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관한 이야기
팬데믹은 명백히 시대적 상황이었고, 직접적인 재난이었다. 그 안에서 나 또한 시대적 상황과 직접적인 재난을 마주한 한 개인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재난은 나와는 상관없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내 방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 마침내 나에게까지 도달했다. 상식이 뒤집혔고,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었다. 2018년쯤에 한창 내가 무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 약 3개월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 혼자(혹은 소수)만 겪었던 고립이 지금은 모두가 동시에 체험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전보다 뉴스를 더 자주 챙겨보게 됐고, 정부 발표와 사회 소식을 강박적으로 확인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두려워서 얼른 이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많은 문제가 한데 뭉치면 반드시 악취가 난다. 사람들이 모이고 사건이 터지면 그것이 전쟁이든 재난이든 썩은 냄새가 난다. 오웰은 그 냄새를 빵 부스러기와 배설물, 녹슨 깡통들이 잔뜩 쌓여 썩어가는 진지 안에서 맡았고, 나는 집 안으로 불어오는 바깥바람에서 맡았다. 전염병이 퍼지던 초기에는 확진자 한 명 한 명의 동선이 아주 투명하게 공개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고 누구를 만나는지 전부 지켜보았다. 세계적인 재난을 대하는 몇몇 사람들의 안일한 태도와 행동도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목격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은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는 걸까? 다른 이에 대한 배려나 함께 문제를 극복하려는 마음이 이렇게나 부족할 수 있는 걸까? 난 전에 맡아본 적 없는 악취를 감지했다. 어떤 현상이 확대되고 또 확대되어 내 집 문 앞에 배송된 것처럼 크고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고립의 공포도 날로 커졌다. 자발적인 고립과 타의에 의한 고립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전에는 외출이 하나의 자유로운 선택이었는데, 이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마치 폭이 넓은 죽음의 강을 사이에 둔 머나먼 외부 세계 같았다. 그 강물에 빠져 죽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문밖으로 나서다 보니 밖에 나가는 일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용하고 좁은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언젠가 다시 옛날처럼 외출이 즐거워질 미래를 상상하는 것뿐이었다.
이 아파트에 17년 동안 살면서 맞은편의 아파트를 그렇게나 자주 바라본 적이 없었다. 태양이 어떤 궤도로 움직이며 빛과 그림자의 영역을 분리하는지도 관심이 없었고, 관찰할 생각조차 없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기도 바쁜 시간에 그런 사소한 것들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휘몰아치고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이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과 나의 불안정성을 헤아려야 하는 시점이 왔다. 일단 하루종일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기만 하는 데서 오는 우울감과 비생산성으로부터 탈출해야 했다. 여기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나 자신에게 또 다른 재난을 일으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오웰은 전선에 있었던 150일 동안 적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때 그가 견뎌야 했던 고립은 3년 전에 우리가 겪은 것과 비슷하다. 그는 “짧은 전쟁 기간 동안에 인생의 나머지 기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일출을 보았다”며 “수동적인 물체처럼 그냥 존재하고만 있었다”라고 했다. 그 모습은 내가 텅 빈 눈으로 무력하게 태양의 궤도를 추적했던 모습과 겹친다. 오웰은 그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무익한 시기라 표현했지만, 길고 지루한 시간 속에서 추위와 수면 부족을 견디고 난 뒤 얻은 휴가에서 생각을 바꿨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러니까 나 자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선에서 보낸 처음 서너 달은 내가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무익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일종의 휴지 기간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으며, 아마 앞으로 살게 될 어떤 삶과도 다를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그 시기가 그에게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런 전환점은 갑자기 낯선 환경에 던져진 뒤에 적응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난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 내렸던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의가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 벌써 이전과는 다른 삶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던 나는 돌파구를 찾아 아예 삶을 바꿔버리는 길을 택했다. 이미 엉망이 된 시간 개념 덕분에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지나치게 많이 확보해 놓은 상태였고,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그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때마침 글을 아주 느리게 읽는 버릇이 있는 내게 딱 맞는 일은 독서였다.
부끄럽지만 난 늘 작가를 꿈꿔왔다는 사실에 걸맞지 않게 책을 몇 권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그 수치심을 떨쳐내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술과 심리, 정신분석학, 통계학, 경제학, 고전문학 등 관심사가 옮겨가는 대로 무작정 읽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대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그것이 내가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방 안에서 생산적으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더니 독서에 탄력이 붙어 2020년 한 해에만 태어나고부터 그때까지 읽은 것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난 정말로 “짧은 전쟁 기간 동안에 인생의 나머지 기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일출을 보았다”. 돌이켜보면 고립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세상은 주로 세상의 목소리에 협조하라고 부추긴다. 그런 부추김에 익숙해지면 자기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작게나마 읊조리는 소리도 줄어들면 스스로 내는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난장판인 세상 속 조용한 고립은 내게 주체성을 선물해 주었고, 어떤 면에서는 평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시점부터는 멍하니 창밖을 보는 횟수가 줄었고, 인간의 악취를 맡지도 않았다. 오웰도 고약한 전쟁 상황에서 사람의 힘을 발견했다. 그는 우파 사회주의가 부르주아와 손을 잡고 정권을 장악해 오히려 반혁명주의를 표방할 때도 끝까지 파시즘에 대항했던 노동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 그리고 중요한 일을 툭하면 다음 날로 미루고 이해할 수 없게 비효율적이지만 전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인류애를 간직한 스페인 사람들에게서 다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발견했다.
한편 나는 재난 상황에서 묘한 소속감을 느꼈다. 이 고통은 오로지 나만 겪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겪는 재난임을 알았을 때, 이상하게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사회 안에 속하는 기분이 들었다. 단지 전염병이 일으킨 사태에 휘말린 것만으로도 다시 사회와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 사회의 한 일원이라는 의식이 날 소외감에서 건져 올렸다. 이쯤에서 여러분이 아직 조앤을 잊지 않았다고 믿고 그녀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이해하게 된 더 큰 그림은 집단 경험의 가치”였다. 그건 분명히 사람이 주는 힘 덕분이었다. 만약 모두가 이 거대한 파도에 맥없이 쓸려가기만 했다면 그런 감정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연대를 꾸리는 이유가 여기 있는 걸까? 연대 의식과 유대감이 인간 사회를 지금까지 지탱해 온 것일까?
내가 본 또 다른 희망은 모든 것이 멈춰버린 이 시기가 새로운 시스템을 실험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변화를 하나씩 실현했다. 멈출 줄 모르고 달리던 것들에 제동이 걸리면서 그동안의 문제점과 고질병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브레이크 타임은 희망과 가능성으로 넘쳐흘렀다. 문제투성이였던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이 전쟁 초기에 아직 사회주의 혁명의 색채가 강했던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바로 그런 종류였을 것이다. 그가 마주한 사회주의 실험실에서는 농민들이 봉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얻은 땅에서 경작했고, 사람들이 시내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존칭 대신 서로를 ‘동지’라고 불렀다. 심지어 통일 노동자당 군대 내에도 계급은 있었으나 호칭은 계속 동지였다.
그곳에는 농민과 우리만 있었다. 누구도 주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한 국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만큼은 지속되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아무리 욕했을지라도, 나중에는 뭔가 신기하고 귀중한 어떤 것과 접해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냉담과 냉소보다는 희망이 더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공동체, ‘동지’라는 말이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허위가 아니라 진정한 동지적 관계를 의미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평등의 공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난 변화의 싹이 움트는 곳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이 오래된 동네에도 막 변화가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이곳에 자리를 지킨 야트막한 뒷산의 반대쪽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그 사이를 가로지르던 터널을 해체하고 산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산을 오랫동안 지켜본 바로는 예전만큼 높고 울창한 모습을 자랑할 수 없다는 점이 슬프지만, 언덕과 터널 때문에 옆 동네들과 단절되어 있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완전히 색다른 변화다. 그래서 낮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공사 소리가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또 동네를 걸어 다니다 보면 나처럼 이 동네에서 꽤 오래 거주한 것 같은 사람들이 가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거나 공사 현장에 관심을 가지는 걸 볼 수 있는데, 이상하게 그 모습들이 내 마음에 불꽃을 일으켰다. 어쩌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늙어갈 수도 있었을 이 오래된 동네가 비록 게걸스러운 부동산 사업 때문이라고 해도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떠나고 싶은, 혹은 떠나야만 하는 동네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새로운 활기가 느껴진다. 난 그런 변화를 반기는 편이다(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에 아파트 단지가 전부 텅 비어 을씨년스러워질 때도 그런 종류의 변화가 달가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재난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도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