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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t Jun 30. 2024

경계와 한계

1. 경계와 한계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의 끝을 알 수 없으니 사실상 차이가 없는 듯해 보인다. 다만 부지불식간에  '차이'라는 말을 써서 그 사이가 비어있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것을 메꾸기 위해 밀고 나가면 경계가 한계에 육박할 것이다.  한계가 없다는 말처럼 경계는 계속 확장될 여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남자는 아이를 잉태할 수는 없다. 남자가 실제 임신한 사례가 있지만 그것도 트랜스 젠더의 경우로 그럴 여지는 남겨 놓은 상황이었다. 경계라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경우이다. 그 외에는 가능하지 않으니 적어도 남자가 임신하는 현상은 불가능하디고 보아도 될 것이다. 거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그어져 있다. 경계를 인위적으로 확장하는 외에는 불가능성이다.  거기에 인간은 이런 한계를 넘어서서 경계 영역을 흡수해 왔다. 그런 데 이 불가능성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대단한 위력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특이한 것을 없애고 평범으로 전환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예전의 생활양식을 더 높은 차원으로 올려놓은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2. 진화적 관점에서는 분명한 발전이다. 그런데 그 비교 기존은 이전의 과거이다. 어제는 볼가능했던 것이 오늘에는 가능해진다. 이제 그것은 평범해지고 더 이상 신기하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한계를 없앨수록 더 궁핍해진다. 얻지 못할 것은 차라리 포기해 버리거나 상상 속에서만 그려보는 아름다움도 있었는 데, 점점 그런 것이 없어진다. 다만 경계와  한계가 모호해져 중간 영역이 늘어난다. 이분법적 세계에서 두 극이 극명하게 다투는 대립을,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편입하는 폭력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이도 저도 아닌 회색 영역은 양쪽의 한계이다. 경계와 경계 간의 차이를 모두 포함하는 이 현상은 경계 내 한계이다. 한계는 경계의 바깥에서 경계의 침입에 저항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경계 내 한계는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한계에 도달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경계를 형성한 듯 보였으나, 그것은 바깥만을 쳐다본 결과일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인간의 제한된 능력을 뛰어넘어, 너머를 쳐다보고 있지만, 지식에 저항하는 신체의 존재는 어떨까?
의료 수단으로써 신체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는 인공 신체도 사실은 입력된 정보에 의해 기능을 발휘한다. 이것은 평범한 일상의 신체 동작이나 마찬가지이다. 차이가 있다면, 자연적으로는 동작이 볼가능한 신체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까?


3. 정상, 비정상을 구분하는 이분법으로는 겨우 평상을 회복한 것뿐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신체 기능을 강화해 아무 장비 없이 심해를 유영한다면, 그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할 것이다. 전자는 한계보다는, 제대로 작동하는 것의 경계 내로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후자는 수심 몇 m까지 가능하다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경계를 확장한 것이다. 그의 경계는 타인의 한계가 되겠지만..
경계와 한계는 물리적으로 선을 그을 만큼 명확하지는 않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아서만 그럴 뿐이댜.
단순한 몸 구조와 지능을 가진 벌들도 하늘을 난다. 그들의 한계는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잠시만 머리를 가라앉혀도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물속을 헤엄쳐 다닌다. 그들의 한계는 물 바깥이다. 그런데 양서류라든지, 딱총새 같은 경우엔 이 한계를 극복하고 진화했다.
경계를 넘어서면 한계이고 한계를 빠져나오면 경계가 된다. 그 사이라는 것이 참 모호하다. 접촉면을  보면 사이라는 것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면, 수면과 공기를 기준으로 나누면 벌에게는 경계가 어디까지이고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그 사이에 무엇도 상상하기도  힘들 것 같은 데...

경계이면서도 한계, 한계이면서도 경계인 것이 보다 현대적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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