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들지 않는다. 약도 별 소용이 없다. 큰 불만은 없다. 아침에 좀 더 힘들지만 그만큼 밤에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다. 생각이 나기도 하고, 내가 직접 생각을 파내어 정리하기도 한다. 창의적인 생각은 밤에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밤의 생각은 약간 어둡기 마련이다.
나의 밤이 길다고 투정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보다 긴 밤을 보내는 이들을 나는 생각한다.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들로 뒤범벅되어 육신의 고통마저 초월한 정신적 피폐함을 겪고있을 이들을 나는 생각한다. 그들과 나는 한 순간 연결되어 내 모든 평화는 무너진다.
유튜브에서, "우주는 균일하며 어디서 보아도 동일하다"는 가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영상을 보았다. 최근 관측에 따르면, 비교적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시간의 우주는 중력이 강한 쪽으로 물질이 몰려 더이상 균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우주는 균일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 사이에 중심이 생기고 그 중심들 사이에 길이 생긴다. 유튜브 영상의 영상자료는, 심장이 여러 개 달린 거미줄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고장나지 않았다. 단지 부품이 좀 헐거워진 정도다. 알맞은 드라이버를 넣어 적당한 힘으로 조여주면 나는 예전과 같은 수행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수행능력... 무엇을 하는 수행능력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그 어느때보다 나보다 긴 밤을 보내는 이들과 연결되어있음을 느낀다. 그들의 신음소리 한자락 한자락이 내 가슴을 후벼판다.
내 머릿속 나사를 다시 조여버리면, 나는 예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다시 조일 의향도 있다. 명분도 생겼다. 나 자신에 대한 명분, 그것은 사랑이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조차 질투하거나, 또는 묘한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의 감정이 보인다. 내 눈은 그런 것을 보는 데에 특화되어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내 머리는 그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저 그 감정들에 치여 상처입고, 그러기 싫어서 더 두꺼운 옷을 여매 입는, 나는 그런 꼴이다.
내 편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기댈 수 있을만큼 나를 아껴주는 나무에, 나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물을 줄 수 있는 기분이다. 나무에 상처라도 난다면 나는 아주 슬플 거야. 하지만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고 안달복달 하는 시간이 더 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나무가 되려 한다. 나무가 되어 그 사람을 어린아이로 되돌리는 것이다. 내 곁에 기대어 쉴 수 있게,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게, 그 촉감과 소리에 나는 마침내 행복할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