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작가로 도약하기 위한 최종 점검

by 이운

프롤로그




아직 세상이 추웠던 3월, 나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고 있었다. 한창 실존주의에 매료되어 있을 때였다. 상황 속에서 자유를 찾는 철학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한편으로는 내게 가장 필요한 철학이기도 했다. 와닿지 않는 조언들과 의미 없는 공식들이 날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자유를 갈망했다. 그래서 난 딱 3일 동안 집을 떠나 오로지 책과 글로만 빠져드는 여행을 실행했다. 그렇게 이 글의 첫 아이디어는 TV 없는 객실과 층고가 높아 탁 트인 1층 라운지에서 시작되었다.


카뮈는 책에서 부조리의 감정은 인간과 그의 삶이 서로 연결점을 잃는 상태라며 배우와 무대 장치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는 상황에 비유했다. 그것은 무대 위의 배우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의심을 보여준다. 아마 배우는 더 이상 연기를 지속할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고, 더 심해지면 자신의 직업에까지 회의감을 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도 자신의 책 <존재론적 신비에 관해>에서 무대 장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나 국가 간의 혼합을 무대 세트의 칸막이들이 돌풍에 의해 무너져 내리면서 시점을 급작스럽게 조정하게 되는 장면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뜻을 멋대로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배우가 한창 연기에 몰입해 있을 때 무대 세트가 무너지면 배역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관객과의 연결도 끊어진다. 그런데 이때 관객도 똑같이 연기에 몰입하며 배우의 감정에 공감하고 있고, 무대 장치가 무너지는 상황 안에 속해 있다. 기침이 나오거나 막이 끝나서 박수를 쳐야 할 땐 자신이 관객이라는 걸 인지할 테지만, 그 외에는 마치 연극 속 한 배역이 된 것처럼 그 안에 완전히 스며든다. 그러다 갑자기 무대 세트가 무너지고 이야기가 뚝 끊기면 그것이 실제가 아닌 허구였다는 사실을 일깨우듯 관객을 강제로 현실로 내쫓는다. 그렇게 허구가 무너진 자리에 비로소 현실이 드러난다.


이에 관해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헨리 워튼 경의 입을 빌려 우리의 시점이 배우가 아닌 관객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언급했다.


인생에서의 진짜 비극은 너무나 비예술적인 형태에서 발생하죠. (...) 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사는 동안 아름다운 예술적 요소를 지닌 비극이 찾아올 때도 있어요. 아름다움의 요소가 현실적인 것일 때 그 비극적인 일이 우리에게 바로 효과를 주는 거죠. 그러면 어느 순간에 우리는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아니면 둘 다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자신을 지켜보게 되고 놀라운 광경에 빠져들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소설에는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 뒤 연기에 회의를 느끼고 현실에 눈을 뜬 시빌 베인이라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당신은 실제 현실이 뭔지를 알려주었죠. 오늘 밤 난생처음으로 제가 그동안 연기한 아름다운 광경이나 화려함이 얼마나 공허하고 거짓된 것인지, 얼마나 우스운 건지를 깨달았어요. 정말이지 오늘 처음으로 로미오가 화장을 한 가증스러운 늙은이고, 과수원 달빛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장면은 또 얼마나 저속한지, 제가 하는 대사도 거짓이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요. 당신은 저에게 뭔가 더 고상한 것이 있다는 것, 모든 예술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어요.


난 그녀가 마치 내 생각을 대변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구와 환상은 현실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다.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환상을 품고 있는 건 현실이다. 현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고 더 폭넓은 주제를 다루며 더 큰 세계를 그린다. 그래서 연극만이 인간 사회의 유일한 이야기가 아니고, 그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건 현실이다. 난 거기서 큰 가능성을 발견했다. 만약 내가 눈을 반만 뜬 채로 과거를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두 눈을 제대로 뜨고 더 명확한 일들을 보기로 했다.


이 글은 “어떤 글을 써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난 계속 작가의 삶을 꿈꾸지만, 지난 몇 년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첫 발을 뗀 아마추어에게는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는데, 이는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정해진 스타일이 없고, 일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간단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막힘 없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또 어떤 글이 확실히 독자들의 이목을 끈다는 걸 터득하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럴 땐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창작자는 창작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손에 남는 것도 없다. 이렇듯 젊은 아마추어가 마땅히 가질 법한 의문과 불안,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난 어느 때보다 절실히 모든 시대가 전쟁과 철학의 시대라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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