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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om P Nov 13. 2024

착취하려는 본성이 없는 자는 드물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서로를 착취하려 한다. 이는 인간 사회의 원초적 동력이며, 각 개인이 살아가는 데 있어 깊이 내재된 본능이다. 우리는 흔히 ‘이타심’이나 ‘공존’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착취는 단순히 물리적 억압을 넘어서, 무형의 관계와 권력 구조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타인을 이용하고 그에게서 이득을 취하려는 성향은 인간 사회의 생존 본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누구도 이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착취의 구조를 깨부수고 착취자를 끌어내린다고 해서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새로운 권력을 쥔 자는 금세 착취자가 되고 만다. 권력과 지위를 얻는 순간, 그 자리는 곧바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타인을 이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동반한다. 권력을 차지한 이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 몰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착취의 행위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순환 속에서 착취는 하나의 굴레가 되어, 권력을 잡는 이가 누구이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권력을 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이익 관계는 필연적으로 착취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착취는 본능적이며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중단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는 결국 경쟁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이러한 경쟁 속에서 타인을 이용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는다. 누군가를 앞서기 위해,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를 이용한다. 때로는 착취의 행위를 비판하며 이를 억제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결국 본성을 완전히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착취는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원리의 일부이자,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 본성이 지속되는 한, 착취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가끔씩 착취가 본성에 어긋난 사람들이 태어난다. 이들은 남을 이용하거나 지배하려는 욕망이 거의 없으며, 타인의 이익을 자신의 것보다 우선시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경쟁에서 밀려나 도태되기 쉽다. 착취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이들은 자신의 본성을 따르려는 의지로 인해 외롭고 고립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주류 사회는 이들에게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을 방해물로 여긴다. 착취를 거부하는 성향은 주류 사회의 흐름과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이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취가 본성에 어긋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타인의 착취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본성을 지켜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착취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순수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스스로의 특별함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점, 착취가 아닌 본성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은 외롭지만, 그 길이야말로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착취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착취와 무관한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자기 존재를 순수한 형태로 유지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자각이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타인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스스로의 본성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착취의 구조를 넘어선 존재로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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