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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맥스

by 이원소

크리스마스 오후, 이제 축제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다. 뒤늦게 크리스마스를 즐겨보려는 이들만 주섬주섬 나무를 장식하고 있다. 제임스에게는 그것조차 사치였다. 수주 사에서 자재 납기를 맞추지 못하겠다는 통보를 어제 받았으니, 어떻게든 연말까지 납기를 맞출 수 있는 거래처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는 새벽같이 출근해 '오늘은 휴일이어서 문을 닫은 회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결국 제임스는 포기하고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에게 내일을 약속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언제 샀는지 모를 꼬깃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적혀있었다. 제임스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 문장을 계속 응시했다.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적도 없고, 그녀가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을 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 통의 전화를 모두 거부하고, "늦었어. 더 이상 연락하지 마, 이혼 서류는 변호사를 통해서 전달할게"라고 짤막한 문자 한 통을 남겼다.


제임스는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양복을 꺼내놓고,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다음 날 오전 6시 30분, 알람시계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울렸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그리고 그걸 판단할 수 있다는 오만한 당신의 태도가 정당한 것인지... 그는 저의 오후를 통째로 앗아갔어요. 그가 흘린 커피는 제 치마와 스타킹, 신발까지 적셨는걸요. 그래놓고 얼마나 당당히 '죄송합니다.'를 말하던지,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었어요. 그래놓고 그는 저를 지하철에서 마주쳤을 때, 알아보지도 못했어요. 그때 진심 어린 사과라도 받았더라면, 저는 지금 이곳에 없을 거예요.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그 남자인데, 어째서 제가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거죠? 이 것은 살인미수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정당방위인걸요, 판사님 당신도 나와 같은 하루를 보냈더라면 무슨 일이든 저질렀을 수 있어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이에요. 모두가 그럴 수도 있는데, 그것들에 대해 죗값을 매기는 것이 옳나요? 정의롭나요? 그 죗값은 대체 누가 책정하는 것인가요? 당신이? 펜대를 잡은 의원들이? 저는 사과하지 않겠어요.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제발 누가 저를 설득해 주세요.



너를 위해 짬뽕을 만들어 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그 대신 나는 너에게 군만두와 탕수육을 튀겨주었지. 너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 정말 맛있게 먹더라. 그걸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 그런 너를 위해 네 코의 족쇄를 더 옥죄일 수 있겠지만, 그 대신 나는 그 족쇄를 풀어줄까 해. 그럼 너는 나의 마음을 알고 정말 행복해하겠지. 그런 너를 보면 나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



아저씨가 정말로 죽으려는 이유가 그것뿐인가요? 제가 듣기에는 너무 허술한 변명 같아요. 그냥 죽음을 원하는데, 이유를 갖다 붙인 것 같아요. 어른들은 자주 그러잖아요? 무언가를 그냥 원하면서, 거기에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거죠. 마치 그냥 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저는 포도사탕을 좋아해요. 이유는 없어요. 거기서 무슨 맛이 나서, 그것의 색깔이 어때서 좋은 게 아니에요. 포도사탕이 좋기 때문에 그 달콤한 맛과 보라색 색깔도 좋은 거예요. 아저씨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저씨는 계속해서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저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사탕의 맛이나 색깔과 같아요. 아저씨는 그냥 포도사탕이 먹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 변명은 그만하고, 이 걸 생각해 봐요. 아저씨의 딸이 계속해서 포도사탕을 입에 넣으려고 할 때, 아저씨는 그러지 못하도록 할 거예요. 왜일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페로몬의 향을 맡지 못하게 되었어. 이게 그들이 말하는 원죄의 대가인가 봐.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솔직하지도 못하면서 거짓말을 당당하게 하지도 못하게 되었어. 죄의 굴레에 갇힌 거지. 마침내 그들은 모두 미치광이가 되어가고 있어. 우습게도, 그 사실을 본인들만 몰라. 지구의 주인이라는 오만한 마음, 모든 생명을 휘하에 두었다는 착각 속에서, 그들은 미치광이가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매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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