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첫걸음
23년 12월 11일 밤 11시.
애써 숨기기 어려운 불안감과 그 사이에 함께 공존하는 설렘이 넘쳐흐른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야간 버스에 탑승하려면 집에서 새벽 4시에는 출발해야만 했다.
밤을 새운다는 것이 수학여행 전 들뜬 마음의 중학생 같아 보일 것만 같은 나는 애써 평온한 척 잠을 청해 본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에게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이다.
오전 3시 10분.
설정해 놓은 알람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소리가 한 음절 채 반복되기 전에 이미 깨어있던 나는 알람을 끈다.
결국 들뜬 마음의 어른이 되어 밤을 새웠다.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미리 도쿄생활을 상상으로 해보고는 했다.
오전 4시.
30kg가 되는 대형 캐리어 하나와 기내용 캐리어 또 하나, 그리고 배낭까지 메고서 집을 나선다.
1년이라는 시간에 필요한 짐은 생각보다 더 많았다.
도쿄까지 긴 여정의 시작인 택시에 탑승한다. 나의 많은 짐들을 보고 질문하는 기사님의 물음에
애써 진정시킨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서는 첫 발걸음부터 누군가의 응원을 받고서 시작한다.
오전 5시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탑승했다.
평소 예민한 성격 탓에 대중교통만 이용하려고 하면 배가 아프고는 했다. 4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인천까지의 여정이 걱정되어서
멀미약을 먹고서 쭈욱 잠들기로 한다. 내 장도 이날만큼은 협조적인 자세로 나를 돕는다.
오전 9시 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년 전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때 다녀온 일본 여행을 마지막으로 다시 찾은 인천공항.
초과할 것을 예상하고 추가 구매한 수화물은 내 예상보다 더한 무게를 자랑하며 뜻밖의 추가 지출을 하게 되었다.
뭐든 새로운 시작에는 그만한 지출이 드는 법이다.
오후 12시 30분
잠들지 못했던 밤으로부터 벌써 12시간이 흘렀다.
스스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한 상태이다.
어쩌면 그런 생각들로 하여금 긴장될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일지 모르겠다.
입국수속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렇게 나의 역사적인 이륙이 시작되었다.
2시간 반 정도 하늘에 있었다. 착륙하고 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는 도쿄의 모습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비를 내리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정확히 날씨요정의 정반대에 위치한 사람.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승무원분들의 인사를 건너 입국수속을 준비한다.
애써 눌러왔던 긴장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워홀로 입국한 나는 첫 입국 때 재류카드라는 명칭의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를 위한 과정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해 봤다. 여러 블로그를 찾아보며, 그들이 알려준 순서와 분위기에 나를 그려보기를 반복했다.
짧은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되어 여권과 비짓재팬 큐알코드를 제시했다.
‘일본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의사소통이 안되면 그때는 또 어떻게 진행할까’라는 생각으로 내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워킹구호리데이?”
일본 특유의 귀여운 영어발음이 나에게 던져졌다.
“はい!(하이)”
내가 입국 심사에서 뱉은 유일한 일본어다.
거대한 나의 걱정 덩어리가 비웃을만한 너무나도 간단하고 싱거운 절차였다.
그렇게 내 손에는 재류카드가 쥐어졌다. 그제야 잔뜩 경직된 몸의 소리가 느껴졌다. 미안하다 나의 육신아.
무거운 짐들을 찾고 나서야 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정확히는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는 알지 못했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의 준비는 해도 해도 모자란 타입의 사람이다. 웃긴 건 이런 나는 무계획형이라는 인식형 P의 인간이다.
중요한 문제들, 즉 나의 신변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상황에 따라 헤쳐나가는 타입이다. 이런 내가 도착 첫날 처음으로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미리 살집을 계약했던 나는 공항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동네 키요세라는 곳으로 향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이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일본여행을 꽤 자주 왔음에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또 과거의 내가 어떻게 했었는지조차 나의 기억에는 없었다.
급하게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스카이라이너’라는 단어들이 가득하다.
‘그래 이걸 타고 가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역무원 분들에게 “스카이라이너?”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때 나는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 일본어가 하나도 안 들리는구나...’ 이 문제에 대한 걱정은 오래 지나지 않아 나를 궁지에 몰게 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스카이라이너 표를 구매하고, 한창 IC칩 부족 현상으로 인해 교통카드 발급이 되지 않았던 시기의 일본이라, 일일이 역마다 종이 티켓을 구매했다.
17시 반
입국심사와 스카이라이너에서 시간을 제법 지체한 나는 악명 높은 도쿄 퇴근길 전철을 탑승하게 된다. 엄청난 양의 짐을 들고서 말이다.
닛포리라는 역까지는 스카이라이너 덕분에 편하게 움직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닛포리에서 이케부쿠로로 향하는 JR선은 일본에서 가장 큰 운행선중 하나이다.
이민짐으로 보이는 짐을 들고 있는 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전철에 용기 있게 올라타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 둘... 셋... 세 개의 전철을 보내고서는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역에 서서 네 번째 전철을 맞이하는 순간 뒤에 계신 아저씨의 도움으로 힘겹게 탑승에 성공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분이다.
이케부쿠로역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당시의 나는 이게 반갑지 않은 순간이기도 했다. 빠르게 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일찍 나에게 다음 상황이 주어진다는 의미이기에.
이케부쿠로역은 굉장히 큰 역이다.
도쿄에서는 전철역에서 길을 잃기가 쉽다는 말이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지하철 이정표만 잘 따라가면 되지 길까지 잃을 정도인가?라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 한국인에 나 역시 포함된다.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편하게 오고 가는 곳이지만, 첫날의 이케부쿠로 역은 나에게 지옥 그 자체였다.
‘세이부이케부쿠로 선’ 내가 탑승해야 할, 나를 우리 동네까지 데려다줄 전철의 이름이다.
‘후쿠토신선, JR선 야마노테선, JS 쇼난신주쿠라인, JA 사이쿄선, 유라쿠초선, 마루노우치선, 토부 토조선’
이 이름만 들어도 복잡한 선들이 모두 이케부쿠로 역을 통과하는 라인들이다. 나는 이 미로 같은 이케부쿠로에서 필사적으로 나의 전철을 찾아 탑승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마주하는 나의 동네 키요세로 향한다.
길고 긴 여정 끝에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그 이름은 키요세시.
도쿄에는 23 구라는 주요 도시들이 존재한다. 유명한 신주쿠, 시부야구를 비롯해서 23개의 구역이 도쿄의 중심지로 불린다.
이 지역들은 중심부인만큼 인프라가 잘 형성되어 있고, 교통편도 편리하다. 하지만 그만큼 비싼 야칭(월세)을 감당해야 했기에 나는 의도적으로 이 23 구역을 배제하고 집을 알아봤다.
내가 사는 곳 키요세의 주소는 ‘도쿄도 키요세시’이다. 도쿄에서 시가 붙는 지역은 정말 작은 지역을 뜻한다. 주소만 도쿄일 뿐 사실상 사이타마에 가까운 지역이다.
키요세의 첫인상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기까지의 여정이 꽤나 고됐기 때문이다.
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5분이 소요된다. 그 길이 처음에는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배가 너무 고팠다. 저가항공을 이용한터라 기내식은 따로 없었고, 먹은 음식이라고는 이륙 전 공항에서 먹은 설렁탕이 전부였다.
밤 8시가 되어서 도착했기에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짐을 빠르게 집에 두고 다시 나오기로 결심했다.
식당을 찾는 것조차 나에게는 큰 일이었다. 간판은 뜻 모를 일본어로 가득했고, 나에게 주어진 다양한 선택권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역에서 보이는 식당 중에 가장 체인점스럽지 않은 개인 식당으로 들어선다. 저녁을 먹기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동네 할아버지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소바를 파는 식당이지만, 여느 일본 식당처럼 다양한 메뉴가 있는 곳. 고민 끝에 나는 上天丼(튀김덮밥 상)과 カーレうどん(카레우동)을 주문한다.
메뉴가 나오기 전 생맥주를 한잔을 시켰다. 그 한 모금에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후 음식들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과장된 맛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이 한입을 위한 긴 여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역시나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고 싶지 않지만, 역사적인 도쿄라이프 시작의 첫 끼니였다. 정말 달고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순식간에 음식을 다 먹고서는 계산을 하기 위해 일어섰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첫날의 나는 ‘계산해 주세요’라는 말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계산해 주세요는 お会計おねがいします(오카이케오네가이시마스)라고 말하면 된다.)
지갑에서 천 엔짜리를 한 장 한 장 꺼내는데, 주인아주머니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다.
“한국분이세요?”
이 말이 이렇게나 반가운 말인지 나는 그날 유일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렇다 주인아주머니는 한국분이셨다.
평소 이런류의 대화를 반기지 않는 나지만, 긴 긴장 속 여정의 끝에 나는 이미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다소 흥분한 나머지 이런저런 말들을 빠르게 뱉어냈다. 오늘부터 워킹홀리데이가 시작되었다는 둥, 음식이 너무 맛있다는 등의 말들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실 나의 일방적인 질문세례가 쏟아졌다.
수많은 나의 질문의 답 끝에 아주머니께서 여쭤봐주신다.
“왜 키요세까지 오셨어요?”
그때는 아주머니가 전하는 이 말의 뜻을 잘 몰랐지만, 살아보니 키요세는 정말 일본 현지분들이 사는 도쿄 외곽의 작은 마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마을 키요세를 사랑했다.
첫날, 당시에는 머쓱한 대답을 건넨 기억이 난다.
“저도 모르겠네요”
참 신기하게도 이 첫날, 우연히 들른 작은 가게와의 인연은 나의 워홀생활 내내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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