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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r 03. 2024

거리와 거리의 파토스 1부

<죄와 벌 >거리의 파토스 도입부

제목: 거리(street)와 거리(distance)의 파토스


들어기기에 앞서:


 글은 <죄와 > 나타난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글의 도입부입니다. 다소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읽을   피로가 유발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식 접근법을  이해하시면 다른 문학 작품 감상에 좋은 도구가  수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알았습니다. 저의 글이 얼마나 딱딱한 로고스 중심적 글이었는지. 이번 공부를 통해 저도 좀 더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의 글들은 로고스 중심적인 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로고스도 전령으로써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므로 자신감을 가져봅니다. 언제나 인간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   파토스 개념을 정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


BC 384년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라에서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3세의 궁중의 의사였던 아버지 니코마코스와 어머니 파이스티스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이름을 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윤리학의 경전으로 여겨지며 현대인들도 즐겨 읽는 고전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왕자 필리포스와 어릴 적부터 친구로, 궁정에서 함께 자랐다. 필리포스는 아주 어려서부터 양친을 여의고 프로크세노스가 그의 후견인이었다. 17세 때 플라톤의 학원 '아카데이아'에 들어가기 위해 아테네로 유학을 와서,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20여 년 간을 그곳에서 수학했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미의 정신이라 부르며 칭찬했다.


이 시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영특했다. 아카데미아에서 그의 스승 플라톤과 서로 많은 논쟁했던 일화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 시기부터 그는 플라톤과 대립각을 세웠던 것 같다. "플라톤은 소중한 벗이다. 하지만 진리는 더 소중한 벗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아카데미아의 원장직을 승계하지 못하게 되면서 스승과 학문적으로 결별했다. 단순한 결별을 넘어 그의 저술 중에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그따위 헛소리는 집어치워야 한다'는 문장이 있을 정도다. 다만 그가 비판한 것은 주로 중기 이데아론이고, 플라톤의 후기 이데아론은 아리스토텔레스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플라톤이 죽은 직후 아카데미아의 원장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그가 아테네 사람이 아닌 마케도니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즈음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와 전쟁을 준비 중이었다. 아테네에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팽배했던 까닭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장직을 포기하고 소아시아의 도시 아타르네우스로 넘어간 것이다.


그곳의 참주 헤르미아스는 아카데미아에서 함께 수학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우이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곳에서 3년간 머물면서 헤르미아스의 이복동생(또는 조카) 퓌티아스를 첫 번째 부인으로 맞이했다. 딸을 낳고 그 이름으로 부인과 같은 퓌티아스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잘 살았다. 그러던 중 참주 헤르미아스가 페르시아인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고향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필리포스 2세의 궁전에 머물면서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 되었다.


2~3년간의 개인교습으로 알렉산더를 충분히 가르쳤다는 생각이 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자리를 친척에게 물려주고 BC 335년, 50살의 나이에 아테네로 돌아와서 아폴론 신전 경내의 공공운동장이던 리케이온에 자신의 학원을 차렸다. 그리고 이곳에서 13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원 초기에 그는 리케이온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오가면서 학생들과 함께 철학을 논하곤 했는데, 이것으로 해서 '소요학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많아진 뒤로부터는 그도 앉아서 강의를 했다. 지금 남아 있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시기 제자들의 강의노트이다. 그는 물리학, 형이상학, 시, 생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어마 어마한 분량의 책을 저술하였지만, 대분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마케도니아인이 아테네에서 설치는 것이 보기 싫었던 사제 에우뤼메돈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불경죄로 고발당한다. 그가 이전에 지었던 헤르미아스의 죽음을 기렸던 찬가가, 아폴론 신을 찬양할 때 사용하는 양식의 찬가라는 이유로, 그것은 신에 대한 불경이라는 것이었다. 이 억지스럽고도 한참 뒤늦은 고발에 은퇴를 결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원 리케이온을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에게 물려준 뒤, 어머니 쪽 고향인 에우보이아의 칼키스(Χαλκίδα)라는 작은 섬나라로 탈출했다. 하지만 1년 뒤 질병을 얻고 위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 파토스: 아레스토텔레스 윤리학의 관점에서


파토스는 원래 수동적인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윤리학에서 파토스를 노여움, 공포, 즐거움, 증오, 연민 등 쾌락 또는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에로스가 지속적인 정념인데 반해 파토스는 다소 일시적인 상태를 지칭한 것이다. 그리스 고대 철학과 신학에서 파토스는 우주에 내재하면서 우주를 다스리고 우주에 형식과 의미를 부여하는 신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로고스의 상대되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사람의 자연적 성향, 기질, 도덕적 성격 등을 에토스로 규정했다. 이에 반해 파토스는 주어진 상황에서 표출되는 감정으로 정의했다. 오늘날의 파토스는 한편으로 일시적으로 강렬하게 고양된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인가에 강력한 지속적 욕정인 지배욕, 소유욕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튼 파토스는 에로스에 비해 일시적인 상태이고, 로고스의 상대되는 개념이고, 파토스에 비해 일시적이고 고양된 어떤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파토스를 긍정적 요소로 보지 않은 것 같다. 왠지 하대 받는 느낌마저 든다. 고래로부터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격정적인 감정들은 사랑과 우정, 이성적 사고, 사랑의 성향과 기질, 도적에 비해 차원이 낮은 것으로 치부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 마저 든다. 파토스는 현생을 사는 인간들의 불필요한 삶의 찌꺼기 인 걸까?


3. 로고스보다는 에토스와 파토스가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는 타인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가 주장하는 설득의 3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이다.


에토스(영어: ēthos, 그리스어: θος, )는 ‘성격’, ‘관습’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20세기까지는 '특질'로 번역하여 사용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외래어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에토스라는 단어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에토스는 화자(話者) 고유 성품을 뜻한다. 체형, 자세, 옷차림, 목소리, 단어선택, 시선, 성실, 신뢰, 카리스마 등이 에토스에 속한다. 오늘날 이 단어는 민족 혹은 사회별로 특징지어지는 관습 혹은 특징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에토스는 윤리학(ethics)의 어원이기도 하다. 윤리를 지칭하는 단어가 한 사람의 태도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에토스는 사회가 요구하는 중요한 관습 중 하나이다.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만남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예의범절이 강조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에토스를 보면 TV에 나오는 아나운서들이 생각난다. 좋은 자세, 매력적인 옷차림, 신뢰감 가는 톤, 시선, 카리스마 등은 스피치 학원의 강사들이 가르치고 강조하는 것 속에 모두 들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인을 설득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것보다 에토스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남을 설득할 때 중요한 것은 세치 혀의 현란함이 아닌 그 사람이 살아온 결을 드러내는 자세와 풍모인 것 같다. 에토스는 타인을 설득 과정에서 신뢰를 얻는 매우 중요한 수단인 것이 분명하다.  


파토스(영어:pathos, 그리스어: πάθος)는 원래의 그리스어로는 청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을 나타낸다. 파토스는 수사학, 문학, 영화 그리고 서사적 예술 장르에서 사용했던 의사소통 기교이다. 영어 발음을 따라 '페이소스'라고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희랍어의 파토스라는 발음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 파토스는 그리스어 '고통', '경험'을 뜻하는 πάθος에서 왔으며, 영어의 형용사 pathethic은 παθητικός에서 왔다. 감성적인 호소는 다음과 같은 많은 방법을 동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 중 에토스 다음으로 파토스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파토스는 감성을 의미하지만 문자 그대로는 고통, 병을 의미하는 path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차원에서만 보자면 파토스는 공감, 경청을 통해서 상대방과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설득하는 사람은 비극, 유머, 공포심, 연민 등 다양한 정서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은유나 이야기는 화자의 감정 전반을 통해 청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화자의 정서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일시적인 쾌락과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현대의 파토스는 일시적인 감정뿐 아니라 정열, 정념, 욕정으로 그 의미가 더 확장되었다.


로고스(영어: Logos, 그리스어: λόγος)는 원래의 뜻은 말, 이야기, 이성을 뜻한다. 이성의 표현은 말을 수반한다. 말은 로고스는 담는 그릇이고 로고스는 말을 채우는 내용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이성을 담는 형식이 곧 언어이다. 현대 심리학은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담는 것임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성이 없다면 말은 무의미해진다. 말과 이성은 떼려야 뗄 수 있는 단짝인 것이다. 로고스라는 단어는 비율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로고스의 판단에 이르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성은 언어를 통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개념 짓는다. 모든 개념들은 특정 한계 속에서 범주화된 것들이다.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인을 설득할 때 로고스는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다만 상대방에게 정확히 의사를 전달해야 하므로 로고스는 딱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의 역할을 하면 된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이런 개념과 이성을 맹목적으로 중요시하던 경향에 큰 변화가 생겼다. 앙리 베르그송은 무엇보다 이런 변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


4. 로고스 이제는 버스의 뒷자리로


철학의 의무는 고유한 의미에서의 지능적인 습관들과 형식들에서 벗어나서, 그리고 실천적 효용성의 숨은 생각을 가짐이 없이, 살아 있는 것을 검토하고, 능동적으로 세상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철학에 속하는 대상은 사유하고 보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을 마주하는 철학의 태도는 행동하기만을 겨냥하고, 무기력한 물질의 매개에 의해서만 행동할 수 있고, 오직 이런 관점에서만 현실의 나머지를 바라보려고만 하는 과학의 태도일 수는 없다."<창조적 진화, 앙리 베르그송, >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로고스는 진리이다’라는 명제는 사실이 아니다. 어원적으로 봐도 로고스는 진리이기보다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말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로고스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말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말 그 자체는 그저 전달하는 도구이지 ‘진리이거나 진리가 아니어야 하는 대상’ 일 수 없다. 우리가 말을 함에 있어 논리 정연함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 대중들은 논리 정연함 보다는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신뢰할 만 한지(에토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와 같은 것(파토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논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버스의 뒷자리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참고 문헌>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현대지성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현대지성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현대지성

창조적 진화, 앙리 베르그송, 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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