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신곡_지옥_제2곡 후반부
9. 그녀의 따뜻한 품에서 나는 부활했다
단테신곡_지옥_제2곡 후반부
1. Read and Note Me
Io son Beatrice che ti faccio andare;(Inf.2.70)나의 베아트리체시여, 그대는 나를 가게하는 분(지2.70)
제2곡 후반부에 드디어 이 신곡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베아트리체가 등장한다. 70행의 첫 시작은 원래 Io Beatrice인데, 운율을 맞추기 위해 sono의 o를 빼고, ‘Io son Beatrice’로 썼다.
Questa chiese Lucia in suo dimando e disse: 'Or ha bisogno il tuo fedele di te, e io a te lo raccomando.’ Lucia, nimica di ciascun crudele, si mosse, e venne al loco dov' i' era, che mi sedea con l'antica Rachele. (Inf.2.94~99)
하늘 위에 계신 친절한 여인께서, 당신이 만날 자에게 온 불행을 측은히 여겨, 엄격한 신의 법을 깨뜨렸습니다. 그분은 성 루치아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에게 추종자는 지금 너의 도움이 필요하니, 내가 그에게 너를 맡긴다.
죽은 후에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걱정해 준 것에 단테는 감격한다. 그녀뿐 아니라 단테를 응원하는 이들이 더 있다. 그들은 바로 성모 마리아와 성 루치아였다. 베아트리체는 성모와 성 루치아의 배려로 갈 길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단테를 돕기로 마음을 먹고, 베르길리우스에게 단테를 도우러 가 줄 것을 부탁한다.
반대파의 집권으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단테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순례의 길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반대파의 추격과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참담한 운명 앞에서 그는 자기 그림자도 두려워할 만큼 심리적 취약성은 극에 달해갔다. 그런 그가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넘어 천국으로 이를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 대희년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복되고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의 진심 어린 염려와 사랑 때문이었다.
단테 연구자들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는 단테와 사랑에 빠진 적이 없는 인물로 추정한다. 물론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집 근처에 살던 실존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테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아홉 살에 불과했다. 그는 피렌체 거리를 걸으며 종종 그녀를 보았다. 그의 눈에 이웃집 소녀는 천사와 다름없는 존재이다. 단테는 “이 기적 같은 여인이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신생 3편)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존재에 완전히 압도된다. 어린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단테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었다. 문화사학자 야콥 부크하르트는 이를 “인간의 정신은 그것의 은밀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을 향해 강력한 한 발을 내디뎠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집에서 몇 야드 떨어진 곳에 살았던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보고 한눈에 반했지만, 그녀는 그냥 평범한 이웃집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테의 문학적 상상력은 그녀를 ‘구원의 여신’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내 인생에도 내가 ‘길을 잃고 한 없는 고통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나를 찾아와 준 성모 마리아 같은 존재가 있다. 신의 소명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나는 고교 시절 목회자가 되기를 유보하고 일반대학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심리학 전공자 중 목회자를 희망하는 이들이 꽤 된다. 심리학이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학문이고, 상담심리나 임상심리와 같이 직접적으로 사람을 치유하는 학문을 배울 수 있으므로 추후 목회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리라. 나도 비슷한 목적으로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심리학과에 진학한 다른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힘들게 세상을 헤쳐오면서 겪은 여러 풍파들과 그로 인해 생긴 낮은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부모의 부재와 친지들의 철저한 무관심과 유린 속에 나는 잡초처럼 억세게 자랐다. 매일매일 끼니를 걱정했고, 안전한 잠자리는 매일 위협받았다. 비탄과 절망 속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어느 날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 입학 후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학업에 매진했다. 학과 수업이 없는 날에는 대부분 학교 중앙도서관이나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심리학 공부도 재미있었지만, 내 삶의 현실이 나를 더 절실하게 만들었다.
<대전청소년쉼터 (고)윤현영 소장님>
2학년 때 상담심리학,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당시 상담심리학 교수님은 심리학과가 아닌 교육심리학 대학원에서 상담을 가르치셨던 윤교수님이셨다.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왜 심리학과가 아니라, 교육학과 선생님이 상담을 맡으셨을까? 내 기억에 당시 우리 과에는 상담심리학 전공 교수가 미배정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전공필수인 상담심리학을 상담심리학 과정이 개설된 교육학과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마침 학교상담센터장이 윤교수님이셨던 것이다. 윤교수님은 상담 전문가답게 아주 공감적이고 열정적인 분이셨다. 아름다운 외모,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 항상 따뜻하게 미소 지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강의실 맨 앞자리는 항상 내 차지였다. 나는 이런 교수님 밑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1학기 상담심리학 이론 강의가 끝나고 2학기부터는 상담심화 과정 수업을 이수했다. 이 과정은 2급 상담심리사 자격을 위한 수련을 포함했는데 매주 상담 과정의 실제와 교수님의 개별 슈퍼바이징(상담 수련)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매주 학교상담센터를 찾아가 교수님과 1~2시간씩 개별로 상담을 했다. 나는 항상 그 상담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교수님의 상담 기법을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배우고 싶었다. 경청, 공감적 이해, 내담자를 대하는 태도, 온정적 눈길 그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수련 회기가 거듭되면서 나는 교수님과 깊은 라포(Rapport는 심리학 용어로 친밀한 유대관계를 의미한다)를 형성했다. 상담초기 교수님은 내 삶의 역경과 분투에 대해 단 한 번도 조언하거나 개입하시지 않으시면서 진심으로 경청하시고 위로해 주셨다. ‘너 정말 힘든 시절을 잘 이겨냈다야.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까?’ 라시며 자신의 눈시울을 붉히시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상담 전회기 동안 정말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상담시간이었다. 교수님은 단 한번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저마다 상처를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단다. 물론 네가 경험한 인생의 고통을 생각하면 나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슬퍼져. 하지만 나는 네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직면했으면 좋겠어. 넌 아주 멋진 청년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심리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려 노력하는 아주 건강한 청년이잖아. 비록 어린 시절 부모라는 큰 기둥이 사라진 것은 너무 큰 슬픔이지만, 그 빈자리를 너 스스로 잘 버티며 살아왔다는 것 또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야. 이 넓은 세상에 혼자가 되어 살아간다는 외로움은 내가 감히 가늠할 수가 없지만, 네가 스스로 기둥이 되어 너를 지키고 있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야. 그러니 너를 신뢰해 보자. 너는 이미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나는 그런 네가 너무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어린 시절 부모의 상실이라는 비극은 청년시절까지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나는 그날 나를 꼭 안아주시던 그녀의 따뜻한 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 따뜻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대성통곡했었다. 그동안 내 삶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줬던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나를 이만큼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조언해 준 분은 교수님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나를 안아 준 그녀의 두 팔과 진심으로 나를 지지해 준 그 따뜻한 가슴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로. 그녀의 따뜻한 품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비극적 운명보다 더 강한 것은 그것을 이기는 힘과 용기임을 배웠다. 성모 마리가 계시다면 바로 윤교수님 같은 분이 아닐까? 한 없는 애정의 눈으로 날 바라봐 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이해해 주신 그분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나의 성모 마리아는 바로 ‘가출 청소년들의 대모’로 알려진 (고) 윤현영(안젤라) 소장님 이시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20세기말 윤소장님은 길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쉼터를 자처하셨다. 그리고 평생을 청소년들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신 그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본다. 아래 글은 윤소장님이 2015년 4월 10일에 남기신 신앙단상이다.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젖을 먹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기들을 내려다보면서 젖을 먹입니다. 그러면 아기는 자기의 모든 것을 돌보아 주는, 그래서 자기에게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젖을 먹습니다. 아기들이 보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지만 사실은 어머니의 얼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현대 정신분석학에서는 이야기합니다.
물론 어머니들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기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아, 너는 어쩌면 이렇게 예쁘니?” 또는 “네가 태어나 주어서 정말 기쁘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보면 아기는 “아, 나는 이렇게 좋고 가치로운 존재이구나”라는 행복한 자신을 인식해 가겠지요. 그러나 만약 너무 바쁜 일이 있어서 “아휴, 빨리 좀 먹어라”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내려다본다면 아기는 “아, 나는 귀찮은 존재이구나”하는 인식을 하게 되다고 합니다. 또 만약 너무 험한 세상에 아기가 살아갈 것이 염려되어서라도 “이 험한 세상에 왜 태어났니?”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내려다본다면 “아, 나는 우울한 존재이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결국 어머니는 아기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비추어 보여주는 최초의 거울이 됩니다. 이것을 거울 보기(mirroring)라고 부릅니다.
어머니가 비추어 주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아기들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환영받는지 등을 느끼며 자신에 대한 상을 만들어가고 인식하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러한 경험들이 그 사람이 일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인생의 초기 경험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쉼터의 아이들을 보면서 이러한 주장에 깊이 공감하곤 합니다. 상황이 힘들 때, 그것을 이겨내고 참아 내며, 신념을 갖거나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일어서는 아이들과 상황이 훨씬 덜 힘듦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주저앉거나 조금 좋아졌다가 다시 예전으로 쉽게 돌아가 버리는 아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라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그 스스로에 대한 신뢰의 기초는 역시 가정에서 결정됩니다.
부모님들이 스스로에 대해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신뢰한다면 아이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을 신뢰하고 타인을 신뢰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신뢰 중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보다 더 큰 신뢰가 있을까요? 나는 하나님께서 세상 무엇보다 큰 능력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부모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확신시켜 줄 때, 우리의 아이들은 스스로를 신뢰하며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여유 있게 삶을 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이들을 통해 많은 일들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위 글에서도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역경을 이겨 나갈 수 있음을 역설하신다. 그리고 부모가 스스로에 대해 신뢰한다면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도 자기와 타인을 신뢰하며 안정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전생애를 통해 나를 꼭 안아 주셨던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참사랑을 보여주신 소장님이 참 그리운 날이다. 오늘도 그녀는 이 땅에서 이를 신음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울며 기도하고 있으리라. 나의 수호자 천사 안젤라가 그리운 날이다. 나의 손을 꼭 잡아주며 한 없이 인자하게 웃어주시던 그 미소가 생각난다. 그녀가 내게 주었던 사랑을 본받아, 아픈 이들의 손을 꼽잡아 주고 안아줄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2. Rememb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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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도서
The Devine Comedy by Dante_Inferno, Dante Alighieri, the classic
La Divina commedia, Inferno, Dante Alighieri
신곡 지옥(인페르노), 단테(이시연 역), 더클래식
단테 신곡 연구, 박상진, 대위학술총서
일리아스, 호메로스(천병희 역), 숲
오뒷세이아, 호메로스(천병희 역), 숲
아이네이아스, 베르길리우스(천병희 역),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