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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Nov 05. 2021

공공을 위해 개인의 존엄은 희생할 수 있는가?

청소년과 함께 읽는 고전 문학

한 겨울 보불전쟁을 피해 마차를 타고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프로이센 점령군 장교들의 환심을 사 여행 허가증을 얻은 사람들, 명문 귀족 부부, 부유한 지방의회 의원 내외, 상인, 두 명의 수녀 그리고 창녀, 비계 덩어리(Boule de suif)이다.


추운 겨울 급하게 떠나온 그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선 탓에 온종일 먹지 못했다. 전쟁 중에 겪는 추위와 허기는 그들을 더 불안하고 두렵게 만든다. 그때 비계 덩어리라는 여인은 준비해 온 고기와 포도주를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눠 준다. 모두가 무시하고 경멸하던 그녀가 추위와 허기에서 구해내는 구원자가 되는 순간이다.


마차가 중간 기착지의 여인숙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문제가 생긴다. 그 지역 담당 프러시아 장교가 비계 덩어리와의 잠자리를 요구했던 것이다. 비계 덩어리는 몹시 기분이 상했고, 그 무례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비록 창녀이지만 몇몇 남자들은 준수한 그녀의 외모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고, 자신들이 굶주릴 때 호의를 베풀어 준 그녀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주위에서 곧 대대적인 전투가 있을 것이란 소문에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적국 장교의 무례한 요구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녀가 적군 장교와 하룻밤을 자야 할 온갖 합리적인 이유 찾기에 앞장선다. 그리고 지금 까지 불러운 그녀의 호칭은 ‘부인’에서 ‘아가씨’로 강등된다. 그녀가 나눠준 호의가 만들어 준 명예의 자리에서, 수치스러운 본래의 자리로 그녀의 위치로 그녀를 끌어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그녀가 프로이센 장교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증스러운 늙은 수녀의 발언은 참으로 가관이다. 동기가 순수하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수단을 허용하시고 그런 행위를 용서하느냐는 백작 부인의 질문에, 누가 그것을 의심할 수 있겠냐며, 그 자체로는 비난받을 일이라도 어떤 생각으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 흔히 찬양할 만한 일이 되기도 한다고 대답한다. 신은 정말 순수한 목적으로 행한 죄를 용서하셔서 저 불쌍한 여인을 희생의 번제로 바치기를 원하신단 말인가?


어릴 적 읽었던 모파상의 작품 '비계 덩어리'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이 작품은 여전히 인간의 식욕과 성욕이라는 주제로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한다. 고귀하고 부유한 계급의 인간들이 전쟁의 참화 속에 드러내는 위선과 양면성, 공익을 위해 개인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는 공리주의적 무서운 모순과 한계를 지적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음식을 내어 준 ‘비계 덩어리’는 차가운 침묵 속에, 경멸하는 모두의 시선 속에, 오늘도 어디에선가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울고 있는 저 여인은 우리를 향해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싸워달라고 이렇게 간청할지도 모른다.

  

신성한 나라 사랑이여,

인도하라, 붙들어다오, 복수하는 우리 팔을

자유여, 소중한 자유여,

너희의 수호자와 함께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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