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3종 경기 입문기

철인 3종 경기 입문기

by 아레테 클래식

“삶이 건조하다고 느낄 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말은 처음엔 피트니스 광고처럼 들렸다.하지만 그날, 그것은 내 삶의 바닥 어딘가에서 조용히 울렸다. 그 울림은 작은 진동처럼 시작되어, 결국은 나를 걷어 올리게 했다.


나는 자영업자다. 사람들의 발길이 적당히 이어지는 조용한 동네에서 제법 넓은 카페를 운영한다. 간판은 단정하고 내부는 감성적이며, 커피 맛도 괜찮다는 평을 듣는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자기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라 부러워하지만, 사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사람들 속에 갇혀 지낸다. 스스로 만든 이 카페는, 언제부턴가 나에게 ‘예쁜 감옥’이 되었다.


출근도 퇴근도 없는 삶. 밤늦게 손님이 빠지고 커피머신이 멈추면, 가게 구석에서 홀로 나만 아는 스페셜티 커피 한잔으로 피로를 달랜다. 처음엔 자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점점, 이 생활은 나를 닳게 했다. 몸은 무거워졌고, 마음은 더 빨리 가라앉았다. 언제부터인가, 삶이 건조해졌다. 무언가가 쌓이는 느낌보다, 서서히 증발해가는 기분이 더 컸다.


고혈압. 당뇨. 건강검진에서 듣게 된 단어들. 젊은 날의 자신감은 사라졌고, 몸은 이제 나의 짐이 되었다. 비만은 아닌데, 체력은 바닥이었다.아침이면 손끝이 저리고, 저녁이면 아무 일도 안 했는데 피곤했다. 감정은 무뎌졌고, 웃음은 습관처럼 입에만 걸렸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탄천 운동장 옆을 지나다가 작은 플래카드 하나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철인 3종 경기 교실 개설!’


이름만 들어도 숨이 차고 힘들어 진다. 수영, 사이클, 마라톤. 말 그대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종목.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그 현수막 앞에서 멈춰 선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를 휘감은 것은 어느 낡은 기억의 물결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전방 수색대대의 소대장이었다. 사단에서도 손꼽히던 강한 부대. 매년 천리행군을 했다. 눈보라 속 산악을 헤매고, 비오는 날 야지에서 야영하며, 물찬 군화를 신은 채로 하루 종일 산을 탔다. 체력은 필수였다. 오직 두 다리로 전투를 했고, 낮에는 땀을, 밤에는 얼음장 같은 바람을 견뎠다.


그 시절의 나는, 누가 보지 않아도 뛰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했다. 정신력으로 몸을 밀고 가며, 매 순간 전우들과 나를 지켰다. 몸을 던져야 살아남는 세계에서 나는 살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철인 3종 경기였다. 말 그대로 ‘극한’의 연속. 하지만 단 한 번도 두렵지 않았다. 통증은 명예였고, 땀은 젊음이었다. 그때의 나는, 강인했고, 생생했고,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약통을 챙기고, 진료 예약을 기억하고, 카페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게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한때 누구보다 단단했던 몸과 정신이, 이젠 뻣뻣하고 둔해졌다. 하지만 그날, 철인 3종 경기라는 문장이 잊고 있던 나를 건드렸다. 천리길을 뛰던 그날의 숨소리, 산을 오르며 혼잣말처럼 내뱉던 독려, 그리고 눈 덮인 산에서 내려오며 보았던 붉은 석양. 그 모든 것이, 불쑥 살아났다.


몸을 다시 움직여야겠다고, 아주 오랜만에 생각했다. 처음이 두렵다면, 그 두려움부터 뛰어넘어보자고. 그날 밤,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철인 3종 경기 교실’ 그 문장 아래의 링크를 눌렀다. 수영도, 자전거도, 마라톤도 지금의 나는 모두 낯설다. 하지만 예전에도 처음은 늘 낯설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박수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시간이다그날 이후, 내 삶엔 아주 조금씩, 새로운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숨이 찼고,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 모든 고통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이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잊고 지내던 나를 깨우는 여정이다. 철인 3종 경기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다시 찾아가는 길. 그리고, 그 길의 시작점에 내가 서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