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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

by justit

1. 터널을 지나면 버스는 바닷가 입구에 닿는다.

방파제로 둘러싸인 이곳은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수면위로는 날파리라도 잡아 먹는 것인 지 가끔씩 물고기가 펄쩍 뛰어 오른다. 참 한가로운 곳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이곳을 더러 찾았더랬는 데, 세월이 지난 지금은 거기가 대체 어디쯤이었는 지 찾지를 못하겠다. 바위가 물살에 살랑이듯 수면에 비치면, 그냥 조그만 움직임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그렇다기 보다는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이다. 말미잘도 보인다. 하늘거리는촉수를 늘어뜨리고 플랑크톤이며, 가끔씩 조그만 게가 걸려 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갯강구도 부지런히 바위 위를 오락가락거린다. 지난 여름에는 이집트에서 대리석 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와 여길 왔었다. 서로의 고민이 깊어가던 시기였다. 녀석은 얼떨결에 대입 성적이 잘 나와 생각지도 않은 의대로 진학했다. 그러나 적성이 도저히 맞지 않다고 하면서 한 학기도 채 안되어 학교를 그만 뒀다.
그러면서 나와 한 배를 타는 신세로 갈아 탔다. 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이과 공부를 걷어 치우고 문과로 갈아 탔다.

2. 순식간에 길이 달라져 버렸다.

"왜 어렵게 들어갔는 데, 끝까지 버텨 보지 그랬어?"
"저학년이면 모를까, 평생 남의 몸뚱이를 가르고, 헤집고 하는 일이 도무지..."
하기야 그때는 서로를 격려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일, 다시 새로운 길을 향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이과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학교를 빠져 나오기 전에는 공인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힘에 부쳤던지, 취업을 하고는 주로 회계 부문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어느날인가 인도로, 다음에는 이집트로 파견 근무를 나갔다.
"여보세요."
"나, ♤♤♤"
"응? 그간 연락도 없더니..."
그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그만 두고 이집트에서 대리석을 채취해 국내에 납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화가 매우 다른 현지인 관리에 따른 고충 등을 토로했다.

3. 우리는 애전에 우리가 어릴 적 살던 동네를찾았다.


나도 오랜만에 들른 곳이라 많은 것이 변해 있을 줄 알았지만, 별로 바뀐게 없었다.
"저 곳이 우리가 축구하다가 유리창을 깨 먹은 곳이고..."
풍경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추억도 그대로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우리가 갔던 바다를 한 번 가볼까?"
"아, 거기! 글쎄 찾을 수 있을까?"
그저 막연한 심정으로 우린 그 곳을 향했다. 주변엔 어느새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방파제도 구조가 바뀐것 같다. 그 시절의 기억만으로는 도저히 비슷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이젠 귀국할 생각이 없나 보네?"
"둘째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고, 돌아오더라도 생활 기반으로 할 마땅한 게 없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릴 때부터 한 가족처럼 지내던 친구는 몇년에 한 번 꼴로 연락을 받는다. 그는 임차폰을 쓰는 바람에 고정된 전화기도 없다. 그래서 수동적으로 그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최근엔 연락조차 없으니 더욱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 수가 없다. 하던 사업이 잘못되어 험한 꼴을 당하고나 있지는 않은지?
가족이라는 의미는 따지고 보면 친한 친구에게도 적용되는 것일 텐 데...
그의 소식을 하냥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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