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드러나는 본성
변호사가 써준 첫 협의이혼서가 도착했다.
그 합의서에는 나는 ‘갑’ 그는 ‘을‘로 나와있고
1항에는
갑과 을의 사실혼은 을의 성매매 등 부정행위로 인하여 몇 년, 몇 월, 며칠 해소 되었음을 확인한다.
라고 쓰여있었다.
첫 문장은 그에게 이게 정말 팩트고 우리가 헤어진다는 걸 각인시켜 주는 문장이었다. 나 또한 그 문구를 보고 있자니 진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밑에 내용들은 나의 요구사항만 쓰여있는 일방적인 합의서이긴 했지만 그에게 뭔가를 더 요구하는 내용들은 아니었다. 그냥 이 집 그대로 놔두고 그는 자신의 짐과 자동차만 갖고 헤어지는 것.
내 입장에선 재산을 더 탐내는 것이나 그의 것을 더 뺏으려는 것이 아닌 그와 항목 하나씩 얘기 나누면서 서로의 끝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예를 들면 집안 가전가구만 하더라도 이거는 중고로 팔면 얼마라는데 팔지 말지, 커피머신은 누가 가져갈 거냐 등등 이런 사소한 것들을 그와 얘기하는 상상만 해도 힘이 쭉쭉 빠지고 스트레스였다.
그냥 그 합의서 그대로 그의 짐만 그의 차에 실어서 가져가고 우리는 끝, 이길 바랐다.
이렇게 작성을 해서 그에게 메일을 보내고 합의서를 보냈다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전화가 온 그
그의 목소리는 어제 ‘마사지야..’라고 말하며 미안해하던 애절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단호하고 차분했다.
그러면서 절대 이 합의서에 동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본인이 잘못한 거는 잘못한 거고 재산에 대해서는 자신의 지분이 있기 때문에 내 요구대론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같이 합의했던 외벌이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자기도 결혼생활이 행복하지만은 않았고 자신의 잘못 때문만에 헤어지는 건 아니라고 갑자기 딴소리를 들먹이며 뻔뻔하게 나왔다.
하루 만에 돌변한 그가 어이없었다. 그리고 실망했다. 진짜 그의 본성이 나타났구나 싶었다. 이런 사람을 내가 제대로 못 알아봤다는 자책과 같은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당연한 건가. 인간이 끝에 다다르면 자기만 생각하게 되는 이 모습이.
실망스러웠고 이 싸움이 길어질 거 같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