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부터 아내는 못보던 기기를 전기 레인지에 올리고는 커피콩을 볶는다. "봐 봐! 신기하지?" 그냥 무심결에 회장실에서 얼굴을 씻고는 거실 소파로 향했다. "커피 맛이 어때?" "그냥 그렇지 뭐!" "딸내미가 택배로 보내 준 건 데?" "고뤠, 아주 좋아!" 갑자기 커피에 대한 평가가 껑충 뛰어 오른다. 사실 커피 맛은 잘 모른다. 그저 테이블에 놓이면 잠시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 좋아 마시는 것이지, 무슨 맛을 구별해 '이게 좋다, 저게 별로다' 하는 판단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애들이 보낸 것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바뀐다. 하기야 달달한 봉지 커피에 익숙한 양촌리 사람[?]들에겐 원두 커피가 어쩌니 하는 것은 쓰디 쓴 한약이나 다름없다. 역시 커피는 분위기로 마시는 것이지 맛으로 그렇게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아무리 고급스런 커피도 양촌리에서 마시면 들이키는 것이라고 비하할 것이다.
2. 반대로 고급 호텔에서 봉지 커피를 마셔도 최상위 것을 마시는 것으로 둔갑한다. 가족간 일도 그런 이미지 전환을 한다. 남들에게는 그렇고 그런 일이라도, 가족의 일이라면 질적으로 바뀐다. 그것이 때로는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환상으로, 마음을 옭죄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가족들에겐 환상이 현실이다. 요즘은 그것이 도를 넘어 타인에게로 향하는 패악질이 사회적 문제거리이다. 어느 정도의 관심과 애정이 허용되는 것인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집밖을 나서면 큰 골칫거리가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야 가족간 과잉은 무한 허용되는 것이 아닐까?
3. 가족간에는 과장법과 정도를 넘는 전폭적 지지가 전면적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곳이다. 모든 사태가 이처럼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곳이고 보니, 맹목적이 되기 쉽기는 하다. 자식 일이라 어쩌고 싶어도 그러질 못한다는 푸념도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 조차도 자식 일이라 그냥 넘기는 일도 많기는 하다. 하지만 끝내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기족의 운명이라면 그것일 것이다. 오늘도 객지에서 살아가느라 힘든 애들에게 작은 마음의 응원을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