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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r 01. 2024

엄마, 돌아갈 본향

부모의 양육 태도가 자녀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

엄마, 돌아갈 본향


1. 지나친 기대의 위험성: 장남 콤플렉스


나는 이 글에서 소설 <죄와 벌> 속에 나타난 주인공 어머니와 주인공 사이의 대화를 바탕으로 어머니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주인공의 성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라스꼴리니코프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그에게 보낸 엄마의 편지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도 잘 알고 있지? 너는 우리 집의 외아들이고, 두냐와 내게 너는 우리의 전부이자, 유일한 희망이며, 기쁨이란다…... 만일 네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알렸더라면, 넌 아마도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걸어서라도 우리에게 왔을 거다. 내가 네 성격과 마음을 잘 알고 있듯이, 넌 네 동생이 모욕당하는 것을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열린책들>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식의 상황을 슬퍼하면서 동생 두냐의 안타가운 소식을 구구절절 아들에게 설명한다. 그런데 이 편지의 시작이 좀 심상치 않다. 편지의 서두에서 어머니는 주인공을 정말 사랑한다고 얘기하면서 자신의 아들은 외아들이고, 집안의 전부이자 희망이고 기쁨이라는 큰 기대를 표현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기대가 내심 불편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는 언제나 나를 받아주고 이해해 주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대상으로 인정하는 포근한 울타리로 인식된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대부분의 사회에서 부모만큼은 온전히 안아주고, 보호하고, 사랑해 주는 마지막 보루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의존하고 싶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아이들은 아직 충분히 어릴지라도 일찍 의젓한 어른처럼 행동하게 된다. 특히, 장남이나 장녀의 경우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그들은 부모가 다수의 자녀를 양육하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자산의 욕구를 포기하고 동생들을 돌보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렇게 포기한 욕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바르고 의젓해 보이지만 어른이 되면서 중요한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계속 확인받고 싶어 하고 어려서 생긴 욕구불만을 지속적으로 보상받으려 노력한다. 또 이런 욕구불만은 과도하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심리를 자극한다. 라스꼴리니코프의 사례에서처럼 가족의 어려움 때문에 하고 있는 만사를 내팽개치고, 교통수단이 없다면 걸어서라도 가족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행동의 이유는 어릴 때 채우지 못했던 결핍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요구는 아동에게 과도한 스트레스의 요인이 될 수 있다. 항상 아이를 주목하고, 통제하려는 부모 슬하에서 아동은 세상을 자유롭게 관찰하고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는 마치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의 상황과 유사하다. 부모의 지나친 통제와 간섭은 자녀의 행동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위축시킨다. 결국 이런 양육방법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아이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아이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지 못하며 대인관계에서 큰 스트레스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2 부모의 양육 태도가 자녀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


나는 <부모의 양육태도와 자녀의 정서지능과의 상관관계>라는 제목으로 학부 졸업논문을 썼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부모의 양육태도와 자녀의 지능은 상관없다고 결론짓길 내심 기대했었다. 청년시절 나는 생애 초기의 경험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정신분석학의 결정론에 저항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문의 결과는 아주 건조한 숫자로 증명되었다. 부모의 양육태도는 자녀의 대인지능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상관관계 70% 이상)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참고로 상관관계 70% 이상은 매우 유의미하다는 얘기다.


논문을 쓰면서 많은 텍스트를 읽어 봤지만 부모의 양육태도는 개인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일반론이었다. 결정론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개인이 부모의 유전적 요인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동은 환경과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생애 초기의 아동이 주로 관계하는 대상은 부모이고, 특히 어머니이다. 결국 인간은 부모를 특히, 어머니를 떠나 혼자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조건으로 한정 지어졌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부모의 기질을 물려받고, 부모와 상호작용하며 생애 초기의 경험들을 누적해 나갈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은 특별한 조건이 아닌 이상 부모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부모가 부재할지라도 그 부모를 대체하는 누군가와 상호작용하며 자랄 수밖에 없는 성격 형성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시기(critical period)인 것이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의 왕은 그런 인간의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착안해 냈던 것은 우리 인생의 운명론을 피할 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3. 엄마의 행복한 나무들


어렸을 적 우리 집 정원에는 큰 과실수들이 있었다. 아직도 나는 이 나무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봄이 되면 셀 수 없이 풍요로운 열매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앵두나무, 여름에는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리던 포도나무, 거대한 초식 공룡을 닮았던 모과나무, 달콤하고 새콤한 신비의 열매를 선물해 주던 석류나무들이었다.


우리 집 정원의 과실수들 덕분에 나는 항상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우위에 있었다. 신비한 나무들은 봄, 여름, 가을을 이어가며 열매를 제공해 줬다. 봄에 앵두 열매가 영글어 가면 동네 아이들이 담벼락 아래에 떨어진 앵두열매들을 주워서 먹었다. 그러다가 내가 나무 가지에 잔뜩 열린 앵두열매를 한 줌 따서 건네주면 녀석들은 눈이 동그래지며 좋아했었다.


더운 여름이 오면 포도나무의 덩굴의 푸른 잎으로 무성해진다. 그 사이를 뚫고 초록의 열매들이 태양의 기운을 빨아들이며 그것들은 곧 암적색의 포도 송이로 커져갔다. 가을에 만날 수 있었던 석류는 정말 신비한 열매였다. 처음에 생겼던 꽃봉오리의 배가 불룩하게 차오른다. 왕관처럼 생긴 과일은 이내 배가 터져버릴 것처럼 알알이 익어갔다. 석류를 쪼개면 그 속에 박혀있던 반짝이던 보석들은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앵두 보다 더 새콤하고 달콤한 육즙이 입안을 가득 적셨다. 꽃과 열매 가득했던 우리 집 정원에는 늘 주변에 온갖 새들이 날아와 제 목소리와 높낮이로 노래했다. 그 나무들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정말 행운아이다 . 그 과실수들은 나와 친구들에게 쉴만한 그늘이 되어 주었고, 풍요로운 열매를 선물해 줬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나무들은 풍요로움의 원천이었다.


그중 나는 모과나무를 오르내리던 것을 좋아했다. 내게 쉴 곳과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던 모과나무는 마치 나를 지켜줬던 엄마의 울타리처럼 내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모과나무에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엄마는 마루에 앉아 노심초사 나를 지켜봐 주셨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향기로운 모과 열매를 수확했다. 모과 열매는 향기롭기는 했지만 그냥 먹을 수는 없다(내가 처음 모과 열매의 쓰고 신 맛을 보았을 때는 나는 모과를 평생 못 먹을 거라 생각했다). 모과 열매를 수확하면 엄마는 지체 없이 모과차를 만들 준비를 하셨다. 그 맛없던 열매가 달달하고 향긋한 차로 변신하는 순간은 마치 마법과 같았다.


나는 이 나무들을 떠올릴 때마다. 엄마를 기억한다. 이 나무들 속에는 엄마와의 추억 따뜻했던 추억이 서려있다. 나무는 엄마의 품과 같다. 엄마는 내 생명의 근원이다.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는 안전한 그늘을 만들어 줬다. 철마다 열리는 열매는 풍요로움의 원천이었다. 나무들은 마치 내가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려는 것처럼 시절을 좇아 열매 맺었다. 엄마도 그랬다. 엄마는 평생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였다.


4.   정서지능과 회복탄력성


특히, 정서지능과 회복탄력성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개념들이다. 아이는 정서지능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유지한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마음의 근육과도 같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심리학, 정신의학, 간호학, 교육학, 유아교육,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며, 극복력, 탄성, 탄력성, 회복력 등으로 사용되기 한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시련에 대한 탄성이 다르다. 역경으로 인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강한 회복탄력성으로 다시 튀어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원래 있었던 위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서지능은 자신을 이해하교 표현하는 능력을 말한다. 정서지능 중 대인관계 지능이 특히 중요하다. 대인관계 지능이 높은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정서지능이 높으면 강한 감정이 일어날 때에도 충동을 조절하고 도적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며 환경이나 상황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정서지능이 높은 아이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목표의식과 인내심을 갖고 자신의 행동을 신뢰한다. 그리고 희망은 부정적 단서들보다 긍정적 단서들을 주목하게 하게 만든다. 희망은 인지적, 정서적 유연성도 증가시킨다는 것은 여러 가지 연구결과들로 증명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서지능과 회복탄력성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충분히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현대의 인지과학적 연구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감정영역은 두뇌회로는 가소성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지능에는 다양한 영역이 있고 각 영역은 서로 무관하게 발달할 수 있다. 잘하는 것에 관심과 초점을 두면 그 영역만 특별히 성장하는 것은 여러 사례를 통해 보고 되었다. 특히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고, 연민하는 공감 연습은 대인 관계 지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되 행동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감정코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회복탄력성과 정서지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큰 위로가 된다.


5.   완벽한 양육태도만 강요하면 되는가?


나는 엄마가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해지기 위한 부모의 노력이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얘기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엄마라는 것은 언제나 사회적 규범과 관습 속에서 발전해 온 개념일 것이다.


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도 이런 사회적 여건과 맞닿아 있다. 라스꼴리니코프의 어머니도 가난한 삶으로 인해 슬프고 힘들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좋은 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다. 오빠의 어려움을 타계하기 위해 생업 전선에 뛰어든 여동생 두냐의 삶은 더 비극적이다. 그녀는 모함을 받아 주인집 남편을 꼬신 파렴치한 여인으로 낙인찍히는 고난을 당했다. 물론 그 남편의 증언으로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이 밝혀진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런 엄마가 우울증에 빠져 있거나, 세상과 담을 쌓고 고립되거나, 지쳐 있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태로는 누구에게도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 줄 수 없다. 이런 엄마에게 세상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달라고 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때로는 폭력적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저출산의 문제는 단지 젊은 부부들의 무책임함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을 되돌아봐야 한다. 요즘 언론들은 저출산으로 우리 사회가 소멸할 것을 걱정하며 여러 가지 지원책을 고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저출산은 원인이 아닌 결과이다.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 분위기, 상상을 초월하는 집값, 불안정한 노동 조건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고 행복하고 살고 싶은 인간 존재의 기본 조건을 위협하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이다.


나는 단지 좋은 부모가 되라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 무심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도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었던 것 같다. 정서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뭔가 결핍되어 있거나, 아이 곁에 없거나, 지쳐 있거나, 집에서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부모들은 저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개별의 부모만이 분투하며 지켜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인구소멸만이 재앙이 아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지원과 손길이 부족한 것이 바로 재앙의 전조이다. 인구소멸은 사회적 지원의 부재가 빚은 재앙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6.   마지막 보루, 돌아갈 본향 같은 사회를 만드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우리 존재가 생기게 한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는 모두 엄마의 태 속에서 만들어졌다. 모든 인간은 엄마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한다. 나의 대학 시절 논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이 닥쳤을 때 자신의 마음속에 엄마와의 따뜻한 기억을 가진 인간은 그렇지 않은 인간보다 그것을 더 잘 이겨낼 힘을 갖게 된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나도 자상한 엄마를 갖고 싶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엄마를 가질 수는 없다. 안타깝지만 모든 사람들이 엄마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엄마는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아이가 자신의 근원에 대해 갖는 느낌은 엄마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우리는 엄마의 좋은 기억들을 선택적으로 회상할 수 있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만나는 소중한 관계들 속에는 따뜻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 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소중히 기억하고 내면화시키는 것을 통해 좋은 기억을 쌓아갈 수 있다. 언젠가 나는 안젤리나 교수님을 통해 따뜻한 엄마의 품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글(그녀의 품에서 나는 부활했다)을 쓴 적이 있다. 또 나는 나의 아내를 통해 따뜻한 어머니를 간접 경험하기도 한다. 나의 아내는 자상한 엄마이다. 그런 아내와 있을 때 나도 편안해진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고, 행복해하며, 새로운 일을 시도할 용기를 내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것이다. 그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환영해 주는 문화는 우리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북돋아 주고, 응원해 준다면 그 아이는 세상을 좀 더 살아갈 만한 곳으로 인식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가 닮고 싶은 여러 롤모델들이 제시된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격려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희망과 꿈을 키워갈지도 모른다. 좋은 엄마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내면화시키는 것은 상담전문가나 정신과 의사들만의 과업이 아니다. 이런 좋은 감정에 몰입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


상처받은 라스꼴리니코프가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안전망과 그들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작품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고립된 지하인들이 지상으로 나올 수 있는 사회를 만들 묘안을 고민했다. 우리는 고립된 인간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200년과 비교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혹 후진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는 이 고립에서 빠져나와 유대와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줄기를 찾아야 한다. 좋은 관계의 경험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까운 친구들을 갖는 것은 ‘선택적 가족’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우리는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삶에 중요한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축하받을 수도 있다. 취미 그룹, 사교 모임, 종교 모임에 소속하는 것도 좋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같이 읽고 인생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독서모임을 적극 추천한다. 책 속에는 무수한 인간의 지혜와 무늬가 서려있다. 좋은 책을 여러 권을 함께 읽은 문우를 가진 사람들은 알 것이다. 유목민과 같은 개별 인간들은 가벼운 미풍에도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함께 책을 읽고 깊이 사유한 인간들은 거센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키울 수 있다. 유명한 전도서의 말씀처럼


무릇 한 사람이면 쉽게 패하겠지만,
두 사람이면 함께 맞설 수 있고,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 한 주도 함께 읽고 쓰며 분투한 사람들을 알기에, 다음 주에도 나를 환대해 줄 책 읽는 공동체가 있기에 이 험난하고 광포한 인생의 바다를 해쳐나갈 힘을 얻는다.


<참고 문헌>

나와 우리 아이를 살리는 회복탄력성, 최성애, 해냄

단테와 융, 아드리아나 마짜렐라, 융심리학연구소

부모의 양육태도와 자녀의 감성지능과의 상관관계, 유재영, 충남대학교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열린책들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문학과지성사

책을 읽고 함께 살다, 장은수, 느티나무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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