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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찾아온 위기

이곳에서의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

by 도쿄키무상 Feb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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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ジ袋ろはご利用ですか?”

마트 점원이 나에게 물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당황한 얼굴을 내보이자.

평범한 일상의 평화를 담고 있던 그녀의 눈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빛이 돌기 시작한다.


“ポイントカード はお持ちですか?”

또다시 그녀의 말을 받지 못했다.

“はい”


그 시절부터 일본에서의 나는 당황할 때 버릇처럼 하는 말이 생겼다.

“はい” 와 "大丈夫です"

그저 ‘네‘라는 대답과 ’ 괜찮습니다 ‘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위 질문은 포인트 카드, 즉 마트와 관련된 포인트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나는 ‘네’라는 대답과 함께 원래라면 포인트 카드를 내밀었어야 했던 상황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다시 그녀의 눈빛은 내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나는 집 근처 마트에서조차 맘 편히 장을 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저 비닐봉지가 필요한지, 포인트 적립은 할 건지 물어보는 말에도 겁을 먹었다.


집이라고 나의 쉼터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새롭게 이주하게 된 나는 이런저런 우편물과 주문한 택배를 받아야만 했다.

그때마다 들리지 않는 일본어와 어느새 두려움으로 가득 찬 감정들에 괴로워했다.


배는 고프니 밥은 먹어야 하고, 밥을 먹으려면 어디든 가야만 한다.

새롭게 이사한 곳에서 필요한 것들은 넘쳐난다. 집마저 등을 떠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에 OTT 사이트에서 히키코모리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고작 본인의 방 문턱을 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에 대한 다큐.

나의 생각은 불필요한 혐오를 덜었을 뿐, 솔직히 공감하지 못했었다. 아니 어쩌면 더 고약한 마음과 편견으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그들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의 나는 일본에 도착한 지 벌써 3주를 넘긴 시점이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허황된 꿈은 돛단배를 타고 시작한 항해와도 같았다.

나는 작고 불안정한 배에서 끊임없이 허기지고, 잔인하게 좌절했다.


내가 꿈꾸던 생활은 기억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그저 나는 온 힘을 다해 좌절하고 지쳐 배가 고파지면 편의점을 가는 게 전부였다.


도쿄에 도착 후 한 달이 되는 시점에 나의 몸뚱이는 지독하리만큼 악취를 풍겨오는 부정을 이겨내지 못했다.

평소 혈압이 있던 내게 문제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어지럽고, 심장소리가 내 귀에 들릴 지경까지 왔다.

두통과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를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고 말았다.


병원에 가야만 했다.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할 수 없다고 외치는 상황.

고작 동네 마트에 가는 것이 두려워 이 지경이 되어버린 내가.

병원을 간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상상해 봤다.

부정 섞인 기나긴 상상은 더더욱 스스로를 가두는 지경까지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쫓아 구글링 해보는 게 전부.

‘고혈압’ ‘뇌졸중’ ‘심부전증’

검색해서 나오는 단어들은 겁먹기 딱 좋은 녀석들이다.

내가 정말 이런 병에 걸린 걸까?라는 근본적인 의심과 함께,

실은 두려움에 떨며 최선을 다한 부정을 해본다.


그렇게 몸에 이상이 생기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애써 스스로를 자위하며 불안에 떨었다.

이유를 다른 데에서 찾기 바빴달까.

‘시력이 달라졌나? 안경을 끼면 더 어지러운 것 같네’

‘아 편의점 음식을 너무 먹어서 속이 안 좋은가 보다’와 같은 부끄러운 핑계를 찾기 바빴다.


몸은 더욱 악화되어 갔고, 결국은 한국행 티켓을 알아보기로 했다.

다만 병원만 다녀와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어느 도시에 가서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를 생각한다.

‘김포에 도착한 뒤, 근처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내가 어떤 이유인지만 알고 돌아오는 거야’라는 생각을 한 순간.


‘돌아온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이곳으로 다시 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순간에 정신이 들었다. 도망 칠 대상 없이 숨어 지내던 한 달이라는 시간이 떠올랐다.


먹고 싶었던 것들이 한가득이었는데, 가보고 싶었던 식당을 열심히 저장해 뒀는데,

나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뭘 했던 걸까.


이날에서야 나는 나의 문제들을 직면하기로 마음먹는다.


다음날 홀로 일본 병원을 찾아간다.

일본에서 첫 진료이자 마지막 진료의 순간이다.


구글 지도에서 병원을 찾아서 방문했다.

많은 병원들 중에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평소 ‘이석증’이라는 병에 종종 걸려 고생했기에, 당시에도 이석증을 먼저 의심했기 때문이다.

이석증의 대표증상이 어지러움증과 그로 인한 구역질이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시청에서 발급받은 건강보험증과 진료수첩을 내밀었다.

접수하는 간호사분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지만,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었지만, 현실은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갔다.


예약을 하지 않아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은 이후에 앉아서 한참을 대기했다.

일본의 병원은 9할 이상이 예약제로 운영되기에 예약 없이 방문하게 되면 매우 긴 시간을 소비하는 곳이다.

나 역시 2시간의 기다림 끝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어지러움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간단한 청력검사와 어지러움에 대한 검사를 진행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를 위해 간호사분들이 서툰 영어로 검사를 진행해 주셨다. 그들의 배려에 감사함을 느낀다.


도쿄 변두리 시골 마을과도 같은 키요세, 그곳에 위치한 어르신들로 가득한 이비인후과에 나 같은 녀석이 올 줄 이분들은 아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검사를 받았다. 막상 상황이 닥치고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 더 빨리 왔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맞닥뜨리니 창피함과 후회로 가득했다.


검사 결과를 번역기를 써가며 듣게 되었다. 청력에도 이상이 없고 전체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함께 검사했던 신경검사에서 피로도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며,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그렇게나 이불속에서 누워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진정한 휴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내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내가 서서히 죽어가던 이유는 매번 도망가기 바쁜 나 자신 때문이었다.

그뿐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지인들의 언어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온전히 느끼려고 노력했다. 눈치 빠른 한국인에게 정신만 차리면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동네가 편해져 갔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비슷한 시간에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 집 바로 앞, 집안 창문을 통해서도 보이는 곳에 이자카야가 있다.

중년 부부께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곳인데, 매번 지나치기만 했지 관심 있게 본 적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 이자카야 여 사장님께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 요즘 자주 보이던데 이 근처 살아요?”

라는 말로 나는 해석했다.

“네 바로 앞 빌라에 살고 있습니다”

라는 말로 어색함을 뱉어낸다.


이후에는 어디서 왔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한국에서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냐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사장님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본에 온 뒤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첫 상대가 그녀였다.


이날의 3분 남짓, 짧게 나눈 인사치레와도 같은 대화가 나의 1년을 바꿨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따뜻한 인사 한마디는 나아가는 나의 등을 살포시 밀어주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명확했던 나의 절망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위로로부터 치유되었다.


그렇게 나의 아슬아슬했던 도쿄 생활이 연장되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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