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헛
막내 이모가 있었다니. 17년 만에 알게 된 그녀의 존재는 충격적이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만 봤던 출생의 비밀이 자신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 같아서 유진은 묘하게 들뜨기도 했다. 사촌언니 역시 조금 흥분한 듯 수화기 너머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 막내 이모가, 스무 살에 갑자기 미국으로 가 버린 거야. 그러다가 이번에 십몇 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오는 거래."
"미이국?"
가 본 적도 없는 TV 속 그 꿈과 미지의 나라에 다름 아닌 나의 핏줄이 살고 있었다니.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유진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울 엄마는 그래도 가끔 연락한 것 같던데. 작은 이모는 너한테 얘기도 안 하셨구나."
아닌 게 아니라, 엄마는 막내 이모의 막 자도 유진 앞에서 꺼낸 적이 없었다. 한국에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식구들 사이에 돌자, 그제서야 저녁 밥상 앞에서 못마땅한 듯 몇 마디 뇌까린 것이 전부였다.
"고 기지배는, 지 살겠다고 혼자 나갈 땐 언제고. 한국엔 뭣 헌다고 기어들어와.."
엄마에게는 더 이상 막내 이모에 대해 물을 수 없다는 걸 직감한 유진은 사촌언니의 썰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소식을 전하는 재미에 사촌언니도 꽤 적극적이었다. (이때 그녀는 기자가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유진의 일방적인 닦달 및 이야깃거리 고갈에 그 열기는 점점 시들해져 갔다. 급기야 어느 날 저녁 통화를 하던 중엔 공약 아닌 공약을 내걸었다.
"다음 주에 한국 오면 우리 집에서 며칠 묵을 거래. 그때 내가 이모더러 전주에 가보라고 할게. 이제 나한테 그만 물어보고 궁금한건 만나서 이모한테 직접 들어!”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막내 이모와의 첫 만남은 사촌언니가 바꿔 준 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엄마가 들을세라 유진은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가 유진이구나!"
"이, 이모.. 안녕하세요."
뜨거운 햇볕 아래 잘 그을린 피부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모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그냥 내일 전주 갈까 봐. schedule 바쁘니?”
"내일 괜찮아요. 객사 앞으로 오시면 돼요.”
다음 날 이모는 거짓말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보자마자 그녀가 그녀인 것을, 유진은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유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유진아. 여기 오다 보니 핏-사헡 있던데 우리 거기 갈래? 너 핏-사 좋아하니?"
"네?"
다시 그 발음을 입안에서 찬찬히 되새겨보니,
아. 피자. 피자헛.
사실 피자헛이 생긴 줄은 알았지만 가 본 적은 없었다.
"네. 좋아해요. 가요."
객사 앞 거리는 전부 다 꿰뚫고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처음 가본 피자헛은 신세계 그 자체였다. 이역만리의 레스토랑에 발을 들인 듯 인테리어부터 식기, 냄새, 음악, 알바생들이 차림까지 모든 것이 이국적이었고 그 풍경을 완성하는 건 미국에서 막 날아와 유진 앞에 앉아있는 이모라는 사람이었다. 유진은 금방이라도 딸꾹질이 나올 것 같은 호흡을 애써 삼키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처음 먹어보는 불고기 피자의 맛은 불고기가 토핑으로 올라가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아주 새로운 맛은 아니었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이모의 얼굴도 처음 봤지만 보면 볼수록 처음 보는 것 같지 않았다. 낯선 듯 익숙한 그녀에게 유진은 묻고 싶었다. 그 때 왜 미국행을 결심했는지를.
"집에는 비밀이었는데, boy friend가 있었어. 유진이 너도 알다시피 이모가 5남매 중에 막내딸이잖아. 아무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딜 가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는데. 그 친구는 그걸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어. 그땐 그게 신기했고 고마웠지. 이모가 아는 중에 제-일 멀고 제-일 free한 나라는 USA였거든. 그래서 나 USA 가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랑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 So, 그냥 그렇게 전부 다시 이모의 인생을 reset하고 싶은 마음으로 갔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하하."
그녀는 어린애를 두고 별소리를 다했다는 듯이 옅게 웃었다.
“그 남자친구 분이랑 지금도 같이 사시는 거예요?”
“No...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혼자 살아.”
입을 다문 이모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손으로 큼직한 피자 조각을 하나 집어 들었다. 양손에 든 포크와 나이프를 놓을까 말까, 유진은 잠시 고민했다.
“한국엔 비자 문제 때문에 잠깐 왔고 금요일에 돌아가. 다시 나오는 건 당분간 어려울 거야. 유진이 니가 놀러 와야겠다."
"엄마가 안 보내줄 것 같은데요?”
농담조로 말했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실의 무게에 늘 짓눌려있는 엄마와는 달리 그늘 하나 드리워지지 않은 이모의 모습을 보니, 엄마가 왜 이모를 그리 미워하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엄마한테 이모 대신 미안했다고 전해줘. 지금도 많이 미안해하고 있다고.”
내내 캘리포니아 날씨처럼 산뜻했던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구름이 드리워졌다. 무엇을 미안해하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동시에 아렴풋이 알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이모. 저는, 이모처럼 되고 싶어요. 외국에 나가서 자유롭고 멋지게요.”
“유진. 잘 들어. 넌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고 아무한테도 기대지 마. 너 혼자 힘으로 너만 위하면서 니 방법으로 살아야 해. LIVE YOUR OWN LIFE.”
이모는 최대한 또박 또박 음절 음절 힘을 주어 말했다. 그 말을 다시 되새겨봤지만 이번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워서 유진은 대답 대신 피자를 썰었다.
“내가, 너희 엄마가, 이걸 니 나이 때 알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객사 거리에는 국어책 어딘가에서 읽은 시구절처럼 낙엽이 타국의 지폐처럼 뒹굴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창 밖이 아닌 더 먼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는 것을 유진은 한참을 지나고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