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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Feb 25. 2024

죄와 벌: 나의 고교 시절 이야기

작지만 위대한 학교 거창고 이야기

1. 첫째 아이를 멀리 보내지 않은 이유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는 첫째가 자난 주에 학교에서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다. 집과 가장 가까운 학교로 배정받았다. 아이도 나도 만족스럽다. 벌써  이만큼 자라서 고등학생 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나는 학창 시절 기숙사 학교를 다녔다. 가정을 떠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고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 청소년기는 민감한 시기이므로 단체 생활보다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청소년기의 자녀들을 집을 떠나 멀리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시 태어난다면 따뜻한 집 밥 먹으며, 가족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편하게 집 가까운 학교에 다니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동전에는 항상 양면이 있는 법이다.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따뜻한 집 밥, 편안한 잠자리, 부모님의 안전한 그늘 등을 진심으로 소중히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앞면이든, 뒷면이든 모두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은 분명하다.


고교 시절 기숙사는 학년 당 140명 정도의 학생이 생활했었다. 3학년 때는 근처에서 자취하는 학생들도 많기 때문에 전체 인원은 약 400명 내외였다. 400명 정도의 학생이 한 건물에서 생활하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높은 인구 밀도는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식물도 밀식 재배를 하면 제대로 생장하지 못한다.


당시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아이들, 나름 공부도 잘하고 개성도 강한 아이들 사이에서 남모르는 고충이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살게 되면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알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조금만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쉽게 상처 주고 상처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세상의 쓴맛을 먼저 맛보는 일이라 생각한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 아픔까지 사랑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조금 아프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금 부끄러운 과거일 것이다. 그러나 이글을 통해 나는 우리가 과거를 통해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2. 처벌의 시대: 옥상점호


기숙사 생활은 매우 엄격했다. 기숙사의 사감선생님은 특수부대를 다녀왔을 것 같은 근육질의 건장한 남성이었다. 점호 시간을 어기거나, 무단 외박을 하거나, 기숙사 안에서 풍기문란(도박, 음주, 무담침입)한 행위를 하면 가차 없이 검도의 죽도나 야구방망이로 엄벌을 내리셨다. 나도 호실 청소 미흡으로 그 무시무시한 야구방망이로 한번 맞아 봤는데 그 지옥의 맛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아팠다.


입학을 하고 한 달 정도 적응했을 어느 날이었다. 2학년 총호실장과 체크맨들(이들은 기숙사 운영을 지원하는 장학생들이다) 주도하에 1학년을 2학년 3학년 호실을 각각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대면식을 했다. 나는 당시 2학년, 3학년 형들이 너무 무서웠다. 무슨 절간을 지키는 사천왕상을 보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사천왕은 수미산을 수호하며 중생의 이익을 증강시켜 주는 역할을 하지만 선배들은 언제라도 불러서 혼내거나 때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였었다. 선배들의 조언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느거덜, 눈 아래로 깔고, 선배들 만나면 인사 똑바로 해라. 알긋나?”


선배들 중 무섭게 생기고 싸움 잘할 것 같은 형들이 학교 생활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 선배들에게 인사 잘하는 것, 눈에 띄는 옷을 입지 않는 것, 노인정은 3학년들만 앉을 수 있다는 등등 소희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부조리한 리스트들을 요목 조목 소개했다.  


그리고 운명의 머지않아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옥상점호! 입학 후 첫 중간고사 바로 전주였던 것 같다. 그날은 저녁 점호나 인원체크가 없었다. 체크맨 형들이 2학년이 옥상으로 전체 집합을 했으니 분위기 파악 잘하고 조용히 있으라 했다. 말로만 듣던 전설의 ‘옥상점호’가 시작된 것이다. 옥상점호는 3학년은 2학년에게, 2학년은 1학년에게 얼차려와 야구 빠따로 구타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화가 잔뜩 난 2학년 형들이 1학년 호실로 들어와 빨리 옥상으로 튀어 올라가라고 소리쳤다. 영문을 몰랐던 우리는 양치기 개에게 몰려다니는 순한 양처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옥상에서는 군대에서 했던 PT체조와 각종 얼차려를 수행해야 했다. 그중 가장 쉬웠던 것은 머리 박기였다. 나는 머리를 박고 졸다가 자빠진 적도 있다.


학교폭력이 법제화된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학교폭력이 기숙사에서 행해졌다. 그것도 인성교육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던 학교에서. 언젠가 옛날 일을 회상하며 당시 선생님들께 따져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들은 알고 계셨냐고? 그것은 너무 심한 폭력이지 않냐고? 선생님들은 그때마다 사과하셨다. 몰랐었다고. 너희들이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는지 꿈에도 몰랐다고. 지금이었으면 큰 일 났을 것이다. 그 많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도 이해는 한다. 그러나 폭력은 언제나 정당화될 수 없다.


4. 대참회의 시대: 촛불행진의 시작


3학년 봄의 일이다. 새로운 교목이 학교에 부임하셨는데, 기숙사 관장을 겸직하시게 되었다고 했다. 목사님은 간디가 연상될 정도로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였다. 루터교 목사라 복장도 천주교의 신부처럼 하고 다니셨다. 목사님이 기숙사로 부임하시고 많은 것이 변했다. 일단 폭력과 전체 집합이 사라졌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목사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가치관을 표방하시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뭔가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조금씩 천천히 밀려오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빨간색 유성펜으로 쓴 큰 대자보 하나가 기숙사 광고란에 걸렸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대자보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글이 있다.



“인격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폐습들, 기숙사에 만연된 것 중 하나가 도난 사건이다. 돈과 옷, 신발, 카세트, 책 각종 개인 비품들을 훔쳐가고 잃어버리는 일은 가져간 자와 잃어버린 자 모두의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이다. 우리 인격 안에 거짓성의 모습들은 여러 가지 마음의 모양을 하고 있다. 거짓말, 변명, 속이는 행위, 위선, 핑계, 발뺌, 책임회피, 비리를 눈감아 주는 것, 사기 치는 것, 불의한 일에 편드는 것, 타협하는 것, 청탁받는 것, 간사한 인품, 약삭빠른 것, 일하지 않고 쉽게 얻으려는 것, ~인체 하는 것, 허의 의식, 허풍, 과장행위, 꾸며대고 겉을 포장하고 가리는 것, 겉과 속이 다른 것, 남을 의식하여 내 행동을 하는 것, 남에게 잘 보이려고 과시하는 것, 도둑질, 양심 속임, 자기 자신을 속임, 억지로 하는 것, 눈치 보는 것, 수업에 충실하지 않는 것, 말로 때우고 말만 잘하는 것, 가자, 바르지 않은 것, 숨기는 것 , 탐욕과 이기심, 편한 것만 좋아하는 것…….., 그 외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자세히 뿌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거짓에 부리를 둔 행위들이다. 이와 같은 거짓에 속한 마음들을 모든 생활에서 지적하고 찾아내어 인격 안에서 몰라내고 그 자리를 참을 심는 생활 훈련을 하는 곳이 거창고등학교 생활교육이다.”


<생활로 사람됨의 힘을 기른다, 거창고등학교 편, 한걸음>



목사님은 대자보에 이런 내용을 쓰시고, 지난주에 발생한 워크맨(휴대용 카세트)과 CD플레이어가 사감실로 돌아올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빛과 소금을 교훈으로 하는 학교의 학생들이 이런 폐습을 고치지 못한다면 결단코 우리 민족은 희망이 없다고 하셨다. 당시 목사님은 간염을 앓고 요양 중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잘은 몰랐지만 깡마른 목사님의 얼굴과 체구를 보면서 ‘저분은 이 일에 생명을 거셨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놀랐다.


목사님의 대자보와 단식 선언을 학교와 학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학생회는 즉시 ‘대각성의 금식 기도회’를 제안했다. 많은 학생들이 점심 식사를 포기하고 강당에 모여 기도했다. 나는 그동안 선배랍시고 군림하고, 얼차려 주고, 때리던 모습을 반성했다. 빛을 잃어버린 우리의 양심을 돌아보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많은 일이 일어났다. 분실된 물건이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워크맨과 CD플레이어를 분실한 학생에게 줬으면 좋겠다며 돌아온 물건들이 부지기 수였다. 그리고 목사님께 수많은 반성의 편지들이 돌아왔다.


일주일 동안 목사님은 혼자 맨발로 촛불을 들고 행진을 시작하셨다. 나와 친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비웃었던 적도 있다. 늘 있던 일인데 너무 순진하고 심각하신거 아니냐며 낄낄대던 친구들도 있다. 곧 정직하고 거짓 없는 인격의 힘을 기르기 위한 촛불행진이 시작되었다. 촛불행진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기숙사의 모든 학생들이 맨발로 촛불을 들고 운동장에 집합했다. 사제복을 입으신 목사님을 선두로 촛불의 불을 나눠 밝혔다. 그리고 목사님이 촛불행진의 의미를 설명하는 말씀이 이어졌다. 어두워진 우리의 양심을 깨우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으로 거듭나자는 양심선언이었다. 그리고 전교생이 맨발로 운동장을 돌았다.


나는 이 경험의 내 인생에서의 ‘대참회의 시대’로 명명한다. 그저 선배들에게 맞는 것이 두려웠고, 물건이 사라지면 훔쳐간 도둑을 욕하기 바빴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거기에 동조한 죄인이며 불의한 일에 어떤 목소리도 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타인의 뒤통수를 치고, 무한 경쟁에서의 승리만 갈구하며,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인간 말종으로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나는 친한 친구와 기숙사를 나와 자취를 하게 되었다. 3학년 때는 학업에 매진하기 위해 자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밥은 학식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잠자리만 자취방에서 해결하는 것이었으므로 콩나물시루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5. 자랑스러운 후배들


나는 학부 과정에서 교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사범대학이 아닌 일반대였지만 교육학 과목 20 시수를 이수하면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4학년 1학기에 모교로 교생실습을 다녀올 수 있었다. 존경하는 은사님들께 교육 현장 실습을 사사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웠지만 후배들이 만나서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할 일이었다.


교생실습을 하는 동안 나는 희한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푸르른 6월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가 되면 전교생들이 삼삼오오 운동장을 산책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하는 듯 그들은 봄예술제의 대동놀이처럼 달팽이 모양을 그리며 운동장을 뱅뱅 돌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이 내가 3학년 때 처음 시작한 촛불행진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후배들은 매일 부족한 운동도 할 겸,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도 할 겸 해서 그런 산책이 유행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산책을 하며 인생의 의미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했을 것이다.


6. 죄와 벌


48회 이후로 기숙사의 구타 및 가혹행위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조용한 폭풍과도 같은 기숙사 관장님’이 계셨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나는 요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연재 중이고, 팟캐스트의 콘텐츠​로도 다루고 있다. 기숙사의 큰 변화는 '죄와 벌'에 대한 기숙사 관장님의 교육 철학의 실천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교생실습 그리고 기숙사 부사감 시절 관장님을 모신 적이 있는 나는 어떻게 폭력이 근절되었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관장님의 교육관을 살펴보면 안다.



재래식 학생 처벌은 잘못되고 비뚤어진 마음을 더 비뚤어지게 하고 딱딱하게 굳혀 버려 인격을 한층 더 무너지게 하는 것이었다. 문제를 저지른 학생에게 그 문제를 저지르게 된 동기를 깊이 이해해주지 않고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칙을 적용하고 사랑 없는 꾸중과 매질을 하고 인격의 관계 영성 없이 가하는 처벌은 그 처벌을 갈게 받지 않고, 그 처벌을 속에서 거부하면서 받데 된다. 그러면 그 처벌은 약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독이 되어 받는 학생의 가슴에 원한이 쌓이고 더욱 미움과 반항심이 커진다. 그러면 돌아가면서 선생과 세상을 원망하고 다시 같은 짓을 반복할 것이다.


정작 누구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가? 하나님에게 선물 받은 자기 인생, 우주에 둘도 없이 존귀한 자기 자신의 인격에게 범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내 인격에 칼질을 했고, 내 인격에 독약을 부었고, 내 인격을 모독했으니, 참 잘못했다고 자기 자신에게 사죄해야 하는 것이다. <생활로 사람됨의 힘을 기른다, 거창고등학교편, 한걸음>




내가 오늘 인용한 거창고등학교 50회 졸업생 대표 답사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쓰인 것이다. 나는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 50회 졸업생 최지헌뿐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마음 한구석에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세파를 이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부족하지만 선배로서 또 부족하지만 한때 그들의 스승 된 자로서 나도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https://brunch.co.kr/@justinryu/127

<거창고 50회 졸업생 대표 답사>


나는 청년시절 내 마음속에서 죽어버린 신을 찾아 길을 나섰다. 동서양의 고전들을 읽으며 신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외로운 사색들을 했었다. 동서양의 사상사와 문학사의 큰 고봉들을 넘나들다가, 18-19세기 어느 지점에서 서양의 고전과 동양의 고전이 서로 만나는 곳에 멈춰 선지가 오래되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이제 동양의 고전들과 인사를 나눠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관조하고 있다.


죄와 벌을 시작으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향유하겠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의 모든 장편 소설을 다 읽은 후의 소회는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통찰과 인간 심연에 대한 통찰 앞에 숙연해질 뿐이다.


나는 위에 인용한 가숙사 관장님의 말씀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말하고 싶은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신의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이고 시지포스이다. 무엇이 진짜 죄이고 무엇이 그에 합당한 벌인 지는 아직 되물어봐야 하겠지만, 삶이 모두에게 주어진 형벌이라면 나는 시지포스의 성실함에 기대어 보겠다. 뾰족한 저 능선을 향해 밀어 올린 무거운 돌은 오늘도 중력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겠지만, 그 돌을 주우러 내려가는 시지포스는 얇은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형벌 앞에서 실존을 지켜낼 근육을 지켜낸 실존적 자아의 힘을 믿어보려 한다. 그리고 남겨진 시지포스들이 많이 있음을 기억한다.


정작 누구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가? 그것은 바로 나이다. 모든 잘못은 존귀한 자신의 인격을 함부로 한 죄이므로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해야 함이 옳다.


‘내 인격에 칼질을 했고,

내 인격에 독약을 부었고,

내 인격을 모독했으니,

참 잘못했다고 자기 자신에게 사죄해야 하는 것이다.’


50회 졸업식 당시 교목님(기숙사 관장님)의 축도를 인용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삼 년 전 죽전 마당의 진리의 배움터로 오늘 졸업하는 151명의 아름다운 꽃들을 보내주신 당신의 섭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오늘은 이 아름다운 희망들과 헤어지는 시간입니다. 장미 만발한 꽃이 아닌, 가시밭길 험난한 세상으로 내보내어야만 하는 시간입니다. 이제 저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들을 축복하시어 아무리 자기를 미워하고 해코지 하고 억울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바로 그 사람을 위하여 밤새워 기도하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베풀어 봤자 되돌려 받을 가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친구가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할 수 있고 친구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머리 숙여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무리 화가 나는 경우일지라도 예의를 잃지 않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항상 나보다 먼저 남을, 나라를, 민족을, 인류를 생각하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떤 경우에도 미움으로 성내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일을 그르치지 않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을 수 있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맞아 죽고, 굶어 죽어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참됨을 목표로 하는 삶 속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남의 허물을, 아니 민족의 허물을, 인류의 허물을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소처럼 느리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떤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에서도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두 발로 굳게 설 수 있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쓰러지고 자빠지고 넘어져 피투성이가 되어도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다른 모든 일에는 실패하여도 사랑에만은 실패하지 않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보혈의 피를 흘리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감히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거창고등학교 50회 졸업식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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