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교엔 홍보대사
公園(こうえん) : 일반적인 공원
御苑(ぎょえん) : 황실 및 귀족의 정원
아사쿠사 갓파바시에 위치한 칼 가게에서 단 이틀을 일하고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
말로만 듣던 일본의 이지매 문화, 그것도 일본인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당하는 따돌림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 오히려 워홀 초반부터 위축되어 있던 나의 마음의 분화구가 되어주는 계기가 된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상심이 자리할 곳은 마음속에 없었고, 나는 곧장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어디서 일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일본에 와 있으니 이곳에서 일을 하며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라 믿었다.
나는 한국인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국적은 일본에서 생활하는데 이점이 많다.
이중 한 가지가 일본에 정착한 한국인들은 정말 많다는 점과 지금 일본은 제 N차 한류열풍 중이라는 것.
이 때문에 한식당에서 일을 먼저 시작해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반적으로 워홀러나 유학생들이 가장 먼저 생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본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절대로 新大久保 [신오오쿠보(일본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한인타운이자 유흥가이다)]에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에게 오오쿠보 バイト(바이토)는 악명이 높다. 외국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는 신오오쿠의 한인타운이 정말 싫었다. 실제로 도쿄에서 지내는 1년간 딱 세 번만 방문했기도 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한식당을 찾아도 신오쿠보에 위치한 곳은 가지 않기로 다짐하고 최대한 다른 동네 위주로 일자리를 알아봤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일을 알아보는 난이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대부분 네이버, 다음 카페나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이용해서 쉽게 구인구직을 할 수 있는 편이기에 굳이 현지 사이트를 어렵게 번역해 가며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어준다.
그렇게 ‘練馬(네리마)’라는 곳에 위치한 한식당 한 군데와 新宿(신주쿠)에 위치한 곳, 총 두 곳의 면접을 봤다.
면접 역시 한국인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두 곳에서 면접을 끝내고는 선택의 시간이 왔다.
솔직히 네리마 쪽이 느낌이 훨씬 좋았지만, 저녁에만 운영하는 이자카야였기에 일하는 시간이 비교적 짧았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나로서는 그만큼 페이가 적어지기는 부분이 아쉬웠기에 점심 저녁 장사를 모두 진행하는 신주쿠 쪽 한식당을 선택했다.
이곳 사장님 또한 내가 걱정하던 전형적인 한국인 아저씨는 아닌 느낌을 받았다. 물론 첫인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신주쿠에 자리한 한식당에서 도쿄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나긴 두 달 반의 듀토리얼이 끝이 난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일한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차선책조차 아닌 최선의, 최상의 선택.
일했던 한식당은 신주쿠 메인가가 아닌 ‘新宿三丁目(신주쿠산쵸메)’ 부근에 있는, 현지인들이 모여 사는 큰 동네이다.
그리고 나의 워홀 생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新宿御苑(신주쿠교엔)’과 매우 근접해 있다.
이 교엔에 대해서 확신에 찬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내가 일본에서 그토록 평화롭고 행복했던 이유는 이 신주쿠 교엔의 영향이 정말 컸다는 것이다.
신주쿠 교엔은 도쿄에서 나의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 되어주었다.
한식당에서 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3시 그리고 2시간가량을 쉬고 다시 오후 5시에 재오픈을 하는 식이다.
나는 이 2시간이 조금 넘는 휴식 시간을 대부분 교엔에서 보내고는 했다.
꽃이 피는 시기의 봄의 교엔, 무척이나 더웠던 교엔의 여름, 쓸쓸함 대신 포근함을 머금고 있는 가을의 교엔, 그리고 따뜻한 겨울의 교엔까지.
그곳에서 보낸 사계절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렇기에 나는 날씨와 상황에 관계없이 무조건 교엔을 찾았다.
폭우가 내리는 날이면 레인부츠를 신고 어떤 소음도 허락되지 않은 고요한 교엔을 방문하고,
강풍이 부는 날이건, 폭염경보가 발령이 나는 날조차 나는 가리지 않았다.
그저 시시각각 바뀌는 교엔의 모습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온전히 눈에 담고 싶었다.
신주쿠 교엔은 신주쿠에 자리한 매우 넓은 부지의 공원이다.
교엔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황실 사람들의 정원이자 온실로 사용된 곳이었는데,
1949년, 비교적 최근에 개방되어 지금은 현지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여행객들에게는 유명 관광명소가 되어주고 있다.
교엔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500엔이라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관리되는 공원 및 정원이 유료입장인 곳이 부지기수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돈을 내고 입장하는 공원이 익숙지 않을 수 있지만 그만큼 관리가 잘 되는 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도쿄에서 지내는 동안 신주쿠 교엔을 120번 이상을 방문했다. 약 10개월 동안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약 6만 엔, 즉 한국돈으로 60만 원을 공원 입장료에 쓴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지만,
교엔은 현지인들의 생활 터전이 되어주는 곳이니 생각만큼 악명 높지는 않다.
이 정도 규모로 관리되는 공원들은 대부분 年パスポート(연간 패스권)를 판매하고 있다.
신주쿠 교엔 역시 1년 연간권을 2천 엔에 구매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신주쿠 주민들은 이 연간권을 구매해서 나처럼 교엔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3월부터 연간권을 구매했다.
연간권을 만들 때, 즉석에서 찍은 바보 같은 사진이 보이는 이 연간권을 나는 아직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닌다.
교엔에서의 시간이 좋았던 이유를 정말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간단한 이유는 눈에 보이는 모습들이 평화롭다는 것.
평소 예민한 성격 탓에 눈을 통해, 그리고 귀를 통해 입력되는 정보들로 쉽게 피로해진다.
하지만 교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교엔에 입장하고 늘 가던 외곽 코스로 접어드는 순간 나는 현실과 단절된 세상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마치 지브리가 주는 현실과 꿈의 경계와 같은 느낌처럼.
계절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내가 매번 앉았던 자리는 달라진다.
벚꽃으로 가득 찼던 시기는 수많은 벚나무 중 홀로 드넓은 곳을 빛내는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피고 누워, 햇볕을 가려주는 분홍 양산으로 삼았다.
뜨겁고, 그리고 따가운 햇빛, 숨이 막히는 습도로 가득 찬 여름의 시기.
작은 숲처럼 나무들이 가득 찬 구역이 있었다. 이는 까마귀와 도마뱀을 비롯해서 온갖 생명들의 터전이기도 한 곳이다.
나는 무더운 여름에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더위를 피하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 까마귀에게 몇 대 맞은 에피소드도 얻게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가 반팔 위에 다양한 셔츠를 걸치게 시작될 때쯤 교엔은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식 정원이라는 구역 벤치에 앉아 이름 모를 나무가 떨구는 내 얼굴보다 큰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즐겼다.
겨울의 도쿄는 생각만큼 춥지 않다.
1년이라는 워홀생활 중에 제대로 눈을 본 것이 단 한 번밖에 없을 정도로 도쿄는 따뜻한 도시이다.
이는 겨울 옷을 입은 교엔을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교엔은 많은 구역으로 나뉜 곳인 넓은 부지다.
꽃시즌이 되면 어느 구역을 가도 사람이 많지만, 당장 개화 시기만 지나면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이 다니는 구역이 자연스레 나눠지고는 한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메인 광장과도 같은 드넓은 잔디밭에 모여든다. 가장 볕이 잘 들고 신주쿠 교엔을 상징하는 타워가 배경으로 걸리는 곳으로.
그리고 온실과 멋진 정자와 다리가 있는, ‘언어의 정원’의 배경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한, ‘일본식 정원’이라는 이름의 구역에도 여행객이 주로 자리한다.
반대로 현지인들은 외곽을 한 바퀴 도는 루트로 산책을 돌고는 한다.
신주쿠 교엔은 3군데의 출입구가 존재한다. 메인 정문인 ‘신주쿠 문’ 그리고 ‘오키도 문’과 ‘센다가야 문’이 있다.
메인 정문은 주로 여행객들이 드라는 출입구이고, 나머지 오키도 문과 센다가야 문을 통해 현지인들이 많이 드나들고는 한다.
이는 이 문 근처에 현지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했다.
이 중에서 어린이 구역이 존재하는데 나는 이 구역을 참으로 사랑했다.
이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과 젊은 커플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을 보는 게 큰 힐링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는 낮잠이 인생에서의 최고의 단잠이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평화로운 장면들과 귀에 꽂힌 에어팟에서 재생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까지.
결코 길지 않았던 나의 인생에서 말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온전한 평화였다.
이곳이 좋았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단편 소설 분량의 페이지가 나올 것이다.
이 외에도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나에게 역시나 최고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시시각각 변하는 교엔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뿐만 아니라 교엔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한국에 있는 소중한 이들과 많은 대화를 했었기도 하다.
영상통화를 통해 교엔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그들에게 일본 생활의 만족감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들에게 나의 평온함과 행복한 소식을 함께 전해주었다. 이 또한 내가 교엔을 사랑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모여 결국은 나를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라,
완벽한 곳이다.
어느 날 교엔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쓰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수도 없이 교엔을 방문했지만, 생각해 보니 매번 혼자만의 시간들이었다는 것.
도쿄를 떠날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것을 인지했을 정도로 이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쓸쓸하다 느껴본 적도 없었다.
이를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혼자였기에 즐거웠다는 것.
온전히 쉬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던 이유가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즐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즐거움을, 또한 보폭을 배려할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
나에게 교엔은 그런 곳이었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도쿄로 여행을 떠난다며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묻는다.
예상대로 나는 가장 먼저 대답하는 곳이 있다.
‘신주쿠 교엔’
사람의 성향마다, 혹은 여행객이라는 신분 때문에 교엔이 지루하고 그저 평범한 공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온전한 평화를 느끼고 싶거든 신주쿠 교엔에서 이를 꼭 찾기를 바란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인생 중 가장 큰 평화를 얻었다.
그리고 순간이지만, 손에 쥔 평화를 갖고서 지금의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도쿄생활뿐만 아니라 귀국 후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큰 기둥과도 같다.
교엔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