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두고 하는 일 없이 집에만 머물었던 4년 동안 괴로움은 더욱 극에 달했다. 또 한편으로는 처음 겪어보는 세상과의 단절이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여전히 머릿속은 고통으로 꽉 차 있었지만, 적어도 온몸이 느끼는 예민함은 덜했다. 별다른 대화 상대 없이 오로지 나 자신과의 소통을 지속하면서 죽어 있던 창작 세계를 되살렸다. 그때 부활은 생각보다 쉬운 것이고, 환경의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평생 처음 느껴보는 유형의 자유가 지치지 않고 날 다시 예술로 끌어들였다.
이 집은 15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어떤 방랑자에게 꿈을 만들어주고 그 꿈에 도전하게 했지만, 결국 그 꿈을 포기하는 과정까지 전부 다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방랑자가 먼 길을 헤매다가 전부 잃고 원래의 꿈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보고 있다. 집은 자아를 갖고 있지 않아 자기 생각을 드러낼 수는 없지만, 왠지 한심하게 바라보면서도 선뜻 문을 열어주고 방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 같다. 그러면 그 방랑자는 면목이 없어 할 말을 잃은 채 묵묵히 그 환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침묵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시 연대를 형성할 것이다. 바라던 모든 걸 놓쳤으니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에 돌아왔을지 이해할 것이다.
다시 돌아온 문학의 세계에서 나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할지를 먼저 고심했다. 이제 더는 물러설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벼랑 끝에서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쫙 펼쳤다. 그런데 당장 잡을 만한 것이 없어서 일단은 눈앞에 보이는 바람이라도 잡으려 애썼다. 이 바람은 모든 곳을 떠돌며 세상의 온갖 공기를 몰고 다니는데, 조금 더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범지구적인 문제를 품고 있다. 그 문제라고 하면 미래 사회의 윤리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기계 문명의 위협에 관한 논의, 변해가는 인간관계의 형태에 대한 고찰, 재난을 겪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일 수도 있다. 아니면 또 다른 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손에 잡힐 수도 있다. 어떤 바람이든 세상 곳곳에 거세게 불어닥친다면 따지지 않고 붙잡고 싶었다. 그것만이 아무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마치 갑자기 아무런 길의 흔적도 없는 어느 넓은 들판에 던져졌는데 방향을 모르고 혹시나 안다고 해도 그 끝에 무슨 목적지가 있는지 모를 때 자유가 주는 혼란을 떨쳐내기 위해 북극성 하나만을 따라가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참담하게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글쓰기를 배웠을 때 생긴 나쁜 버릇이 계속 튀어나왔다. 내 언어가 아닌 것과 어느 정도 내 언어인 것이 이상하게 뒤섞여 어느 쪽으로 보나 불완전했다. 깊은 의미나 진지한 주제의식보다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고 수익을 보장하는 시놉시스를 생각하는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단언컨대, 그런 상황에서 탄생한 이야기들은 절대로 내 안에서 끓어오른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제시어를 가지고 글을 썼을 때처럼 말이 되든 안 되든 무언가를 쓸 수는 있을 테지만, 내 안의 갈증은 절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쓴 이야기들은 한 번도 내 피부처럼 느껴진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비극적인 예언이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니 지나가는 바람을 낚아채는 건 다른 이가 벗어두고 간 허물을 주워 내 표피인 양 뒤집어쓰고 다른 이의 행세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쉽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 흔히 널려 있는 주제들을 택하면 거기서 개인적인 고뇌와 투쟁은 찾아볼 수 없고, 그 사람은 시대와 사건의 잔해에 파묻힌 희생양으로 남는다. 지나가는 바람에 주도권을 빼앗기면 절대 자기 글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위 단락의 추상적인 내용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내가 내 글의 온전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렇게 찾아온 창작 세계의 2차 붕괴는 한 아마추어를 벼랑 끝에서 더 끝으로 내몰았다. 이보다 더 후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어째서인지 뒤로 갈수록 벼랑이 조금씩 연장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건 말이 안 된다. 아무튼, 여기서 추락하지 않고 살아남아 주도권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근본적으로, 예술은 정말 내가 추구하는 것이 맞을까?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도약하기 위해 그것과의 관계를 확실히 정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