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감성과 아이의 낙서 사이
'식탁'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예민 레이더가 작동한다. '그 식탁'이라 하면, 내가 몇 달을 고민해 바꾼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요즘 내 애장품 1순위다. 원래 나는 원목 가구의 감성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 우리 집 가구에는 감성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결혼할 때 구입한, 나뭇결이 예뻤던 원목 침대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날카로운 무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 날렵한 선이 아름다웠던 침대 프레임은 짙은 갈색 '모서리 보호대'로 꽁꽁 싸매지며 감성을 잃었다.
'이 소파에 앉아 책도 보고, 아이 안고 우아하게 수유도 하겠지'라는 기대는, 사인펜과 매직, 물장난 앞에서 무너졌다. 소파는 제 기능을 읽은 지 오래다. 그렇게 내가 아끼던 가구들은 하나둘씩 망가졌고, '애 낳으면 비싼 가구 다 소용없다고 했잖아~" 라던 친정 엄마의 말씀이 귓가를 맴돌았다.
낙서로 가득했던 원목 식탁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이체어에 반복적으로 부딪혀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고, 볼펜과 매직 낙서, 단호박 이유식 국물이 스며든 그 식탁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아이도 이제 좀 컸겠다 싶어, 몇 달을 고민 끝에 드디어 바꿨다. 원목과 포세린 상판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6인용 식탁으로.
3인 가족이지만, 때로는 아이의 노는 모습을 보며 업무 노트북과 책을 펼쳐두기도 좋고, 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좁은 식탁에 옹기종기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큰맘 먹고 바꾼 그 식탁.
식탁이 처음 도착한 날, 나는 닦고 또 닦으며 아이에게 신신당부했다.
"나나야, 식탁에는 볼펜, 사인펜, 매직, 크레파스 등등등...(아이가 좋아하는 필기도구는 전부 언급했다) 아무것도 가지고 오면 안 돼. 여기에 그으면 안 되는 거야."
뒤늦게 새 식탁을 보신 친정 엄마는 조심스레 한 말씀 덧붙이셨다.
"나나 좀 더 크고 바꾸는 게 낫지 않았겠니~"
"아냐 엄마~ 이제 좀 커서 알아들어. 그렇지, 5살 언니야?"
하지만 내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가 식탁에 볼펜 가지고 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여기에 낙서하면 어떻게 해~ 안 지워지잖아~"
"엄마, 내가 볼펜 가지고 온 거 아니야. 여기에 있었어"
(아,, 그 볼펜은 내가 선물 받아서 귀엽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 장식이 있는 볼펜이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그 걸 그냥 지나칠 리 없었는데... 내 실수다.)
아이는 자신의 해명을 이어갔다.
아이는 인어공주가 그려진 자신의 테이블 매트로 볼펜 자국을 쓰윽 가리며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순간, '풋'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구나.. 가리면 안 보이는 거구나. 보기 싫은 건 그냥 안 보면 되는 거구나.'
'그래, 안 보이면 그만이지. 뭐든'
나도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