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싸움은 가드올리기부터
조증 의심 소견이 있었지만 약의 용량을 조금 줄이는 것으로 활력도의 완급은 조절됐다. 우울증이란 몸과 마음을 한없이 약하게 만드는 법이다. 기분이 좋은 것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고, 몸이 힘든 것도 실제로 힘든 건지 우울감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기분이 안 좋으면 우울증을, 기분이 좋으면 조증을 스스로 의심한다.
수영과 크라브마가를 동시에 배울 무렵, 활력이 솟구치는 건 여전했지만 한 번씩 충전해 놓은 배터리가 똑 떨어지듯이 체력이 사라지는 순간이 생기기 시작됐다. 마치 35%였던 배터리가 곧 19%가 되더니 5%, 3%까지 빠르게 떨어지다 사그라들 듯이. 체력이 남아있다고 느끼다가도 금세 방전되어 쓰러질 듯 피곤해졌다. 그런 순간은 점점 자주 찾아왔고 ‘너무 피곤하다’는 말도 달고 살게 되었다.
운동을 더 해서 체력을 키워야 하나, 어떤 영양제를 더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친구가 용하다는 PT숍을 추천해주었다. 일반적인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좀 시켜보고 인바디를 재 본 뒤 체력을 진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누워서 관절과 근육을 만져주면서 몸을 풀어주는 말그대로 나에게는 용한 곳이었다. 내가 느끼기로는 웨이트PT라기 보다는 도수 치료나 추나에 가까울 듯 했다.
운동을 하는 데도 체력이 자꾸만 떨어지고 가끔씩 너무 피곤하다는 게 내 고민이었고 선생님은 진단에 들어갔다. 뒷목과 어깨, 팔, 다리 무릎 등을 만져보고 움직이게 하던 선생님의 처방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옐로카드를 내밀었다.
크라브마가에 수영에 연달아 운동만 하던 내 몸은 마치 이완을 모르는 것처럼 잔뜩 수축해 있었던 것 같다. 목과 팔, 다리에 힘을 풀어보라고 할 때마다 ‘지금 푼 건데요…?’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무렵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과 발바닥이 아파 루마티스 검사를 받아보기도 할 정도였다. 그렇게 경직된 상태로 하루를 쉴 틈 없이 보내고 저녁 약을 먹은 후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인바디에서는 내가 하루동안 느끼는 압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결과가 나왔다. 12~14kg를 오가던 체지방은 9.9kg까지 쪼그라들었고 많아야 19kg이던 근육은 23kg까지 늘어났다. 좋은 결과였지만 다이어트 목표도 없이 이렇게 몸이 바뀔 정도로 운동으로 몰아갔다는 것이 놀라웠다. 근육을 펌핑질하면서 지방은 앗아가니 몸이 피곤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당시 입맛이 없어 밥을 잘 먹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보통 PT는 운동을 더하길 권하는데 운동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하면 안 된다는 처방이 나오니 멍 해졌다. 힐링과 재활을 한다더니. 또 다른 방법으로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자책이 더해졌다.
옐로벨트를 딸 때까지 매일 하루 두 번이라도 나오겠다고 결심했던 크라브마가를 가는 시간을 조금 줄여보기로 했다. 덩달아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며 수영도 잠시 쉬게 되었다. 완급조절을 하며 조금의 심심함을 감히 가져보는 것.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도 우울해지지 않는 것이 새로운 내 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