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등이라니! 장하다, 내 아들!

친정엄마 덕분에 0.001초의 빠른 반응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by 한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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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던 때는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때였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공부한다고 머리도 잘 안 감았었다.


그렇게 공부만 죽어라 했고

시험을 쳤고 결과가 나왔다.


중간고사였는지 기말고사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반에서 2등을 했고

전교에서는 10등 안에 들었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성적이었던 것 같다.

성적표를 받은 날, 두근거렸던 내 심장박동까지

여전히 기억한다.


엄마에게 이 성적표를 보여주면

날 많이 칭찬해주시겠지?!

이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성적표를 보여줬다.


엄마는 성적표를 보더니

잘했는데 좀 더 잘할 수 있었잖아 - 라는 식으로

말을 했던 것 같다.


엄마의 미지근한 반응에 난 실망했고

그 이후로 중고등학교 생활 동안

열정을 다하여 공부하지 않았다.




우리 첫째가 엄청 신나서 집에 왔다.

첫째의 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학교 합창단에 들 수 있다.

합창단이라고 뭐 대단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2번 합창단에 참여하는 주니어 1, 2학년 아이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얼마 전 합창단에서 배운 노래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길래 저 노래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 했다.


합창단에서 주야장천 부르는 그 노래 경연대회?를 했는데

거기서 4등을 했다고 했다.


앞으로 나가서 사람들 앞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이 노래를 부른 사람을 대상으로

등수를 매겨주신 것 같았다.


엄마, 나 4등 했다!라고 신나서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0.00001초의 빠른 반응으로

대박! 우리 첫째 진짜 최고다! 라며 무한 칭찬을 해줬다.

혼자 나가서 사람들 많은 데서 떨지 않고 노래도 불렀다니

엄마 같으면 너무 떨려서 못했을 것이라는

너스레와 함께 말이다.


그랬더니 우리 첫째가 너무너무 좋아했다.

다음에 새로운 노래를 부르면

꼭 1등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결연히 웃는데 너무 귀여웠다.


저녁식사 시간에도 우리 첫째가 4등을 했다는

자랑스러운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고

우리 아이는 동생들 앞에서

노래를 엄청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내가 지금 살아오면서 내가 배웠고 경험했던 모든 것이

우리 아이들을 만나고 키우기 위해서

경험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만약에 우리 친정엄마께 저런 반응을 받고

실망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아이에게 저렇게 진심으로 반응할 수 있었을까.


엄마의 그 시무룩한 반응이 없었다면

우리 아이에게 열정적인 반응을 해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의 신속한 반응과 칭찬으로

다음 노래 경연대회 때에도

우리 첫째는 즐겁게 노래를 연습할 것이고

1등을 못해도 신나게 우리한테 이야기를 할 것임을 확신한다.


날 이렇게 깨닫게 해 준

그 당시 엄마의 그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다음에도 우리 아이가 몇 등이 되어서 오든

열렬한 지지와 응원과 칭찬을 보낼 수 있도록

부단히 표정과 리액션을 연습해야겠다.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

육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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