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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Feb 07. 2024

6.나의 부끄러운 글쓰기

신곡_인페르노(지옥) _제1곡 61~87절

6.나의 부끄러운 글쓰기

부제: 신곡_인페르노(지옥) _제1곡 61~87절


글읽기에 앞서:


누더기 같은 제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님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아침에 글을 수정하다 삭제 버튼을 몇 번 잘못 눌렀습니다. 이 글을 삭제하라는 운명의 여신의 계시인듯하지만 그렇다고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을 골몰하며 쓴 글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업로드 합니다. 모두들 슬프도록 행복한 하루 되시길 기대하고 고대합니다. 단테 신곡 본문은 길이가 너무 길어, 후반부로 이동 배치했습니다.


1. Note Me


나는 시골 출신이다. 고향에 가면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내가 누구의 자손인지, 어디서 무얼하며 살아왔는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안다. 그러나 내가 살던 동리를 벗어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꼭 하는 질문이 있다. “느거 아부지 뭐하시노? 오데 분이시노?’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그래서 이 질문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대충 큰아버지를 얼버무려 대답을 마무리하곤 했었다. 그러면 그분들은 귀신 같이 내가 누군지 알았다는 듯 만족해하신다.


이방인을 맞이하는 우리 시골의 풍경은 고대 로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 본문의 시작에서 단테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낯선 사람을 만난다. 사람이든 귀신이든 간에 자신을 살려달라는 단테에게 그는 이상한 대답을 한다. 자신의 부모의 고향과 출신을 밝힌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부모의 출신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귀신같은 이 사람은 만토바 출신의 부모를 두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말년과 아우구스쿠스 시대 사이를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시인이라고 밝히며 전쟁에 잿더미가 된 트로이에서 이탈리아로 온 안키세스의 정의로운 아들을 노래한다. 단순히 이 글만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이네이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멸망한 트로이와 안키세스를 노래한 이가 베르길리우스라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가 바로 로마의 시성이자, 로마 건국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지은 작가라는 사실은 이탈리아인이라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아이네이스>에 따르면 트로이 왕족인 안키세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베누스)의 아들이었다.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가 잿더미가 되자 아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아를 탈출한다. 그는 불구가 된 아버지를 등에 업고 어린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데리고 황급히 트로이를 떠났다. 뜻밖에 베르길리우스를 만난 단테는 부끄러워하며 그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커다란 강물처럼 말이 흘러나오는 샘물, 당신은 그 유명한 베르길리우스이시군요?” 나는 수줍은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오, 다른 사람들의 영광이며 빛이고, 나의 오랜 연구에 의의를 주었고 나의 커다란 사랑은 나를 당신의 작품에 가까이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선생이며, 특히 사랑하는 나의 저자입니다. 나에게 명성을 안겨 준 나의 아름다움 문체를 오직 당신에게만 배웠습니다.”(지 1:79~87)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가까이하며 그의 문체를 통해 시를 배웠다고 고백하며 영광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한다. 나는 이런 단테를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와 문인들을 읽고, 필사하며 그 아름답고 고귀한 생각들을 가까이하는 기쁨을 경험했다. 하지만 요즘 큰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글과 나의 글 사이의 경계에 대한 고민이다. 최근 서평과 에세이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쏟아지는 열정과 많은 글감들로 인해 분주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뭔가 허전했다.


그런데 최근 내게 글쓰기에 대해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까운 지인들은 “괜히 어설프게 책을 내서 나무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장황하고 애매하다”,”유명한 인물들에 대한 직접 언급을 줄이고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게 좋겠다” 등 진심 어린 조언을 많다. 솔직히 이런 지적들이 불편했다. ‘내가 무슨 전문 작가도 아닌데, 내게 너무 가혹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 아니냐’며 볼멘 목소리로 방어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내가 평소에 고민하던 내용과 일치 했기에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난주 연재 중이던 도스토옙스키 서평을 2주나 마감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많은 글들을 썼다. 그러나 그 많은 글들은 너무 장황하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처음에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단어와 생각만으로는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읽는 이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스스로의 이름에도 먹칠하는 일일 수 있다. 글을 취중진담처럼 쓰고 있는 나를 보며 현타가 왔었다. 주제의 일관성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에피소드, 인용, 대화, 행동들은 과감히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글을 압축해야 내 글이 얼마나 알맹이가 없는지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용을 줄이고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는 조언은 뼈아프다. 글을 쓰기로 작정한 것은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주로 서평을 써왔지만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글쓰기는 결국 자기와 대면하는 훈련의 시간이다. 여러 교훈들을 소개하고, 많은 지식과 문장과 어휘를 과시하는 것이 결코 좋은 글쓰기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일종의 서평이다. 현타가 온다.


이 고민 때문에 어젯밤을 꼬박 지새웠다. 나는 말은 살아 있는 어떤 능력이라 믿는다. 그것은 영혼의 결정체이다. 어떤 고귀한 말들은 하늘에 머물다 직접 계시하지 못해 우리의 머릿속에서 수십 번, 수백 번 걸러져 종이 위에 강림한 신의 음성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입으로 나오는 말보다, 땀과 피를 흘려 배운 것으로 뱉어낸 글의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그것은 책에서 읽은 다른 이의 말을 나의 언어로 손쉽게 바꾸는 일과는 실로 거리가 멀다. 나는 나의 극한에 서서 나의 심연 깊이에 있는 그 사유를 길어 올리고 싶다.


나는 학부시절 공부가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1년을 꼬박 유학 준비를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진학을 포기했었다. 나는 늘 유학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나는 읽기와 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글이라고 해야 고작 학부시절 참고 서적들을 베껴내는 것이 전부였다. 불행히도 그런 행위가 원 저자의 글을 훔치는 일이고, 나아가 나를 속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임을 나중에서야 알게되었다. 더군다나 전문 작가들이나 학자들의 글은 정말 다르다. 뭔가 명쾌하면서 또 엄밀하다. 만약 글쓰기가 복싱이라면 나는 링 위에 올라 간다는 생각만해도 아찔해진다. 그래서일까? 가끔 나의 글이 다소 진부하고 졸렬해 보일 때 그 짧은 가방 끈 뒤로 숨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 아침 신곡을 묵상하며 용기를 내본다. 나도 단테처럼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니체, 하이데거, 까뮈, 카프카, 노자, 장자 등 수 동서양의 수많은 스승들을 모범 삼아 읽고 쓰고 배우고 있다.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이런 옛사람들의 글 속에 진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책 속에는 그것을 쓴 사람들의 생각이 있을 뿐이지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고뇌의 흔적을 소중하게 읽고 또 읽을 것이다. 왜냐하면 필멸하는 인간으로서 그것이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인문학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읽고 또 읽을 것이다. 비록 나의 어리석음이 구원의 빛에 다르르지 못한다할지라도 나는 인문학의 숭고한 가치를 믿고 깊다. 그것은 고래로 인류가 만들어온 무늬이고, 인간의 삶이고, 인간 존재의 본향이자 실존적 인간분석의 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생각을 내 것인 양 착각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이의 글을 나의 글로 둔갑시키지 않도록 경계할 것이다.


나의 부끄러운 글쓰기를 지적해 주고,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은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누구보다 글 잘 쓰던 나의 친구 은둔자(hermit)가 참 그리운 날이다. 그리고 오늘 이 시만은 꼭 인용해야겠다. 이제 고인이 된 내 소중한 친구의 마지막 시이다.


반딧불/ 은둔자


지금 와서 알겠다. 그때는 몰랐음을

이성만은 얼음장 냉철하다 했지만

산산이 부서진 이제 진정으로 아는가?


문제를 부여잡고 골똘히 생각하면

학자연 정좌하고 간절히 고민하면

관념의 아집으로는 퇴로 없는 어둠 뿐


십년을 공부하면 뭐라도 건지겠지

주야로 골몰하면 화안히 보이겠지

년년이 쌓이다 보면 문리 또한 트이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독서는 깊어지고

조그만 깨달음이 하나씩 늘어가면

집요한 물음 속에서 언듯 깜빡 작은 빛


Hermit , 나의 영원한 글스승, 너를 추억하며

1978년 5월 22일~2020년 12월 22일


2. Read Me


61

Mentre ch'i' rovinava in basso loco,

dinanzi a li occhi mi si fu offerto

chi per lungo silenzio parea fioco.


낮은 곳을 향해 격렬하게 뛰는 동안

오랜 침묵으로 인해 목소리가 잠긴 사람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64

Quando vidi costui nel gran diserto,

'Miserere di me,' gridai a lui,

'qual che tu sii, od ombra od omo certo!'


황량한 곳에서 그를 보았을 때 나는 소리쳤다.

확실한 사람인지 귀신인지 누군지 간에

나를 살려 주십시오.


67

Rispuosemi: 'Non omo, omo già fui,

e li parenti miei furon lombardi,

mantoani per patria ambedui.


그가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전에는 사람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롬바르디 사람이셨고

두 분 모두 만토바 출신이셨다.


70

Nacqui sub Iulio, ancor che fosse tardi,

e vissi a Roma sotto 'l buono Augusto

nel tempo de li dèi falsi e bugiardi.


나는 말년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 태어났고

아직도 거짓말쟁이들과 잡신들이 있었던 때,

위대한 아우구스 시대를 살았다.


73

Poeta fui, e cantai di quel giusto

figliuol d'Anchise che venne di Troia

poi che 'l superbo Ilión fu combusto.


나는 시인이었고, 오만한 일리온이

불에 탄 뒤에 트로이아에서 이탈리아로 온

안키세스의 정의로운 아들을 노래했다.


76

Ma tu perché ritorni a tanta noia?

Perché non sali il dilettoso monte

ch' è principio e cagion di tutta gioia?'


그런데 너는 왜 많은 고통의 원인인 숲으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모든 기쁨의 시작과 근원인

저 기쁨의 산에 왜 오르지 않는가?


79

'Or se' tu quel Virgilio e quella fonte

che spandi di parlar sì largo fiume?'

rispuos' io lui con vergognosa fronte.


“커다란 강물처럼 말이 흘러나오는 샘물,

당신은 그 유명한 베르길리우스이시군요?”

나는 수줍은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82

'O de li altri poeti onore e lume,

vagliami 'l lungo studio e 'l grande amore

che m'ha fatto cercar lo tuo volume.


“오, 다른 사람들의 영광이며 빛이고,

나의 오랜 연구에 의의를 주었고 나의 커다란 사랑은

나를 당신의 작품에 가까이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85

Tu se' lo mio maestro e 'l mio autore,

Itu se' solo colui da cu' io tolsi

lo bello stilo che m'ha fatto onore.


당신은 나의 선생이며, 특히 사랑하는 나의 저자입니다.

나에게 명성을 안겨 준 나의 아름다움 문체를

오직 당신에게만 배웠습니다.


3. Rememb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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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The Devine Comedy by Dante_Inferno, Dante Alighieri, the classic

La Divina commedia, Inferno, Dante Alighieri

신곡 지옥(인페르노), 단테(이시연 역), 더클래식

아이네이아스, 베르길리우스(천병희 역),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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