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킵고잉 Nov 19. 2023

#2. 이성인가 생존본능인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로 결심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로 결심을 했다.


여기서 더 진실을 알게 되든 아니든 이미 나는 웅덩이에 빠졌다. 이 하나의 증거만으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난 어떤 선택을 하던지 그의 대한 믿음은 깨졌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내가 먼저 본 증거를 저장을 했고

혹시나 더 이런 내용들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 후기를 써 내려간 카톡대화를 쭉 내려가보니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를 잘한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가성비로 동남아 여자로만 하지만

돈이 많으면 국산으로 하고 싶다.

천만 원만 있으면 풀코스와 VIP 등 그 세계의

용어들을 써가면서 유흥으로 돈을 탕진하고 싶다는

대화를 나눈 것을 보았다.


손이 차가워져 갔다.

보고 있는 손이 떨렸다.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가슴이 엄청나게 빠르게 뛰고 손이 차가워져 가고

머리가 하얗게 되며 오히려 이성적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화를 보고 더 이상의 고민 없이

헤어져야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용서할 수 없는

갱생불가의 X자식이었다.


나와 만나기 전에 성매매를 한 것도

나와 결혼하고도 죄책감 없이 성매매를 한 것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오히려 와이프가 회사를 쉬고 있으니 로또점을 차려서

로또가 되면 그 돈으로 유흥에 탕진해보고 싶어 하는 것도

용서할 수 없는 갱생불가의 쓰레기였다.


피폐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건가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멈추고 싶었지만 이 새벽에 증거를 모으지 않고 지금 자버린다면 내일 일어나서 그를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내가 안다는 사실을 알고 증거를 더 숨 길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소송에 갈 것을 대비해 내가 챙길 수 있는 것들은 다 챙겨야 했다.


우리 엄마는 나보고 늘 내가 여리다고 말하며 걱정을 했다. 남에게 너무 의지하며 살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이 감정적이고 약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새벽의 나는 정말 어떻게 그렇게까지 차분하고 강했는지 모르겠다.


이성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생존본능의 힘이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20대의 나의 모습이었다면,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나라면 친구들이나 결혼을 한 언니들에게 울면서 이런 걸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며 아무것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을 것 같은데 오히려 나는 차분히 그가 잠에서 깨기 전에 증거들을 다 모았고, 검색들을 통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봤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는 걸 검색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싹싹 빌며 스스로 위치추적어플을 깔고 어디갈때마다 영상통화를 하며 절대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남자를 믿으며 살다 아이를 갖고 다시 성매매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며 아이 없을 때 알게 된걸 천운이라 생각하고 얼른 헤어지라는 글도 읽었다.


나는 다행히 결혼한 지 1년 반정도밖에 안 되었고 결혼식은 했지만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에 아이까지 없어 경험자들 말에 따르면 ‘천운’에 속했고, 너무나 당연히 헤어지는 게 맞는 것이었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닌데도 나는 그냥 헤어짐을 선택하는 게 맞다는 게 판단이 내려졌고 이제 그러면 내가 첫 번째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속상함을 털어놓기보다는, 인터넷상에서의 조언들을 찾아보는 것보다는, 정말 현실적이고 정확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변호사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새벽에 그가 잠든 사이에 찾을 수 있는 증거들을 모두 찾고 잠을 청하러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고 정말 에스프레소 5샷을 한 번에 들이켠 것처럼 각성된 상태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정신 차려, 지금 이렇게 안 자고 내일 변호사를 만나면 변호사가 하는 논리적인 말들 알아듣지도 못하고 판단력도 흐려질 거야 그러니까 지금 자야 해.

한 시간이라도 자야 해.

심호흡을 하며 나 자신을 다독이며 잠을 청했다.

이전 01화 #1.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