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처음으로 '외로움'을 말한 날
퇴근 길, 마음이 분주하다.
어제 펑펑 내린 눈 때문에 길 곳곳에 살얼음이 얼었다. 조심조심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고, 습관처럼 네비게이션의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했다.
‘아이고, 큰일이네.’
도착 예정 시간보다 10분이 늦다. 이대로라면 오늘도 또 아이에게 한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다. 아이는 종일반이다. 그런데 요즘 부쩍 엄마를 기다리는 일이 더 힘든지, 매일 아침 나에게 미션을 준다.
“엄마, 오늘은 몇 시까지 올 수 있어?”
“5시 20분까지는 올 수 있지? 더 빨리 올 수는 없어?”
아이를 위해 근무 시간을 조정했다. 예전보다 훨씬 빨리 아이를 만날 수 있어 나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친한 친구가 자기보다 먼저 가는 날이면, 아이는 종종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기다린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하필이면 유치원 주차장도 꽉 차 있었다. 자리를 찾다 결국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 두고 후다닥 달려갔다.
아이 는 이미 현관 옆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휴… 추운데 왜 여기까지 나와서 있을까.’
마음이 아려왔다.
“나나야~ 엄마 오셨다!”
선생님의 목소리보다 아이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온다.
“오늘은 윤서가 먼저 가서, 나나가 혼자 놀기가 싫었나 봐요.”
아이의 마음을 애써 대신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
차를 빨리 빼야 한다는 생각과, 이 추운 날 현관 앞까지 나와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겹쳐지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이는 신발도 다 신기 전에 재촉해 차에 태웠다. 겨우 출발한 뒤, 숨을 고르고 아이에게 물었다.
"추운데 왜 현관 앞까지 나와서 엄마 기다렸어?"
"오늘 윤서도 일찍 가고, 다른 친구들은 체육 수업 들으러 가서 종일반에 나 혼자 있었어."
"그랬구나. 그런데 나나야, 그럴 땐 혼자 놀아도 괜찮아."
"싫어! 나는 혼자 노는 건 외로워."
'외롭다고? 벌써 이런 표현을 쓴다고? 이 말의 의미를 알고 하는 걸까. 어디서 들었을까?'
아이의 한마디에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애써 태연한 척 다시 물었다.
“그래?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혼자 놀이하는 건 외로워 보여. 외로운 느낌이 들어서 혼자 놀기 싫어.”
아이의 말을 들으며 재작년, 유아 대인관계 지도를 주제로 부모교육을 기획하고 강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땐 나나가 너무 어려서 해당이 안 됐는데 이제는 실전이네.’
순간 호기롭게 생각했다.
‘그래, 오늘은 강사 엄마로서 한 번 실력 발휘해 볼까?’
“그런데 나나야, 우리 놀잇감 중에는 혼자 노는 것도 있고, 같이 노는 것도 있잖아. 그런 것처럼 가끔은 혼자 놀아도 괜찮은 거야.”
“난 싫어!”
“그런데 말이지—”
"엄마, 나 '형님반이 될래요' 노래 틀어줘."
(하아... 듣기 싫구나. 그래, 한 번에 될 리가 없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렇게 집으로 오는 길은 ‘형님반이 될래요’ 동요와 함께 끝이 났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이의 관계를 불안해하기 보다는 늘 응원하는 엄마로 곁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