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준 배움의 힘
이번 주 내내 A형 독감으로 유치원 등원도 못 하고 집에서만 지내던 아이는 아직 제 컨디션을 온전히 찾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평소 주말과는 다르게 밖에 나가려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 머무르다 보니 TV 시청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핑계를 대자면,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의 ‘열’은 언제나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다. 특히 연말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요즘… 그냥 감기도 아니고 하필 독감이라니. 남편과 나는 하루씩 연차를 내 아이를 돌보면서도 집에서는 업무를 처리해야 했고, 결국 일흔이 넘은 조부모님께 SOS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TV는 보여주지 마세요”라고 엄격히 말할 여유도, 자신도 없었다. 돌봄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아이가 TV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래, 이제는 바람을 좀 쐬어야 할 때구나.’
“나도 엄마랑 같이 가고 싶어.”
“엄마가 가는 곳에서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데 괜찮겠어?”
“거기는 말을 안 하고 눈으로 책만 봐야 하는 곳이야?”
“응…”
“그럼 안 갈래.”
휴—. 다행히 아이는 금세 포기했고, 그렇게 한 시간 동안 폰은 울리지 않았다.
관련 서적들을 골라 대출할 책을 정리하려던 찰나, 전화가 울렸다. 아이가 배고프단다.
엄마 귀에 ‘배고파’라는 말만큼 마음을 급하게 만드는 말이 또 있을까. 서둘러 짐을 챙겨 어린이 서가로 향했다.
저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내 아이. 작은 책상에 앉아 그림책에 얼굴을 푸욱 파묻고 있다. 요즘 한글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이제 혼자 소리를 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천천히, 또박또박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작은 소중한 내 아이의 목소리. 책에 푹 빠져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 순간 문득,
‘아… 이 모든 순간들이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그리고 결국 가장 좋은 교육은 무언가를 억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선물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책 읽어!”라는 말보다, 책을 읽고 싶어지는 공간에 아이를 놓아두는 것.
그게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