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센터 3개월씩 두 번, 벌써 6개월째.
곽수현입니다.
오늘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운동을 갔습니다.
원래는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새벽 3시부터 깨어 잠을 설쳤으니
운동을 가면 안 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운동을 못 가게 만드는
그 간사한 뇌의 작용을
거스르지도 않고
무너뜨리지도 않고
그냥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운동을 하러 가야 하는가.'
라며 사고를 하기 시작하면
바로 그 프레임에 들어가는 순간 이미,
저는 왜 운동을 갈 수 없는지
수천수만 가지의 이유를 만들어 내며
동시에 그 이유에 제 스스로가 설득이 되니까요.
요가 매트를 조심히 펴던 중에
전화가 옵니다.
평소 같으면 받지 않을 전화를
굳이 총총걸음 하여
요가 클래스룸을 가로질러 나와 받습니다.
오며 가며 이어지는 대화는
절망적인 순간에 대한 대비책,
주어진 현실에 대한 부정감,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래의 내 삶의 기준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희망 없는,
알 수 없는 혼돈.
그러나 더 깊게 짙어지는
검은 그림자. 그냥 까아만 검정.
전편에서 언급한 이벤트는
매우 사적인 경험이고
(언젠가,
제 맘이 원한다면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그 이벤트가,
단단히 뿌리내린 줄 알았던,
오십이 다되어가는
제 삶의 밑자락을 잔인하게 흔들었습니다.
여러 분들의 존재론적인 도움으로
가까스로 일초씩 이초씩 삶을 흐르게 하면서
삶의 줄기만 간신히 건져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출렁거리는 저를 겨우 잡아 매어 두고
다시 좀 어떻게 잘 살아가려고 하는 와중인데,
요즘 대한민국 사회
정치적인 혼란을 보면서
다시 흔들립니다.
아니, 더 흔들리고 더 어지럽습니다.
사실 저는 매일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한 뉴스는 좋지 않으니
보지 말라니까?'라고도 하십니디.
전 늘
제 시선이 이 세상에
연결되어 있어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속세 사회는
제가 살아가는 장이고 제가 애정하는
모든 것들이 있는 삶이니까요.
어떻게 도망을 칠 수 있나요.
대게는 이런 경우
해외의 사례를 보면서, 위안을 받거나
또 다른 대안을 발견하여 살아가는
기준으로 삼는데
요즘 해외 뉴스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뭐였던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뭐가 될 건가
나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는 가야 한다니
살아갈 힘을 찾아야 하긴 하겠는데
결국 마지막
처절하게 남겨진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운동밖에 없다고
그냥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내가 지금까지 했던 그 모든 것들로는
이제 부족하구나.
그렇다면 다수가 말하는 가장 좋은 것 중에서
내가 언젠가는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시작할 때인가 보다.'
이때 운동이라고 함은
평소 살아가는 생활 움직임을
뜻하지 않습니다.
서로 말하고 듣기 쉽게
스포츠 센터에 등록하여
돈을 내고 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 달 3월 말로
스포츠센터를 3개월씩 2번이나
성실히 잘 다녔습니다.
그리고 다음 3개월어치의 금액을
호기롭게 냈습니다.
이렇게 저는 운동 속에서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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