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시선이 바뀌어간다.
엄마니까, 우리는 서로 누군가의 엄마니까.
“엄마는 모르는 엄마를 아무 이유 없이 선뜻 도울 수 있는 신기한 사람들이니까.”
– 출처.『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183p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양쪽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어떤 둔탁한 소리가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순간, 눈앞에 유모차가 고꾸라져 있었다. 바닥에는 마라탕 봉지와 일회용 용기들이 흩어져 있었고, 신호등의 초록불은 깜빡이며 위태롭게 점멸하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뛰어갔다.
입에서 저절로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유모차에는 7~8개월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매달려 울고 있었다. 엄마가 안전벨트를 단단히 채운 덕분에 아이는 바닥에 부딪히지 않고 공중에 간신히 떠 있었다. 유모차 손잡이에 걸린 무거운 장바구니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장을 봐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상황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모태신앙인 나는 평소엔 친정 부모님이 오실 때만 성당에 가지만, 이런 순간엔 본능처럼 하느님을 찾게 된다. 한 여성이 더 달려왔다. 나는 아이 엄마와 함께 유모차를 일으켰고, 그녀는 마라탕 용기들을 차근차근 주워 담았다.
짐작이 갔다.
그 시절의 나처럼, 그녀의 얼굴엔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고, 머리카락은 대충 묶인 채 헝클어져 있었다. 그 시기의 독박육아란, 매운 마라탕 하나 시켜 먹는 일조차 큰 결심이 필요한 법이다. 나 역시 육아에 지쳐 있던 어느 날,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 배달 앱을 열었다가, 최소 주문 금액 앞에서 수십 번을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나가서 사 올까, 그냥 아무거나 대충 먹을까…’
그 엄마의 사정이 어땠든, 아이가 무사한 것이 그저 감사했다. 다행히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경적을 울리는 차량은 없었다. 마라탕 봉지를 정리하던 여성은 “일단 길부터 건너요!”라며 우리를 이끌었다.
무사히 길을 건넌 뒤, 아이 엄마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거푸 말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송하긴요. 아기가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에요.”
웃으며 대답했지만,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다.
진심이었다. 아이가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 문득 떠오른 장면들이 있다.
아이를 안고 외출하던 신생아 시절, 어디서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에게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적이 많았다. '배고픈 거 아니냐', '기저귀 갈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제발 그냥 지나가 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 역시 고단했던 자신의 시절이 떠올라 차마 외면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고, 어느새 나도 누군가를 향해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때의 나처럼 누군가가 아슬아슬하게 육아의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면 나는 이제 육아동지들을 지켜보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어주고 싶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비난처럼 느껴졌던 그 시선이
사실은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는 걸,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선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