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왜 나의 길이 아니었는가

by 이운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는 여전히 나의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대신, 정말 어린 아이였던 시기를 지나쳐 이제는 사춘기로 접어들어야 한다. 조금 더 크고 보니 사람들은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할 말을 골라내고 글로 표현하는 일에는 이미 익숙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못할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낯선 장르에 과감히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계속 예술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었던 나의 선택은 영화를 향했다. 그것은 내가 접한 최초의 예술이다. 모국어의 글자를 읽을 줄도 몰랐을 때부터 외국어로 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면서 익살스러운 표정과 풍부한 감정 표현을 배웠다.


사실 문학이 아닌 영화의 언어를 택한 건 어떤 낭설, 예술가는 대체로 가난하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낭설 때문이었다. 뜬소문에 쉽게 흔들렸던 나는 추레하고 볕이 잘 들지 않는 세계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활동적인 세계에 발을 붙이고 싶었다. 한 이야기꾼이 꿈꿀 수 있는 가장 넓은 세계는 영화관 속 스크린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받는 상은 지구상에서 최고로 영예로운 상처럼 보였고, 평생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바랐던 나는 명성과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이 너무나도 탐났다. 그리고 비교적 쉽게 글을 쓰는 것처럼 각본도 그런 식으로 쉽게 쓸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약 1년간의 짧은 여정은 영화가 무엇인지 충분히 깨닫게 했다. 주어진 제시어를 가지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과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 글을 쓰는 방법, 장면과 구도의 공식을 공부해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방법 등을 배우며 과외 선생님이 쓰라는 글을 쓰고, 그 글을 다시 선생님이 첨삭해 주면 그의 시각과 노하우가 담긴 수정본을 마치 내 것인 것처럼 흡수해야 했다. 그리고 수업 시간마다 나의 엉성한 시놉시스가 선생님의 손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새롭게 탄생하는 광경을 넋 놓고 감상했다. 이 평범한 과정을 1년, 정확히는 6개월 동안 반복했다. 이 지점에서 웃긴 건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글을 쓰는 기술 외에는 다른 기능이 없는 기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기와 생동감을 전부 잃어버렸어도 손에 펜을 들고 글자를 적을 수 있는 정교한 기계로 거듭났다. 그래서 창의력은 물론이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졌다. 그때가 내 창작 세계가 죽은 첫 번째 시기였다. 그런데 창작 세계만 죽은 거면 다행이다. 더 큰 절망은 원서를 넣었던 모든 대학에 낙방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죽은 영혼이 쓴 글은 당연히 아무런 공감도 사지 못한다. 재미도 가능성도 없는 글이 무슨 소용인가?


내 안의 불씨가 다 꺼져버린 뒤, 상업적인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된 예술의 세계에서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 이상 어떤 열망도 발견할 수 없었다. 거기서는 예술이 그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해 내 삶과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큰 성공과 많은 돈만을 쫓아 그 바다에 뛰어들었다면, 그곳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결국 그 바다를 사랑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망망대해에 몸을 던지기 위해 원래 살던 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나온 바람에 방향 감각을 잃고 돌아가는 방법조차 모른다.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땅 조각 하나 없는 깊은 바다 한가운데서 나의 글쓰기 능력과 자질에 대한 생각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하나의 작은 사회인 학교가 받아주지 않으면 큰 사회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글쓰기를 포기했다.


그래도 일단 학교는 다녀야 했기에 성적에 맞춰 영문과에 진학했다. 수업은 나름대로 재밌었다. 영미문학을 공부하고 영어와 독일어를 배우며 외국어가 새로운 숨통으로 급부상했다. 별 기대감이 없었던 전공은 의외로 잘 맞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 그걸로 만족할 수 있는 성정을 갖추지 못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기보다는 ‘내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훨씬 컸다. 이미 수동적인 학습에 한껏 질려 있었던 터라 무언가를 창조하지 않는 학과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다. 자아를 드러낼 기회가 없는 것이 그렇게 괴로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첫 학기를 어찌어찌 넘기고 다시 무기력해져 어두운 방 안에서 어떤 빛의 실마리라도 발견해야 했던 때, 난 처음 영화에 눈을 뜨게 했던 물건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카메라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가진 물건 중에 그나마 값이 비싼 축에 속했다. 때로는 버릴 수 없는 물건이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다. 프레임 안은 완전히 내 세상이고, 촬영과 편집과 출력도 모두 내 관할이다. 카메라를 통하면 빛을 제어할 수 있고 그림자를 드러낼 수도 있다. 입시 선생님과 대학교 심사위원이 공감하지 못했던 나만의 구도 잡는 방식을 원하는 대로 실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뜬 여름이 끝나자마자 충동적으로 전공을 바꿨다.


하지만 봄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 무색하게 첫 번째 사진 수업을 듣기 며칠 전 고비가 찾아왔다. 새로 장만한 무거운 카메라를 들 때마다 손에 맞지 않는 도구를 억지로 쥐는 것처럼 불편했고, 죽을 날짜를 받아놓은 사형수처럼 개강일이 가까워질수록 곧 눕게 될 단두대만 자꾸 떠올랐다. 여전히 창작 세계가 죽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형은 절대 번복될 일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전공이라는 게 아예 없었으면 했다. 선택이 족쇄가 되어 빠져나오고 싶을 땐 이미 한참 늦어 그 선택을 포기할 수도 없는 악순환에 걸려들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무엇으로도 정의되지 않는 회색지대에 터를 잡고 싶었다. 또 앞으로 4년 동안 그 많은 돈을 내가면서 걸어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을 고르는 일이 너무나도 불합리했다. 정형화된 교육이라는 건 그만큼의 돈과 시간과 정신력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런 의심으로 꽉 찬 상태라면 어느 학교, 어느 학과에 가더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의 도움에 의지하기보다 내가 나를 스스로 돕는 게 낫고, 그 판단 하에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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