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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Feb 07. 2024

4. 두려움은 조금은 사그라 들었다.

부제: 신곡_인페르노(지옥) _제1곡 4~30절

4. 두려움은 조금은 사그라 들었다.

부제: 신곡_인페르노(지옥) _제1곡 4~30절


1. Read Me


Ahi quanto a dir qual era è cosa dura

아, 대단하다, 이야기하기엔 가혹한 일이었다.

esta selva selvaggia e aspra e forte

이 가혹하고 강한 야생의 숲을

che nel pensier rinova la paura!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친다.

Tant'è amara che poco è più morte;

그 무시 무시함은 죽을 것 같지만

ma per trattar del ben ch'i' vi trovai,

그곳에서 마주친 행복을 말하기 위해

dirò de l'altre cose ch'i' v'ho scorte.

불가사의한 사건을 이야기하련다.

Io non so ben ridir com'i' v'intrai,

어찌하여 헤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tant' era pien di sonno a quel punto

내가 너무 깊은 잠에 빠진 나머지

che la verace via abbandonai.

진실의 길을 버리고 말았다.

Ma poi ch'i' fui al piè d'un colle giunto,

마음은 두려움에 떨었고

là dove terminava quella valle

숲의 계곡이 끝나는 언저리에서

che m'avea di paura il cor compunto,

간신히 작은 산기슭에 다다랐다.

guardai in alto, e vidi le sue spalle

위를 올려다보니 작은 산 너머에는

vestite già de' raggi del pianeta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이끌어 주는

che mena dritto altrui per ogne calle.

태양이 이미 빛나기 시작했다.

Allor fu la paura un poco queta

그때의 두려움은 조금은 사그라 들었다.


2. Note Me


1. 야생의 숲에 대한 공포


아, 대단하다, 이야기하기엔 가혹한 일이었다. 이 가혹하고 강한 야생의 숲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친다. 그 무시 무시함에 죽을 것 같지만 그곳에서 마주친 행복을 말하기 위해 불가사의한 사건을 이야기하련다. 어찌하여 헤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내가 너무 깊은 잠에 빠진 나머지 진실의 길을 버리고 말았다. 마음은 두려움에 떨었다

<단테 신곡, 지옥편, 1곡 4~30>


최근에 미국 중부의 광활한 옥수수 밭에 대한 공포를 그린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대평원을 지나던 열차가 점검을 위해 잠시 정차한다. 승객 중 한 명이 담배와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열차에서 잠시 내렸다. 옥수수 밭 쪽에서 수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호기심을 느낀 그는 옥수수 밭 안으로 홀린 듯이 빠져들어간다. 그 소리를 찾아 얼마나 갔을까 그는 곧 방향을 잃었다. 폐쇄된 공간에서 그는 극도의 공포를 경험한다. 실제로 그 옥수수 밭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활보하며 인간을 찾는다. 그는 죽음의 공포 앞에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이 이야기는 야생의 풀 숲이 주는 공포를 너무 잘 보여주는 영화라 쉽게 몰입할 수 있었고, 비교적 짧은 순간이지만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 폐쇄 공포를 경험해 봤다. 군시절 임진강 하구에서 수색작업을 했었다. 한여름 갈대 받은 어른의 키 보다 훨씬 높고, 덮고, 습하다. 수색작전은 그 갈대 사이에 은거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적이나 적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어느 날 한 시간 정도를 그 갈대밭을 뚫고 헤쳐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8명 정도의 팀원 중 한 명이 사라졌다. 갈대밭 사이에서 소대원이 실종된 것이다. 다행히 30분을 샅샅이 뒤져 그 병사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도 땀에 범벅이 되어 파랗게 질린 그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나도 그 갈대 속에서 종종 숨막히는 공황과 공포를 경험했다.


인생길에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고 헤맨다. 무거운 짐을 지고 무성하게 자란 덤불을 하염없이 헤치고 다니는 군인의 운명처럼. 가시덤불에 찔리고, 빽빽한 수풀 속에 질식할 정도의 공포에 시달린 후라면 야생의 숲은 더 이상 생명의 숲이 아니라 죽음을 부르는 공포의 장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헤매는 것은 우리가 모두 낯선 여행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길에서 잠깐 정신을 팔거나, 지쳐 잠이라도 든다면 누구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조난자가 될 수 있다. 인생을 살아본 현자를 만날 수 있다면 좀 더 나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행운이 어찌 쉽게 주어지던가?


2. 간신히 작은 산기슭에 다다랐다.


숲의 계곡이 끝나는 언저리에서 간신히 작은 산기슭에 다다랐다. 위를 올려다보니 작은 산 너머에는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이끌어 주는 태양이 이미 빛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두려움은 조금은 사그라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숲의 가장자리로 나올 수 있었다. 이 장면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의 서시 혹은 여러 섬들에 도착했을 때 미지의 세계에 대해 두려워하던 오뒷세우스와 그 일행들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런데 단테는 호메로스가 아닌 베르길리우스에게 서사시를 배웠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이런 서술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아스>의 서사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이네아스>의 서시에 해당하는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무사 여신이여,

신들의 여왕이 신성을 어떻게

모독당했기에

속이 상한 나머지 그토록 많은

시련과 그토록 많은 고난을

더없이 경건한 남자로 하여금

겪게 했는지 말씀해 주소서!

……..

온갖 파란을 겪고,

그토록 많은 위험을 뚫고 우리는

라티움으로 향하니,

그곳에서 운명은 우리에게

안식처를 줄 것이오.

그곳에 제2의 트로이야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 때문이오.

그대들은 참고 견디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대들 자신을 보전하시오.

<아이네아스 , 베르길리우스(천병희 역), 소나무>


《아이네이스》는 고대 로마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로마의 시조로 추앙받는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일대기를 소재로 쓴 대서사시다. 베르길리우스는 농경시를 완성한 후, 자신을 후원하던 귀족 가이우스 킬리니우스 마이케나스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 완성도에 만족했다고 한다. 그리고 황제가 서사시를 써 보라는 격려를 받고 서사시에 착수할 결심을 했다.


베르길리우스는 이후 11년간 《아이네이스》에 매달렸는데, 앞으로 3년을 더 《아이네이스》에 바치기로 하고 답사를 위해 그리스, 터키로 여행을 떠났으나 열병에 걸려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었고 곧 죽었다. 베르길리우스는 죽으면서 이 미완성 작품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아우구스투스가 이 작품을 불태우지 말라고 명령해 거의 초안 그대로 남았다고 전해진다.


《아이네이스》는 로마의 역사와 그 지배자를 찬양하고 기릴 목적으로 쓰였다. 그러나 당대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를 주인공으로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투스가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트로이 전쟁의 전사도 아니고, 신들과 교감하며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영웅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황제의 적들은 사악해야 하는데 당대의 인물들을 그렇게 묘사하게 되면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는 우스운 이야기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컸다. 이런 이유로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아스를 로마 건국 신화의 영웅으로 탄생시키게 된다.


그런데 아이네이아스를 주인공으로 삼으려면 또 한 번 넘어야 할 문제가 생긴다. 바로 시간의 간격이다. 트로이가 멸망하고 로마를 창건하기까지 수백 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는 이 문제를 아이네이아스가 라비니움 건설하고,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알바 롱가 건설한 후 300년간 통치하고, 마지막 왕 누미토르의 딸 레아 실비아가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낳는 것 등의 설정을 통해 극복했다.


이렇게 보면 《아이네이스》는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멸망한 트로이의 영웅이 여기 저리를 떠돌며 험난한 여정을 경험한 후 로마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베르길리우스는 당시 방대한 설화와 전설들을 연구했다. 그로 인해 후세의 역사가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반면, 아이네이아스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그는 호메로스에게서 많은 부분을 활용해 창조적으로 재탄생시켰다.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전투 장면들의 《일리아스》에서, 세상을 떠돌며 고난을 극복하고 , 도전하고, 응전하는 내용은 《오뒷세이아》에서 익숙히 읽었던 내용들과 매우 닮아있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그냥 모방하는데 그친 작가라고 할 수 없다. 위대한 그리스적 전통과 로마의 기원을 연결시키며 그는 또 다른 위대한 작품을 창조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묘사되지 않은 트로이 함락을 묘사해 작품의 몰입도와 신뢰감을 높이고, 아이네이아스가 방랑하며 카르타고에 닿았다가 오디세우스와 같은 고난을 겪는 등 세계관을 크게 확장시킨 부분도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 작품은 라틴어로 쓰인 서사시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으며, 후대에 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 뛰어난 완성도에 힘입어 베르길리우스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과서로 널리 사용되었다.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바뀐 이후에도 신의 소명에 전적으로 충실한 아이네이아스가 갖은 고난과 역경에 부딪혀 괴로워하면서도 꿋꿋이 이겨내는 것이 그리스도교적 덕목에 부합한다고 여겼으므로 변함없이 애송되고 필사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나는 이 아침 그동안 여러 그리스 고전을 읽으며 보았던 감동적인 서사를 단테의 신곡에서 다시 만난다. 무엇보다 트로이 전쟁에서 수많은 영웅들을 하데스로 보내고, 수많은 아버지와 아들을 희생함으로써 많은 어머니와 여자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준 오 뒷세우스가 생각난다. 그의 이름 오뒷세우스(ὀδύσσομαι[odyssomai])는 '분노하다'란 뜻이다. 이는 오디세우스의 외할아버지이자 헤르메스의 아들인 아우톨리코스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는 귀족이었으나 도둑질과 거짓말에 능해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오디세이아》 19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오디세우스의 부모가 아들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자 자신의 행적을 생각하며 화가 난 자라는 이름을 손자에게 붙여주었다


내 사위와 딸아, 내가 말하는 이름을 붙여주어라.나는 많은 이들에게 화가 나서 이곳에 도착했는데,많은 것 양육하는 대지 위의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말이다.그런 이유로 오뒷세우스, 즉 ‘화가 난 자’라고 이름 지어라.

아우톨뤼코스 (19,406-409, 김기영 번역)


오뒷세우스도 아킬레우스처럼 필멸하는 인간의 삶을 극복하고자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의 영웅,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도 전쟁에서 많은 동료를 잃었다. 비록 그의 지략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했다. 결국 그는 트로이를 정복했으나, 귀향을 하는 동안 수많은 전우들을 잃었다. 무엇보다 트로이를 위해 싸우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 앞에 좌절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유명한 오뒷세우스의 서시를 안 읽어 볼 수가 없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한 사내에 대해,

응변에 능한 그는 많이도 떠돌다녔으며,

트로이의 신성한 도시를 정복하고 나서.

많은 도시를 보았고 그들의 성향을 알았지만

바다에서, 제 마음속 두루 수많은 고통을 겪으며

자기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의 귀향을 얻으려 했거늘.

그렇게 애썼으나 전우들을 구하지는 못했구나,

(중략)

살아남은 자는 모두 가파른 파멸을 피하고

전쟁과 바다에서 도망쳐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오직 그는, 귀향과 아내를 열망하는 오뒷세우스는,

요정이며 여주인인 가장 고귀한 여신 칼륍소가

우묵한 동굴에 붙잡고 제 신랑으로 삼고자 욕망했다.

해들이 돌고 돌아 정말로 그해가 돌아오자

신들은 실을 잣듯이 그가 이타케 집으로 귀향하도록

정해놓았으나, 그곳에서 그리고 전우들 사이에서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신들이 그를 동정했으나

오직 포세이돈은, 신을 닮은 오뒷세우스에게

분노를 그치지 않았다

《오뒷세이아》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온갖 전리품들과 여자들을 노획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좋은 대학을 가고, 돈을 잘 벌고, 명예를 얻기 위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며 살아왔던 것처럼. 그러나 삶이 언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치열한 경쟁의 꼭대기 위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 위에 표류하듯 알 수 없는 수많은 위험 속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광기의 모험을 경험하고 난 뒤에 숲의 계곡이 끝나는 작은 산기슭에 다다랐다. 산 너머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평안해 온다. 오늘 밤은 안전할 수 있을까? 잔인무도한 외눈박이 퀴클롭스들도 잠은 잘 테니. 딱딱한 돌에라도 의지해 불안한 단잠을 청해 본다.


P.S 아침에 원문의 단어를 찾다가 포기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일이기에 단어 하나하나의 공부는 좀 도 긴 호흡으로 해야겠다. 중세 이탈리아어라 현재는 사용하지 않아 사라진 단어와 문법도 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다.


신기한 것은 의미를 모르고 읽어도 소리와 운율을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호메로스와 같은 분들이 낭송했다는 서사시의 느낌을 알 수 있어. 공부가 다소 부족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완주하겠다. 일단은 완주의 목표는 별도의 사전 없이 인페르노를 정확한 발음으로 낭독하고 해설하는 것이다. 암송할 수 있으면 도 좋겠으나 그것은 너무 큰 욕심이다. 이 아침 고전을 원전으로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3. Remember Me

#일리아스#오뒷세이아#분#왜살아야하는가#단테#신곡 # 괴테#파우스트#니체#짜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지하생활자의수기 #키에르케고르 #전영창 전집#우찌무라간조 #로마서강해 #돈키호테 #캉디드 #팡세


<참고 자료>

The Devine Comedy by Dante_Inferno, Dante Alighieri, the classic

La Divina commedia, Inferno, Dante Alighieri

신곡 지옥(인페르노), 단테(이시연 역), 더클래식

단테 신곡 연구, 박상진, 대위학술총서

일리아스, 호메로스(천병희 역), 숲

오뒷세이아, 호메로스(천병희 역), 숲

아이네이아스, 베르길리우스(천병희 역),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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