키아 땅을 통치하는 우리 왕들은

불명예스러운 자들이 아니구나.

그들은 살진 작은 가축들을 먹고

꿀처럼 달콤한 정선된 포도주를 마시지만,

힘도 뛰어난 자들이다.

저렇게 뤼키아인들의 선두 대열에서 싸우고 있으니 말이오.’


친구여! 만일 우리가 이 싸움을 피함으로써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을 운명이라면,

나 자신도 선두 대열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또 남자의 영광을 높여주는 싸움터로

그대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오.


하나 인간으로서는 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무수한 죽음의 운명이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우리가 적에게 명성을 주든

아니면 적이 우리에게 명성을 주든 자, 나갑시다.

<일리아스(12: 310~328), 천병희, 숲>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과거 그리스 귀족들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그들이 노예와 차별화되는 유일한 이유는 이런 사회적 책무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개념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결과를 증명했다. 그런 삶의 실천 이후에 그들의 긍지와 자부심은 생명력을 얻었다. 그들은 명예를 위해 자신을 목숨을 내어 던질 수 있는 진정한 영웅이었던 것이다.


니체 따르면 그리스도가 국교화되면서 좋음과 나쁨은 선과 악이라는 개념으로 변화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문화로 융합되었다. 선과 악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경멸의 거리, 서로 만날 수 있는 절대적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니체는 이런 거리의 파토스 개념으로 종래의 보편적 이성 혹은 절대 윤리의 개념을 비판한다. 선과 악은 철저히 인간이 만든 문화의 상징이며 사회를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한 지배계층의 논리라는 것이다.


인류는 언제나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힘을 탐했다. 천국, 불국과 같은 종교개념이나, 이데아와 같은 철학적 개념은 모두 제국의 형성을 뒷받침 해 주는 강력한 도구였다. 인류는 늘 예측 불가능한 자연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들은 변화무쌍한 자연을 대면할 때마다 무기력했고 불안했다. 나와 타인의 행동을 예언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신앙이나 신념은 언제나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인간이 지혜를 사랑(철학)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방식, 의미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해답을 제시하려 노력해 왔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교회사와 사상사를 통해 밝힌 등불은 언제나 한 세기를 밝히기에도 부족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할 줄 알았던 신앙과 신념이 인간의 한평생을 달콤하게 만드는 열매가 될 수는 있었지만 인간은 한 세기를 넘기면 그 수명이 다하듯 철학도 항상 세기말에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공명정대하고 믿었던 모든 관념들은 항상 서슬 시퍼런 칼날이 되어 인간에게 되돌아왔다.


인간은 누구나  옳다고 믿는 신념을 마음 한구석에 등불로 간직한 채 살아간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훔쳐 인간에게 선물해 준 불은 이 등불일지도 모른다. 나름의 신념이 없다면 매일의 일상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잘 세우는 것은 어떤 일보다 중요하고 항상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신념은 삶 그 자체가 될 때 우리는 그것에 앞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쉬르라는 스위스 언어학자는 자시의 저서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의 가치를 단어 속 의미에 있지 않고 단어들과의 관계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의 혁신적인 언어 이론에 힘입어 많은 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이론이 정립될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랑그”(langue 언어의 체계)와 “파롤”(parole 언어의 사용)이라는 두 가지 층위로 나눠진다. "랑그“(Langue)는 언어체계로서 언어의 규칙, 패턴, 시스템을 의미하며, "파롤”(Parole)은 실제로 사용되는 언어의 구체적인 개별 표현들을 나타낸다. 그는 언어를 체계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용되는 구체적 용법과 개별 표현들의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소쉬르의 이런 해석은 언어학을 비롯해 인류학, 문학, 철학, 정신분석학, 해석학, 기호학, 사회학과 같은 학문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자크 라캉,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롤랑 바르트-등의 철학적 성과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소쉬르는 언어의 가치를 언어에 내재한 실체가 아니라 관계의 산물로 보았다. 언어의 의미들은 어떤 체계 속에서 맺는 관계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체계’라는 용어는 후에 ‘구조’로 읽히게 되었다. 소쉬르가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혁신적인 언어 이론과 인식론과 철학적 통찰은 불교의 연기설이나 노자의 유무상생과 일맥상통하다.


'철수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철수'라는 단어와 '인간'이라는 단어 속에 우리의 존재가 들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떤 언어적 품사(명사, 동사 등)도 실존을 포함하지 못한다. 무수한 철수 중 내 눈앞에 있는 철수는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언어의 중첩 속에서 개별화되어 나타날 뿐이다. 철수를 둘러싼 수많은 단어와 실제로 철수가 존재하는 시공간의 현상을 배제한다면 '철수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가 본질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언어는 단지 삶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 삶 자체가 될 수 없다.


최근 운동을 하면서 말 뿐인 삶이 아니라, 전인적 변화를 도모하는 삶도 고민하게 된다. 건강하고 활기찬 삶이 좋다는 개념은 알고 있지만, 그 건강한 삶을 살아내는 것은 개념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개념은 삶의 기준을 보여주는 수단으로써 매우 중요하지만, 결국 삶의 실천이 빠진다면 그저 공허한 염불에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해 본다.


그래서 바람직한 것 기준보다는, 내가 바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삶과 더 밀접한 것들이라 생각하며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몰입해 본다. 사람은 때때로 이상한 행동을 한다. 최근 전철에서 '집권당이 총선 승리를 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큰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야당의 승리하지 못하면 우리를 끔찍한 시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누가 이기든 지금보다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좌와 우는 항상 극한의 투쟁을 하며 자신의 날개를 키우는 일에 몰두해오지 않았나? 나는 그 두 날개가 마주 펼쳐져 저 푸른 창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은 때로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신념은 단지 인간의 머릿속을 잠시 차지한 손님에 불과하다. 그것은 때로 일, 사랑, 놀이, 꿈이 되어 우리를 들뜨게 하지만 때로는 참혹한 폭력이 되어 피를 흘리며 서로를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신앙이나 신념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신앙이나 신념이 인간 존재의 조건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파괴할 때 항상 인간의 실존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인간이 이념의 불쏘시개로 전락하는 비극적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층민이 느꼈을 거리(street)의 파토스(원한감정)이든 노예와 같은 귀족들이 느꼈을 거리(distance)의 파토스이든 어떤 감정도 우리의 실존을 대체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실존이 의미 있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귀족과 노예로 구분되는 감정이란 무의미하다. 특히 원한감정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원한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 것인가. 체계의 수행자로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것은 언제나 스스로의  몫이다.


내가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의 말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 빛나야 할 것은 신앙이나 이념이 아니다. 정말 빛나야 할 것은 자연이 준 본성과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하고 실현하면서 영위하는 기쁜 삶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아포리아>


<참고문헌>

도덕의 계보학, 니체, 책세상

일반언어학 강의, 소쉬르, 민음사

외투, 니콜라이 고골, 문학동네

일리아스, 호메로스(천병희), 숲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아포리아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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