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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담킴 Dec 10. 2019

잔다리로 학원가

@카모메식당

남녀공학으로 전학 간 준미는 처음 보는 버건디색 교복을 입고 근 한 달 보름만에 나타났다. 준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무테 반투명 안경은 보이지 않았고 하나로 질끈 묶던 머리도 등 뒤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헐~ 야! 너네 학교 교복 왜 이렇게 이뻐?"


지윤은 준미의 새 교복을 만지작거렸다. 준미는 그런 지윤을 못 본 척 등받이 없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시켰냐?"

"웅.”

“뭐 시켰냐.”

“날치알주먹밥."

"두 개 다 날치알로?"

"웅. 왜? 너 좋아하잖아."

"아, 나 이제 좀 질렸어 그거... 이모! 날치알 두 개 다 들어갔어요? 하나 취소돼요?"

"두 개 지금 나갈 건데~"

"아씨... 그럼 그냥 주세요."


무릎이 닿을듯한 좁은 식탁 위에 날치알주먹밥 두 개가 금세 놓였다.


"나 이거 빨리 먹고 가야 돼."

"여기까지 왔는데? 왜?"

"이 앞에서 동아리 선배들 만나기로 했어. 환영회 한대."

"올~ 남친 생기는 거 아냐?"

"남친은 무슨...”


준미는 주먹밥을 절반쯤 먹다가 내려놨다.


"배부르다. 못 먹겠어."


지윤이 주먹밥 하나를 다 먹는 동안 준미는 말없이 폰만 들여다봤다. 지윤은 일부러 날치알을 하나씩 이로 톡톡 터뜨렸다. 할 수 있는 한 더 천천히 먹고 싶은 알 수 없는 심술이 속에서 일렁거렸다.


"다 먹었냐?"

"응."

"가자."


식당을 나와 거울처럼 비치는 건물 외벽 앞에서 옷매무새를 한참 다듬는 준미 옆에 지윤은 뻣뻣하게 섰다. 어색한 포즈로 인공눈물을 넣는 준미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 네 선배. 저 이제 길만 건너면 바로예요. 다 왔어요. 얼른 갈게요. 네네~"


준미는 다급하게 매무새를 마저 만지고는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향해 달리며 지윤에게 소리쳤다.


"이따 문자 할게!"


잔다리로 (이미지 출처: mapio.net)


6년을 매일같이 보던 뒷모습 대신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의 것 같은 뒷모습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세븐 일레븐 앞을 지나 점처럼 작아지고,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지고 나니 지윤은 다리가 풀렸다. 거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세상이 무너져내린 사람처럼 엉엉 울었다. 바늘로 톡 찔린 거대한 물풍선이 된 것만 같았다. 온 몸의 수분이 눈으로 쏟아져나왔다.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 울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명치께에 얹힌 주먹밥이 눈물을 타고 내려갔다. 울음이 잦아들자 지윤은 눈물을 대충 닦아내고 자리에서 반듯하게 일어났다. 준미가 거울처럼 들여다보던 건물 외벽 앞에 가만히 섰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교복치마를 탁탁 펴다가 점멸하는 신호에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어느 뒷모습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기 힘들어질 즈음,

신호가 한 번 더 바뀌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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