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고향
단숨에 책 두 권을 읽은 후, 나는 마침내 나의 동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망설임 없이 행동할 수 있도록 확실한 논리로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함이다. 내게는 선택과 난관 앞에서 똑바로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단단한 기준과 어떤 행동을 곧장 실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논리를 찾는 과정을 투명하게 적으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내가 두 작가의 솔직한 글에서 발견한 거대한 진실이다. 이로 인해 내 마음도 충분히 풍족해졌다고 느꼈다. 그러나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있다.
이쯤에서 나는 작가를 만드는 조건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글의 고향’이다. 내가 생각한 글의 고향은 맨 처음 글이 태어난 곳이거나 작가와 감수성이 맞는 곳,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다. 작가의 세계가 죽지 않고 살아 숨 쉴 수 있는 곳이자, 작가를 글쓰기로 이끌었던 강한 동기가 머무르는 곳이다. 말하자면 작가 정신의 안식처다. 글을 쓰며 지치지 않으려면 그런 장소가 필요하다.
조앤은 늘 자신의 고향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했다. 작가로 일하기 위해 갔던 뉴욕은 가능성과 새로움, 외로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조앤이 그 매력에 끌려 그곳에 8년 동안 머무른 시점부터는 새로움이 사라졌다. 모두 이미 들어본 얘기거나, 이미 만나본 사람들이었다.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면 그곳에는 더 이상 새로움도 외로움도 없으면서 고향에서 느끼는 편안함도 없다. 거기다 권태를 느낀다면 가능성은 이미 상실된 상태일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결혼을 통해 그 감정을 해소해보려고 했으나, 남편 또한 뉴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해서 부부는 로스앤젤레스로 거처를 옮겼다. 그 후 다시 뉴욕으로 이사했을 때 뉴저지 출신의 남편은 “돌아왔다”라고 표현했지만, 조앤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캘리포니아 운전 면허증을 뉴욕 운전 면허증으로 바꾸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면허증을 바꾸는 일을 “단절된 정서적 유대의 경험”으로 간주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때 그녀가 경험한 상실은 고향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조앤의 다른 글에 따르면, 그녀는 뉴욕에 살게 되었을 때 처음부터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1년에 네다섯 번은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갔다. 그녀에게 “뉴욕은 적어도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젊은 시절만을 위한 도시”였다. 그래서 조앤이 글을 쓰는 건 쓸데없다는 생각에 시달리느라 몇 달 동안 제대로 일하지 못했을 때 샌프란시스코로 갔던 걸 보면, 그녀는 글의 고향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그녀는 글의 고향을 찾아주는 작가의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고향이 무조건 자기가 태어난 곳이나 익숙한 곳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테파니는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미줄라에 대한 지식을 익혔고, 존 스타인벡의 <찰리와 함께한 여행>에 묘사된 몬태나(미줄라가 속해 있는 미국의 주)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녀는 스타인벡이 왜 그토록 미줄라를 사랑스럽게 묘사했는지, 매클린이 왜 미줄라에서 멀어질수록 나쁜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난다고 주장했는지 알고 싶었다. 또 데이비드 제임스 덩컨의 <더 리버 와이>를 본 다음부터는 미줄라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미줄라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 직감했다. 그리고 거의 4000달러의 세금 환급을 받아 마침내 꿈에 그리던 미줄라로 여행을 떠난 스테파니는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누리며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웃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무언가를 갈망한 적이 없었다. 미줄라는 내 안의 갈망을 끄집어내 주었다. 갑자기 지역사회에 속하고 싶어졌다.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그런 희망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스테파니는 딸이 헝클어진 머리와 구겨진 치마를 대충 걸쳐 입은 모습을 하고도 사람들과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리는 미래를 내다봤다. 그곳에는 그동안 살았던 시애틀처럼 곁눈질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미줄라가 진정한 고향이었다. 내게도 그런 고향이 있을까?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바로 이것이다. 이쯤에서 난 다시 조앤의 딸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처럼, 골몰하지 말자는 거야.” 그렇다면 난 무엇에 골몰하지 말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