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신곡_지옥_제2곡 전반부
8. 삶을 살아갈 용기
단테신곡_지옥_제2곡 전반부
1. Read and Note Me
날이 저물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땅 위의 모든 동물들은 일상의 피로로부터 자유롭게 쉬라 하는데 나는 홀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인생길을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기억은 틀림없이 모든 것을 기록할 것이다.(지2.1~6)
Lo giorno se n'andava, e l'aere Bruno, toglieva li animai che sono in terra, da le fatiche loro; e io sol uno. m'apparecchiava a sostener la Guerra, sì del cammino e sì de la pietate, che ritrarrà la mente che non erra(Inf.2:1~6)
만물이 잠든 밤이 찾아왔다. 피곤하고 외로운 인생길에서 유일한 위안은 시름을 잊고 잠들 수 있는 밤이다. 신은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므로 우리에게 단잠을 선물해 주셨는지 모른다. 특히 피곤한 순례자에게 잠은 생명수와 같이 소중하다. 그러나 오늘밤 순례자는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다. <나만 홀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인생길>에서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목격자이므로 내가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 눈물 속에 살아온 내 인생을 기록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목숨보다 소중한 일이다.
오 뮤즈여, 오 위대한 천재여, 지금 나를 도와주십시오. 오, 내가 본 것을 기록하는 기억이여, 여기서 당신의 고귀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지옥.2:7~9)
O muse, o alto ingegno, or m'aiutate; o mente che scrivesti ciò ch'io vidi, qui si parrà la tua nobilitate. (Inf.2:7~9)
주인공은 뮤즈의 여신에게 간청한다. 이 여신은 무사(고대 그리스어: Μουσα, 복수 Μουσαι 무사이) 또는 영어로 뮤즈(영어: Muse)라고 한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음악과 시를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이다.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에 영감을 주고 무사이 여신 자신들을 통해서 공연과 창조의 과정을 생각해 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본래는 그 수가 세 명이었으나 일곱 명으로 늘어나서 후에는 시인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서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명의 여신들로 여겨졌다. 아홉 자매는 기억을 통해 올림포스와 인간계의 음악과 시를 담당한다.
이는 서사시인들의 전통을 따르는 의식 중 하나이다. 고대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중요한 사상을 운율을 가진 서사시의 형태로 노래했다. 시인들은 직접 현악기에 맞춰 서사시를 암송했으므로 모든 시구를 기억해내야만 했다. 서사시는 말 그대로 장대한 분량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노래의 형식(운율과 댓구 등)을 갖추어 낭송해야 하므로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하면 서사시인들이 왜 시낭송 전에 뮤즈의 여신을 찾는지 이해할 만하다. 인간은 악기와 운율은 긴 서사를 기억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 1만 행이 넘는 시가들을 전승했을 것이므로 기억을 한다는 것 만으로 신적 경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 등의 서사시인들이 신처럼 추앙받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난 직후 시인은 베르길리우스에게 어려운 인생길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덕이 충분한지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요청한다.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이아스가 육체의 몸으로 불멸의 내세를 간 사실을 언급한다. 아이네이아스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로마 제국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로마는 성 베드로의 계승자가 있는 성스러운 곳이 될 운명이었다. 아이네이아스의 정복 전쟁은 아이네이아스에게 교황의 권위까지 선사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내세에 가야 하는지 질문 후에 유명한 문구가 이어진다.
Io non Enea, io non Paulo sono. me degno a ciò né io né altri 'l crede. (Inf.2:8~9)
저는 아이네이아스도, 바울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저나 다른 누구도 제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지.2:8~9)
이탈리아 원문의 단어를 분석해 보면 이렇다. 나(io)는, 아닙니다(non). Enea(에~네아)는 이탈리아어로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Aeneas)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로마 건국의 아버지 아이네이아스는 카톨릭 교황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성 베드로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그 후 모든 교황들은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권위를 갖는다. 이어서 나오는 non Paulo는 ‘나는 바울이 아닙니다’라는 뜻이고, Sono는 그래요라고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이탈리아어의 억양을 더해 읽어 본다. “이노 논 에~네아, 논 파울로 소~노.” 정말 간결하면서도 겸손한 표현이다. 그는 열두 제자 중 맏형 격이었던 성 베드로와 그리스도교의 교리의 근간을 집대성한 성바울을 언급하며 자신은 아이네이아스도, 성 바울도 아닌데 이러한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단테가 살아있는 몸으로 내세를 여행한다는 것은 두 성인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따르는 자신의 순례에 대해 그만큼 큰 무게감을 두었기 때문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단테의 지극한 겸손함 뒤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으로 불리는 ‘신곡’을 쓰고 있는 자신에 대한 신뢰와 감격이 숨겨져 있다. 실제로 신곡은 어떤 서사시보다 아름다운 시적 장치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의 겸손한 자화자찬은 그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내가 이탈리아를 여행을 한다면 나는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Io non Enea, io non Paulo sono.'
아이네이아스가 지옥에 간 이야기는 사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장면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오뒷세우스는 험난한 모험 중 귀향의 방법을 알기 위해 죽은 영웅들이 있는 하데스로 내려간다. 모험으로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마침내 아킬레우스의 혼백을 만나게 된다. 불멸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하데스에서도 신처럼 추앙받고 있다. 오뒷세우스는 그런 아킬레우스를 보며 이렇게 질문한다.
‘아카이아 인들 주에서 가장 용맹한 자여, 나는 테이레시아스에게 어떻게 하면 이타케로 돌라갈 수 있는지를 묻고자 이곳으로 내려왔습니다. 나는 아직도 아카이아 땅에 가까지 가지 못한 채 고통만 당하고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여, 어느 누구도 그대처럼 행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모든 아카이아 인들이 그대를 신처럼 존경했으며 이곳 죽은 자들 사이에서도 그대는 강력한 통치자입니다. 그러니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조금의 주저함 없이 이렇게 얘기한다.
‘영광의 오뒷세우스여, 죽은 자를 통치하기보다는 시골뜨기 하인배가 되어도 좋으니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는 늠름한 내 아들 소식을 알면 좀 전해 주세요. 최고의 용사가 되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갔나요,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사람들마다 삶의 형태가 다르고 각자의 입장이 있다. 폭풍우와 수많은 괴물들에게 죽을 고비를 수 차례 이겨낸 오뒷세우스였다. 그동안 많은 전우들이 끔찍하게 죽어갔다. 하루하루 힘든 삶을 이겨내야만 했던 오뒷세우스는 어쩌면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옥에서 왕노릇하는 아킬레우스의 대답은 '살아만 있다면 노예가 되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궁금한 것은 아들의 소식이다. 오뒷세우스의 말에 따르면 그의 사랑하는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를 이어 훌륭한 전사가 되었다. 작전 회의에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의견을 냈고 한마디도 틀린 말을 하지 않는 지혜를 갖췄다. 들판에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으며, 무시무시한 전투에서 무수한 남자들을 죽였다고 전해준다. 아킬레우스는 이 기쁜 소식을 듣고 맘이 놓인다. 비록 자신은 하데스의 어둠 속에서 분노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아들은 남아 불멸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이뤄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일 새벽 미명에 신곡을 읽으면서 많은 상념들이 스쳐지나간다. 중년의 나는 지난 평생 내게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신의 징벌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원망하며 지냈었다. 그리고 오늘도 많은 이들이 이 고통스러운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서 힘들고 아프게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난과 질병, 차별과 폭행, 분쟁과 전쟁 속에서 삶보다는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비참한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오뒷세우스와 함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내가 많은 이들과 함께 웃고 울어줄 수는 없으나, 나로 인해 곁에 있는 가족들이, 친구들이, 이웃들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근길에 사랑스러운 나의 딸아이를 꼭 안아주며 다짐했다. 나로 인해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할 거라고. 중년의 아빠는 부끄러운 마음에 남몰래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이제 사춘기를 시작한 시크한 딸에게 용기 내서 이렇게 속삭여 줬다.
(나의 뮤즈, 나의 베아트리체_맘 속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하고 예쁜 딸
아빠가 정말 많이 사랑해~
요즘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냉랭한 딸아이도 이런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조용히 '저도요'라고 대답해 준다. 이 순간 나는 슬프도록 행복하다. 오늘 아침 묵상은 이로써 나에게 충분한 명예의 상을 선물한 듯하다.
2. Rememb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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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자료
The Devine Comedy by Dante_Inferno, Dante Alighieri, the classic
La Divina commedia, Inferno, Dante Alighieri
신곡 지옥(인페르노), 단테(이시연 역), 더클래식
단테 신곡 연구, 박상진, 대위학술총서
일리아스, 호메로스(천병희 역), 숲
오뒷세이아, 호메로스(천병희 역), 숲
아이네이아스, 베르길리우스(천병희 역),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