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가 가라 주차장!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텐트를 설치해 주차 공간을 장악한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접한다. 정말 사람이 개를 물어뜯을 정도의 이벤트이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상념을 전복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물론 이것은 감탄이 아니라 경악이다. 도대체 어떤 판단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굳이 공동체 운운하는 거북한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참 기막힌 일이다. 현실사회에서의 규칙이나 관행 따위가 효력을 정지하고 마치 예외상태를 보이는 형국이라니? 그런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타인에 의한 승인을 얻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내가 마음에 없는 데, 너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나를 끌어들이지 말라!'라는 거부 반응이 즉각 나타날 것이다. 다른 사람은 이용하지 못하도록 두 칸의 공간을 장악하거나, 출입구 한가운데 주차시켜 교통을 방해하고도 뻔뻔스러운 추태를 보이는 짓 등, 날이 갈수록 어이없는 반 행위가 사회 전면에 나서고 있다.
2. 남이야 죽든 말든 공권력에 거부감을 가진 세대들은 다른 의미로 쓰겠지만, 그것은 어느 한 편에 서서 편파적 지지를 보내는 작동이어서는 안 된다. 사유권에 대해서는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사권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에 제동을 거는 측면에서는 별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개인대 개인이 절대성으로 맞서면 개인 간 문제는 자력구제에 맡겨지게 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하다. "내가 하는 일이니 내 맘대로이고, 그러니 간섭하지 말라!"는, "네 논리대로라면, 내가 내 의지로 네게 비난을 퍼붓든 무슨 상관이냐?"와 같은 끝없는 순환 논리로 귀결할 것이다. 우리가 굳이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한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타적 협력은 가장 좋은 생존 전략이라고 했다. 인류에 각인된 이 진화적 코드가 인류세를 맞으면서 새롭게 선택된 것일까? 아니면 자연선택이란 표현에서 마저 볼 수 있듯이, 인간은 더 이상 자연에 적응할 필요가 없이 인공적 자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까?
3. 이벤트다 이벤트! '일단의 새 무리가 나뭇가지 사이사이에서 이리저리 날며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숲으로 사냥꾼 하나가 들어서자 가까이 있던 새 한 마리가 높은 소리로 울면서 하늘로 치솟는다. 그러자 다른 새들도 위험을 감지하고 일제히 날아오른다. 그중 미처 비상하지 못한 새 한 마리가 포수가 쏜 총에 맞아떨어진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는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처음에 위험 신호를 보낸 새는, 제일 먼저 눈에 띄어 첫 번째 사냥감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전체 무리를 위해 그것을 감수하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자세히 보면, 먼저 날아 간 새는, '나는 이렇게 튼튼한 날개로 재빨리 날 수 있으니, 다른 동료나 알아보쇼!'라는 식이란 것이다. 유전자 전쟁은 이런 생존을 위한 이기적 행동일 뿐이란 것이다. 물론 이기적이라는 말은 '유전자 발현에 그러하다는 것이며, 이기적인 것은 유전자이지 인간 자체인 것은 아니다'[나무위키]
어이없는 텐트 하나에 인간은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을 소환했으니, 이벤트는 이벤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