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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03. 2018

이런 여자가 좋아 @자존감 낮은 사람들




그런 여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 그래서 자신에게 떳떳한 여자. 남들 앞에서 자신감이 있는 여자. 그렇게 그때 나와는 정반대였던 그런 여자들이 보였다. 사소할 수도 있는 모든 것에서 나와는 달라 보였다. 거리를 걸을 때도 당당한 발걸음인 것만 같았고, 상대방이 던지는 어떤 질문에도 주눅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지닌 생각을 주변 사람들 시선에는 상관없이 떳떳하게 말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이 외적으로 아주 예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녀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을까. 나도 언젠간 그렇게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와. 날 찾아! / 영화 트루먼쇼


먼저 언제 내가 초라하다고 느끼는지 떠올려봤다. 내가 가장 예쁘지 않은 순간은 언제일까.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던지는 물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나를 발견할 때였다. 더 자세하게 기억을 떠올려 보자. 어떤 상황에서였을까.


명절에 큰집에 내려갔을 때 친척들이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될 거니."라고 말할 때.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 지인들이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될 거니."라고 또 물어볼 때. 학원 원장선생님이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될 거니."라고 역시나 물었을 때. 그렇게 다들 짠 것처럼 도돌이표 찍을 때. 난 뭐라도 크게 잘못한 사람처럼 주눅이 들었다.


"꿈이요..?제 꿈은.." 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다고 그렇게 기가 죽어있었을까.  그거야 지금 생각이고. 그때의 나는 나를 '커서 하고 싶은 게 하나 없는 꿈이 없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꿈이 없는건 어쩌면, 우리 잘못이 아냐. "it's not our fault." / 영화 굿윌헌팅

더는 이 굴레 속에 갇혀있고 싶지 않았다. 이 질문에 자유로워지면 적어도 저 상황에서만큼은 나를 초라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내 꿈에 가까워지는 방법들만 생각했다. 학창 시절 받았던 칭찬을 이리저리 조합 시켜 만든 내 꿈은 '홍보, 광고, 마케팅' 학과에 진학하는 것.


오롯이 '꿈'에만 집중하려면 날 오롯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들을 차단해야 했다. 내게 그건 바로 '사람'. 인간관계에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친구와 싸우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지하철을 놓치고, 반대로 타고, 몇 정거장 더 가고, 물건을 놓고 내리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그런 사람. '사람'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내게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물론 지금도.


그래서 먼저 사람들과의 관계를 차단했다. 메신저가 되지 않는 핸드폰으로 바꿨고,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했고, 다시 수험생활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보니 대단한 결단력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단을 내리기까지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한다.

 

거슬리는 것들을 차단하고 난생처음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어쩐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니 꿈이 없었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내 마음이 단단해진 느낌이다. 대학교 자퇴를 선택한 것도 조금 더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수험생활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어디론가 돌아갈 구실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와 잘 맞는 선생님의 수업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 4시에 기상해 5시부터 줄을 서기도 했고, 사람 의존증이 심했던 내게 혼자 밥을 먹는 건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는데, 어느 순간 이 생활패턴이 나에겐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사람이 아닌 '운동'과 '음악'에 의존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시간에 의존했다. 노래를 들으며 운동하는 시간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친구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나만의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은 게 있었다.

진짜 날 생각해주는 보석 같은 사람들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일상과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에 시도 때도 없이 슬럼프에 시달리던 어느 날이었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나와 참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나를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날카롭던 내 신경을 살살 긁었다. 그리고는 이내 "넌 맨날 바빠. 네가 바쁠 때만 골라서 연락한 내 잘못이지."라며 차갑게 말했다. 내 막연한 미래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너무 힘들고 벅찬 상황에서 그 말을 받아칠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자존감은 이미 바닥칠 때까지 쳤기 때문에 서운함이 배가된 것 같다. 더불어 그 친구와 당분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내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때, 내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작은 에피소드였을 뿐인데.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우리 또한, 한편의 시가 된다는 것. / 영화 죽은시인들의 사회

반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가 나에게 힘이 돼주기도 했다. 난 그 당시 징그러울 정도로 슬럼프에 자주 빠졌었다. 시험 점수가 나오면 그 여파가 며칠은 갔다. '내가 과연 이 점수로 대학을 들어갈 수 있을까. 자퇴를 괜히 한 걸까. 다른 친구들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할까.'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근데 나와 간신히 인사만 나눴던 고등학교 동창이 자기도 토익 공부를 하겠다며 예민하고 까칠하던 내가 다니던 독서실에 자기 발로 온다는 거다. 부정의 기운을 자주 내뿜었던 나는 어김없이 내 신세를 한탄하며 "나 정말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그 친구를 알게 모르게, 아니 선명히 괴롭혔다. 그때마다 그저 묵묵히 내 상황을 이해해줬고 내 옆에 있어 주었다.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줬다.

 

가방 문 닫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정신이 없던 내 가방 문을 묵묵히 닫아주었다. "정신 차려라." 라는 쓴소리 섞인 농담과 함께.

 

그렇게 1년 6개월간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차단하고 내가 세운 목표를 간신히 이뤘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본 순간보다 날 더 가치 있게 만들었던 순간은 바로 "너 꿈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홍보 전문가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나 자신이었다. 이전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정말 내 꿈을 말할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누군가에 의해 휩쓸려 선택이 아닌,

내가 한 선택이었으니까.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힘들었지만 '좋았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때때로 내 인생에서 힘든 시기라고 생각될 때 '힘들다.'는 감정에 치우쳐 '힘듦을 통해 얻게 되는 소중한 순간'을 눈앞에서 놓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친구와 다툼이 있을 때는 화나는 감정에 못 이겨 내 옆에서 언제나 따뜻하게 응원해주던 사람들의 소중함을 놓쳤고, 목표를 설정하고 뛰어가는 과정에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치우쳐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규정짓기도 했다.

 

조금은 늦은 속도라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난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내 자존감을 사회의 잣대에,

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더는 내 시간을 내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가 부러워했던 '그녀'들의 공통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발걸음에서조차도 자신감이 느껴졌던 그녀들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물론 태생이 자존감이 높았을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들을 토대로 보았을 때 노력으로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노력으로 얻는 자존감. 그건 작은 것이라도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선택했을 때,  그 선택으로 변한 내 모습이 그래도 이전보다 괜찮아 보일 때, 그 작은 모습들이 모여 아주 조금씩 회복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크지는 않지만 그 작은 모습들을 기록하려 한다.

 

어쩌면 지금 주저리주저리 끄적거리는 이 순간도 훗날 그 작은 모습 중 하나일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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