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관한 이야기
이번에는 물에 관한 이야기다. 난 언제나 거대한 물을 품은 대도시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 육중함과 생명력은 멈추지 않고 가장 발전된 도시 사이를 통과하며 계속 흐른다. 그런 절경은 물이 다 말라버리지 않는 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이다.
2019년 2월, 직접 눈에 담은 홍콩의 모습은 나의 이상과 완벽히 일치했다. 바다와 빌딩 숲의 조화는 한 번도 상상하지도, 보지도 못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첫인상은 그만큼 좋지 않았다. 한국의 겨울과는 너무 다른 덥고 습한 날씨가 숨통을 조였다.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났고,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금방 지쳤다. 그러다 점차 남쪽 도시의 기온과 습도에 적응했을 무렵, 그제야 홍콩의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원한 음료수를 손에 들고 무작정 걸어 다녔던 소호 거리는 한쪽에 깨끗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해 있으면서도 그 반대쪽에는 홍콩의 과거를 간직한 낡고 칙칙한 담벼락과 보도블록이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 보면,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도로 쪽으로 툭 튀어나온 네온사인은 새것처럼 빛나는데 정작 건물은 때가 타고 페인트가 벗겨져 허름한 모습이었다. 거리 곳곳은 형형색색의 건물들로 가득했지만, 습한 공기 때문에 표면이 자꾸 부식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풍경은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소호의 가파른 언덕은 오래 걷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하루종일 소호를 걸었던 그날 처음으로 발톱에 까만 멍이 들었다.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발톱이 신발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 꿀맛 같은 서비스를 경험한 뒤로 틈만 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녔는데, 언덕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며 중간중간 나오는 도로를 위에서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점에 매료되었다. 수많은 간판과 벽화들이 거무죽죽한 건물들을 다채롭게 장식했고, 비좁은 골목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빨간 택시들이 색감을 더했다.
주거 지역을 지날 땐 더 깊숙한 이면을 마주했다. 화려한 도시가 반드시 앓는 고질병, 한정된 땅과 넘치는 인구 밀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그대로 보였다. 익청빌딩은 하나의 예시였다. 관광객들은 생경한 외형에 이끌려 찾아가지만, 그곳은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열악한 환경이다. 완전히 인간적인 분위기에서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기형적인 모습이 외지인들에게는 낭만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서로 정확히 반대에 위치한 두 개의 시점을 잘 알고 있었던 난 주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숨을 죽이고 조용히 사진을 찍으면서 복잡한 감정을 키웠다. 하지만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던 나 또한 어디까지나 보통의 관광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홍콩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바다에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는데, 아무리 더워도 해가 떠 있을 동안에는 계속 빅토리아 하버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넓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저 멀리에 빌딩과 전광판, 고층 아파트들이 보였다. 높은 건물들 사이를 휘돌아 나가느라 더욱 거세진 바닷바람이 열기를 식혀주었다. 그 시원함에 지난 며칠 간의 고통과 짜증이 다 날아갔다. 도심 속의 온실을 꿈꾸는 나에게 이 도시는 완벽해 보였다. 콧속으로 덥고 습한 공기가 아닌,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다. 바다 바로 앞 벤치에 앉아 건너편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나를 숨겨주는 것 같았다. 등 뒤로 관광객이든 현지인이든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중에도 고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홍콩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한 도시의 운명은 곧 바뀔 참이었다.
큰 사건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4개월 뒤인 2019년 6월에 발생했다. 활기와 자유로움으로 붐비던 거리는 어느새 최루탄과 피 냄새로 가득 찼다. 같은 식당의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을 수도 있는 사람들과 더워 지친 내게 시원한 음료를 만들어줬을 수도 있는 사람들, 그리고 길거리에서 혹시 옷깃이라도 스쳤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끔찍한 현장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소식을 접했을 당시는 아직 홍콩에 대한 향수가 생생할 때였기 때문에, 난 사진에 나온 장소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끔찍했다. 낭만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도시와 사람들을 파괴했다. 매일 같이 대량의 사진과 영상이 쏟아졌다. 하지만 렌즈가 포착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시위 참가자들이 자유를 위해 거리로 달려 나갔다.
나는 한때 유토피아를 꿈꿨다. 그 꿈을 실현해 줄 만한 곳으로 처음 생각한 건 미국이었고, 두 번째는 홍콩이었다. 내가 원하는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세계에 가서 나도 그 뜻에 동참하고 역사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 새로운 의미를 쌓아 올리는 현장에 내 글과 이름을 남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험하게 흘러가는 홍콩의 소식들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나는 여전히 외부인이었다. 4개월 전 홍콩에 딱 한 번 가본 관광객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그 사실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걱정하는 것 외에 실제로 행동한 것도 없었다. 어쩌면 아예 그 사건을 모르는 일인 양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난 문득 고향 땅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주변에 그대로 재현되기 전까지는 남의 일인 것처럼 무관심하게 대할 것 같다는 오싹한 예감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러자 너무 무서워졌다. 이것이 내가 유토피아를 대하는 자세인가? 마침내 현실은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유토피아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무겁게 경고했다.
난 몇 차례의 민주화 운동이 있고 난 후 십여 년이 지난 시점의 한국에서 태어났다. 이미 민주화된 국가에서 태어난 나는 무력 충돌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2019년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내가 실감한 시위라고는 많은 인파가 촛불을 들고 평화롭게 광화문을 행진하는 것뿐이었다(그마저도 난 그 현장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불과 4개월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구경하고 여행했던 도시에서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난 그제야 정치적 상황이 주는 공포를 실감했다. 영원불변한 가치는 없고 무력은 너무나도 쉽게 자유를 짓밟을 수 있으며, 무뎌져 있던 긴장감이 다시 살아나 시민들을 덮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세상을 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
고백하자면 난 이 모든 것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지나간 사건을 돌이켜보고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헤아리는 건 한창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땐 불가능하다. 격한 감정이 어느 정도 가시고 그 사건으로부터 빠져나와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가능하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찾아온 건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덕분이었다. 이 책은 오웰이 1936년부터 1937년까지 스페인 내전에 통일 노동자당 소속 의용군으로 참전했을 때의 내용을 담은 르포르타주다. 1935년 말까지만 해도 확고한 결단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던 오웰은 사회주의자로서 파시즘에 대항하는 노동자 세력에 직접 힘을 보태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다가 중대한 작가적 변화를 맞았다.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한 작가를 흔들어놓은 것이다.
스페인 내전과 1936~1937년에 있었던 그 밖의 사건들은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했고, 그 뒤부터 나는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엔 난센스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그런 주제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난 나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전에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어떤 거대한 변화를 이미 마주쳤음이 분명하다. 유토피아라고 여겼던 장소들에 선뜻 돌아갈 수 없는 이유도 내 주변과 전 세계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인종주의와 타국의 민주화 운동이 재난임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난 사건이 남긴 간접적인 충격에 영향을 받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어떤 장소도 안전하지 않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변화의 한 부분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변화를 논할 땐 그것만으로는 근거가 부족하다. 난 지금 단지 ‘글의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들을 잃어버렸을 뿐이고, 그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난 그의 글을 분석하며 전쟁과 작가의 변화에 대해 아주 깊이 파헤치려고 했다. 전에 스테파니와 조앤을 분석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오웰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해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스페인 내전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싶어 확 짜증이 났다. 오웰이 다루는 주제는 내게 너무 벅찬 주제였다. 책에서 파시즘과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정치와 이념에 관한 긴 설명을 읽을 땐 내용이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간신히 파악하고 있었다. 대신 어떤 시대적 상황을 마주한 한 개인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차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날 스쳐갔던 사건들을 하나씩 뜯어보았다. 이번에는 전쟁과 재난이 인간 사회와 깊숙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내가 직접 겪은 재난이 있다면 오웰의 글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재난은 정확히 3년 전에 나와 세상을 동시에 덮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