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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사는 집

by 소금라떼



"1층은 빼고 보여주세요."


이사를 결심하고 부동산에 연락하면 늘 가장 먼저 했던 말.
그랬던 내가, 지금은 1층에 살고 있다.


1층살이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우리가 살던 집은 저 멀리까지 내려다보이는 21층 ‘건물 뷰’였다. 지대가 높아 고소공포증이 있는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아찔하다고 하셨다. 그랬던 나에게 지금의 집은 자연을 느끼는 삶을, 아이에게는 발걸음의 자유를 선물해 주었다.


이젠 다음 계절이 기다려진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창밖 풍경은 또 어떨까? 그리고 그 속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계절이 바뀌는 일이, 이제는 설렘으로 다가온다.


2025. 07




내가 1층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무서웠다!"


홀로 캐나다에서 지내던 시절, 처음 머문 홈스테이는 2층집이었지만, 주인은 나에게 1층을 400불에 렌트해 주겠다고 했다. 덥석 계약했고, 곧 후회했다. 외벽은 얇고 담장은 없고, 창밖으로 들리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밤마다 귀에 박혔다. 너무 무서워서 잠들기 전엔 꼭 미드를 틀어놔야 했다. 그렇게 '정원이 있는 1층'에 대한 로망은 산산조각 났다.


그 이유로 나는 1층을 철저히 배제한 채 30군데 넘는 집을 보러 다녔다. 곧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가 있기에 학교와의 거리, 유해시설, 대중교통 접근성까지 하나하나 엑셀에 정리해 가며 따졌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살고 싶은 집이 없었다.






"여긴 1층인데, 아래에 어린이집이 있어요."


그 말을 건넨 부동산 사장님 덕분에 망설이며 본 그 집. 엘리베이터 없이 한 층만 올라가면 되는 것도, 창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인 줄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발걸음이 조절되지 않는 아이에게 "살살 좀 걸어! 아랫집 아저씨 올라온다!" 소리치지 않아도 되는 집.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매력적인 이유였다. 나는 그렇게 1층의 매력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신기하게도 나는 더 이상 1층이 무섭지 않았다. 내 안의 공포가 사라졌다.


하지만 너무 마음을 보였던 걸까. 집을 보여준 다른 부동산 사장님이 주인에게 가격을 올리자고 해서 결국 그 집을 포기해야 했다. 아쉬움은 컸지만, 그 이후 나는 마치 주문에 걸린 듯 1층, 필로티 2층 위주로 집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초록빛 풍경이 액자처럼 걸린 듯한 뷰를 가진 지금의 집을 만났다. 마침내 우리는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나나야, 우리 이사 간다."
"싫어! 유치원 친구들이랑 헤어지잖아!"
"음… 근데 그 집 가면 아랫집 아저씨가 안 올라와."
"그럼 갈래!"


그렇게 우린 아랫집 아저씨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새벽 6시, 백일 된 아이와 함께 자고 있는데 인터폰을 걸어 "시끄럽다"고 소리쳤던 아랫집 아저씨.
남편이 출장에 간 2주 동안 친정에 갔다 온 사이 '알람 소리와 진동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에티켓 좀 지키라고 현관문에 편지를 붙여 놓은 아랫집 아저씨.
윗집이 이사 오는 날, 사다리차 소리에 대체 무슨 일이냐며 소리치던 아랫집 아저씨.
엘리베이터가 20층에 멈추면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그 아랫집 아저씨...


이제는 그런 걱정 없이, 아랫집 걱정 없는 삶이 시작됐다. 아저씨가 출근한 사이 울던 강아지의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물론 1층이라고 해서 마음껏 뛰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소음은 위로도 전해지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살살 걸어!" 하고 외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1층 집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아이와 함께 사는 집, 아이를 위한 집


1층이 무섭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1층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집.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려왔기에 더 넓고 자유로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에서 아이가 자유롭게 공간을 오가고, 소리 내어 웃고, 그 안에서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란다.





사진: UnsplashD. Jameson 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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