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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Feb 23. 2020

휴 - 그놈이랑 결혼 안 하길 잘했네

라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니까. 그러니까 그런 놈 버려.

Photo by Mel on Unsplash


나도 한때 지질했던 시절이 있었다.

저 남자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시절을 지나

우리 남편이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다고 하는 시절을

만나서  물 흐르듯이 결혼을 하고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이제는 연애의 시장에 발을 들일 일은 없지만

여전히 연애의 시장에서 허우적대면서

운명의 단 한 사람을 찾으러 헤매는 동생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할 때가 있다.


모든 연애에서 종료를 선언하고

안정적인 결혼의 품으로 들어오니까

타인의 연애가 조금 보이는 느낌이라서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해주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의 인생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

결혼을 해라 마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남자는 진짜 아니야 정도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A양과 통화를 했다.

물 흐르듯이 사귀게 된

현 남자 친구의 부모님까지 뵌 A양이

남자 친구 자랑을 했다.

물론, 나도 흥분해서 너무 잘됐다를 연발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남자 친구가 진짜 진국이었다.

왠지 결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A양이 그럴까요?! 그러면서

목소리가 솔톤으로 올라갔다.


예전에 그 쓰레기는 이제 생각도 하나도 안나죠?

그때 그놈이랑 계속 사귀고 있으면 어쩔 뻔했어요?

라고 했더니


언니가 그때 그렇게 말했을 때는

그런 날이 올까 했는데

이제는 그때 그놈이랑 결혼까지 안 가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종종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한국에서 나도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있었다.


그놈과 결혼했다면

아마 호주에 올 일도 없었을 테고

매달려서 한 결혼으로 내 자존감은 바닥이었을 테고

도대체 내 인생은 뭔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이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아마 백 프로 후회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놈이랑 결혼 안 하기를 잘했네,

그때 그놈이랑 헤어지기를 잘했어하고

가끔 안도의 숨을 내쉰다.


지금 사귀고 있는 연인이

날 너무 힘들게 하는데도

그 연인과 결혼을 하고 싶어서

자신이 매달린다면 정말 질 생각해봐야 한다.


헬게이트 앞으로 오지 말라는 모든 신호가

날 향해 멈추라고 하고 있는데도 다 무시하고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기어코 그 안으로 기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날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날 제대로 사랑하는 사랑은 나를 당당하게 만들지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할 결혼은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물 흐르듯이 하게 되어있다.


억지로 내가 꼭 이 남자랑

이렇게 해야지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어어 어 - 하는 순간 결혼식장에 들어가 있고

같이 살게 되어있다.


그 남자가 없으면 내 인생이 아프고 죽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픈 마음은 잊히고

자기 마음을 제자리에 찾아서 다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순간이 온다.  

휴, 그때 그놈이랑 결혼 안 해서 정말 다행이다 라고

감사하게 될 그날이 온다.

반드시.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지금은 마음이 아파도

나를 위해 그런 놈 버리기를.

그래야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휴, 결혼 안 하기를 잘했네 - 라는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믿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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